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2절 로마 제국시대의 점성술 성행과 태양신 숭배의 풍조
“...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새 종교를 이방인들에게 추천하기 위하여 그들과 친숙한 예배용 장식들을 교회 내에 이끌어 들인 사실을 여러 가지로 말해 준다.... 특정한 성자에게 바친 신전들을 사용할 것, 때때로 나뭇가지로 장식하는 것, 향, 등잔, 촛대, 병 치료를 위한 봉헌하는 예물, 거룩한 물, 보호소, 성일들과 절기들, 역법의 사용, 행렬기도, ..., 동방 경배, 후일에 우상숭배, 그리고 교회의 송가들은 다 이교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이를 채용하므로 성별 되었다.... ”
(271.1)
 그 사건 후 여러 세기가 지나갔다. 황실 점성관 마테르누스의 계략과 교회사의 비조 유세비우스의 야심, 이 둘 중에 누가 승리를 거두었는가? 옥스포드 대학교 교회사 교수 스탠리(A. P. Stanley, A.D. 1815-1881)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271.2)
“고대 태양신에게 부단한 충성심을 바친 자들이 그들의 종교 의식 자취를 [오늘날까지] 남겨 놓았다.... 지극히 거룩하며, 우주적인 이 그리스도교단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다. 이 고대 우상숭배자들이 명명한 ‘태양의 날’(dies solis)이라는 칭호의 존속은 대개 우상 숭배교와 그리스도교의 그 정조가 서로 결합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이 법령은 제국내의 불일치한 종교들을 공통의 제도 아래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보려는 의도였다.”34)
(271.3)
 이집트학 학자 웨이걸(A. E. Weigall, A.D. 1880-1934)은 그의 저술에서“교회는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성별 했다.... 전승에 따라 대중들로부터 추앙 받던 우상숭배자들의 축제일들을 그리스도교가 물려받고, 그 우상숭배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준 것은 명백히 교회의 모략이었다.”35)라고 말했다. (271.4)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임종이 임박하자 세례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고, 뒤이어 마테르누스도 그렇게 했다. 그것은 나름대로 또 다른 숨은 계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72.1)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점성술의 기본인 일, 월, 화, 수, 목, 금과 “토성의 날”을 달력에 삽입토록 하는 새 달력을 고안해 냈다. (272.2)
 (2) 피르미쿠스 마테르누스의 말기와 그의 호교적 활약
 마데르누스는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콘스탄스(Constans) 황제의 비호 아래서, 고대의 로마 다신교를 탄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 A.D. 343-350에 이교를 논박하는 저술(De errore profanarum religionum, 불경스러운 사교적 종교의 오류에 대하여) 활동도 하여 호교론자로도 알려지게 되었다.36) (272.3)
 그러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랬던 것처럼 황실 점성관 마테르누스의 개종도 그랬다. 한때 유대의 산헤드린회 의원으로서, 초창기 그리스도교를 맹렬히 박해했던 바리새파의 유력한 핵심 당원이었던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개인적으로 뵙고 개종하여 사도 바울로 변신될 때 체험한 그런 회심을 통해 회개한 경험이 마테르누스에게는 전혀 없었다. (273.1)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아 회심한 에베소의 그 여러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사용했던 “그 책을 모아 ... 사람들 앞에서 불사른”(행 19:19)것 같이 점성학자 마테르누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에 자신이 저술하여 남긴 점성술의 대작(Matheseas libri, Ⅷ)을 불사르지 않았다. (273.2)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생각했던 것과 같이 점성관 마테르누스도 자신이 섬겼던 “불패의 태양”신 아폴로가 다만 “의의 태양”신 그리스도로 이름만이 바뀐 것뿐이었다. (273.3)
 그것은 시대에 따라서 변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A.D. 117-138) 시대에 유피테르가 태양신으로 각광 받아왔던 것이 황제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A.D. 270-275) 때부터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Mithra)가 로마의 태양신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Constantius Chlorus A.D. 305-306) 가문의 수호신 아폴로가 그의 등극과 함께 로마 제국의 태양신이 되었다. 그래서 퀴몽(F. V. Marie Cumont, A.D. 1868-1947)의 말과 같이 이제 이 아폴로를 불패의 태양으로 숭상하는 “태양조”(Solar Dynasty)가 개조되었다.37) (273.4)
 따라서 마테르누스의 기독교 개종은 어디까지나 아폴로가 그리스도로 명칭만 바뀐 “제3의 새 종교”의 기독교로 개종한 것뿐이다. (273.5)
 이집트 중 왕국 제18왕조의 제6대 바로(파라오)인 아케나톤이 “아문-레”(Amun-Re) 태양을 주신으로 한 다신교를 철폐하고 “아텐”(Aten 또는 Aton) 태양을 유일신으로 한 일신교 설립을 위해 테베의 카르낙 신전과 거기에 안치해 두었던 모든 잡신상들을 모조리 파괴했던 것처럼 황실 점성관 마테르누스는 황제 콘스탄스의 명을 받들어 제국내의 각종 신전들과 잡신 상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273.6)
 

두상이 없는 신상
(274.1)
 이 때 그 많은 판테온들(Pantheon, 여러 신들을 한 자리에 모시는 신전)과 사당들(Shrines), 그리고 그 많은 남녀신상들이 파괴되었다. 머리통이 없어진 신상들, 반대로 몸통이 없어지고 두상들만 남은 것들이 신전들 주변에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는데 예술품 애호 수집가들에 의해 수거되어, 오늘날 우리가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이나,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등등, 그 당시 로마 제국 통치권 지역 내에 속했던 그 많은 나라 박물관 진열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274.2)
 황실 점성관 마테르누스의 지휘하에서 주도면밀하게 이교도들의 각종 신전들이 철저히 파괴되었지만, 예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아그립파(Marcus Vipsanius Agrippa)에 의해 B.C. 27-25년에 건축되어 율리아 가문(Giulia Julia, 율리우스 캐사르가 바로 이 가문 출신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져 온 “일곱 혹성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봉헌한 “판테온”이다.38) (274.3)
 

두상이 없는 신상
(275.1)
 

두상이 굴러 뒹글고 있는 모습
 이 판테온에 안치된 “일곱 혹성신들”이란 태양과 달 그리고 화성, 수성, 목성, 금성 및 토성이다. 이 무렵에 로마에서는 일찍부터 사용해왔던 8일 주기 제도 “눈디눔”(Nundinum)에다가 바빌로니아의 7일 주기 제도 주일을 이집트에서 도입하여 혼용하다가 후에 대체하였다. (2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