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3절 그리스도 전후 시대의 태양 숭배
 B.C. 1200년경에, 프리기아인들은 트라키아(Thracia) 지방에서부터 소아시아 서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한 때 이 지역에서 통일 대국을 건설했던 힛타이트(Hittites) 왕국을 밀어내고 골디온(Gordion)을 수도로 한 왕국을 건설했었다. (331.3)
 

키벨레 여신의 행진도 메달리온. 아이 가눔에서 발굴, 금으로 도금한 은제품. 직경 10인치. 태양과 달 그리고 별 아래서 그리스의 여신 키벨리의 승리 개선 행진을 묘사한 메달리온
 힛타이트 왕국이 멸망하면서 진공 상태가 된 소아시아 지역에 이주해서 정착한 민족들이 많았다. 무시아인(Mysian), 비디니아인(Bithynia), 리디아인(Lydia), 카리아인(Caria)들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 여러 부족들 중에서도 나중에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 예술, 문화 그리고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는 프리기아 왕국이었다. 즉 그들의 종교 의식에서 사용했던 악기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으며 그들이 전한 신앙은 조각가들에 의해서 묘사되었다. (332.1)
 “프리기아의 물질 문화가 이 때까지 알려있지 않는 것은 B.C. 7세기 초 질풍과 같이 카프카즈 산맥을 넘어서 서남 아시아의 북방에 나타난 기마민족 킴메르인(Cimmerians)에게 습격을 당하여 철저하게 약탈,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333.1)
 “... 그러나 프리기아인은 당시 주위의 넓은 지역의 범위에 걸쳐서, 그리고 후세에까지도 영향을 주어서 정신 문화상으로 크게 공헌하였다. 프리기아인이 깊이 신앙하였던 대지의 신 키벨레는 ... 그 연인 또는 아들이라고 일컫는 ... 앗티스는 ... 로마로 전해졌는데, 그 광신적인 신앙과 의례는 ... 채용되었다. 영혼 불멸의 신앙도 밀의를 발달시켰다. 그 열광적인 밀의에 수반되는 무용과 음악은 우수한 악기를 필요로 하였다. 플루트(flute), 탬버린(tambourine), 심발(cymbal) 등이 프리기아에서” 33)부터 그리스를 거쳐 에트리아인들에 의해 로마에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프레이저 경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333.2)
“... 행렬을 지어 여신상을 운반하고 심벌과 탬버린 그리고 플루트와 뿔나팔의 반주에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가를 통과한다. 이 때 군중들은 환상적인 이 행렬에 감동되고 격렬한 노래에 들떠서 ... 장미꽃으로 그 인형과 중성적인 존재들(갈리[galli], 거세한 사제들 ※필자 주)을 휘 덮었다. 그 경향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의 기성 종교에 프리기아의 신성한 나무에 대한 숭배와 떠들어 흥청거리는 앗티스의 주신제적인 의식을 합쳤을 때에 뚜렷해졌다. 키벨레와 앗티스에 대한 봄의 대 제례는 로마에서 거행된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34)
(333.3)
 

태양신 「아도니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운구할 때 악기로 연주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334.1)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이 해마다 봄의 제례로 애도되고 거행되었다.... 앗티스는 신들의 어머니인 키벨레, 즉 풍요의 위대한 아시아의 여신에 의해서 사랑 받은 아름다운 목동이었다고 한다.... 앗티스가 이 여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35) (334.2)
 이 여신 키벨레에게 주어진 로마의 정식 명칭은 “위대한 이다의 신들의 어머니”(Mater Deum Magna Idaea)이다. (335.1)
 프레이저 경은 계속해서 증언했다: (335.2)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이교의 낡은 줄기에 새로운 신앙의 종자를 접붙이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고안해 내었는가를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식이 같은 계절에 ... 똑같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 의식에 접목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그리스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창작된 죽어 가는 연인을 팔에 안고 슬퍼하는 여신의 형태는 가장 유명한 예로 삼는 기독교 예술의 ‘피에타’(Pieta), 즉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흡사하고 또 그 모델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 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성 베드로 성당 안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그 아들의 음상한 죽음이 놀라울 정도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그 고귀한 조각은 대리석으로써 나타낸 가장 우수한 구상 중의 하나이다.... ”36)
(335.3)
 

알렉산드리아의 봄의 대제례 대 행진
(335.4)
 
 

이집트에서는 해마다 태양신 대축제 행사가 있을 때는 태양신 라 (Ra)는 그의 배를 타고 대 행진한다. 좌측의 그림은 람세스 2세가 건축한 이부심 벨의 태양신 대 신전에서 사제들이 라의 배에 태양상을 실어 매고 행진하고 있는 모습. 라 태양신 배의 태 양원반이 돋보인다.
 

상 : 오늘날도 이탈리아 나폴리의 시가 행진에서 신도들이 제나로의 상과 몬스트란스(a processional monstrance)을 매고 대 행진하고 있다.
하 : 모자이크는 사모스의 디오스쿠리데스가 서명한 작품으로서, 키케로의 폼페이 별장 벽화에서 발견된 두 작품들 중 하나이다. 모자이크에 나타난 악기들은 로마의 악극단과 종교 행사에 널리 보금되어 활용된 것이지만, 이 악기들은 프리기아 사람들이 처음 제작하여 사용했던 것을 에트루스카(Etruscans)인들이 로마에 정착하기 위해 이주해 올 때 그들로부터 전수하여 로마에 가지고 온 것이었다. 폼페이 출토, 나폴리 국립 미술관 보관, 이태리
 “「신의 위대한 어머니」와 그녀의 애인이나 아들에 대한 숭배는 로마 제국 하에서는 매우 보편적이었다. 여러 비문들의 증명에 의하면 이 둘에 대한 숭배는 ... 이탈리아 특히 로마에서 ... 있었다. 그 숭배는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 후까지도 잔존했었다.... 잔인한 야망성과 정신적인 영검을 기묘하게 혼합한 「위대한 어머니」의 종교는 이교의 최후 시대에 전 로마 제국에 퍼지고, 생활의 이국적 이상을 유럽의 민족에게 침투시킴으로써 고대 문명의 전 조직을 점차로 침식”37)케 했다. (339.1)
 

안드레아 델 사르토, 피에타, 1519~30년 피렌체에서 제작, 1648년에 황제 페르디난트 3세가 매입. 비인 미술관 소장, 오스트리아
(339.2)
“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제례가 같은 계절에 같은 장소에서 거행되었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놀랄만한 일치이다. 왜냐하면 춘분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한 곳들은 프리기아와 고울 그리고 바로 앗티스에 대한 숭배가 발생하였거나 혹은 가장 뿌리를 깊이 내린 곳이 로마였기 때문이다. 이 일치를 우연한 것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는 점이 너무나 많다.... ”38)
(340.1)
 

미켈란젤로의 “라 피에타” 바티칸베드로 대성당 소장
(340.2)
 “전체적으로 보아서 기독교의 제례와 이교의 그것과의 일치를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밀접하고 또 일치되는 점이 너무 많다. 그 일치는 승리를 쟁취한 교회가 비록 정복되었으나 여전히 위험한 그 이교도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이 성직자들은 기독교가 세계를 정복하려면 그 창시자의 지나치게 엄격한 교리를 완화시킴으로써, 다시 말해서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을 조금씩이라도 확장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인식하였다.”39) (3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