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형벌과 은혜. 12장부터, 다윗의 죄가 “적절하게” 처벌되었다는 증거들을 나열하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행위에 합당하게 대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친절을 보이신 증거들을 나열하라. 죄와 형벌과 은혜의 의미에 관하여 이 목록들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해석하라. (253.2)
 ■ 말씀을 탐구함
 폭풍 전의 마지막 전투(10:1-19)
 제10장은 다윗과 암몬 사람들의 전투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다윗의 사신에 대한 새 암몬 왕 하눈의 굴욕적인 대접에 의하여 야기되었다. 다윗의 예절을 간계로 잘못 알고 암몬 사람들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수염도 반, 옷도 반만 남겼다(4절). (253.3)
 비록 애초 다윗의 반응은 절제된 것이었으나, 그는 만회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곧 암몬 사람들은 문제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연합군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요압의 인도를 받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암몬 사람들을 이겼다. (253.4)
 이 기사 중 한 놀라운 대목은 요압에 대한 긍정적인 빛을 비춘다. 늘 영민한 전략가인 요압이 여기서는 여호와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보였다.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12절)고 그는 말하였다. (253.5)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요압이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표준으로 본다면, 그는 재능 있는 사령관으로, 효과적인 계획을 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이 격렬한 전투 속에서 떠오른 가장 용기를 주는 말은 요압이 신자였다는 것이다. 만일 다윗의 완고한 장군에게 희망이 있었다면, 우리의 친구나 원수 중 가장 완고한 자에게도 희망이 있다. 참으로,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254.1)
 이 장은 다윗이 아람인들과 암몬 연합군들을 패퇴시킨 보고로 막을 내린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겼다. 더군다나 그들은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였다(19절). (254.2)
 그러나 암몬 사람들은 굴복하지 않고 버티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는 그것을 마무리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11-12장에서 다시 출전하려 하였고, 다윗의 군사들도 그리하였다. 다윗은 집에 머물면서 문제에 빠져들었다. (254.3)
 5장으로 돌아가서, 다윗과 여호와는 다윗이 블레셋을 치기 전에 긴밀한 대화를 나눈다. 8장의 승전 보고에도 다윗이 여호와께 헌신한 대목과 다윗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이 나온다. 그가 약탈물을 여호와 앞에 바친다(11-12절). 그리고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14절). 그러나 8:14의 그 언급 후에 저자는 11장 마지막의 무서운 선언이 내릴 때까지 여호와가 다윗의 삶 속에서 사라진 것으로 그렸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절). 여호와는 9장의 므비보셋이 나타나 다윗의 보호 아래 있게 된 이야기와, 10장의 암몬과의 전쟁에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와에 대한 유일한 언급은 12절의 요압의 놀라운 증언이다. 그리고 운명의 11장에서 저자는 여호와를 언급해야 자연스러울 부분에서까지도 여호와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절에서 다윗은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내보냈다. 11절에서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를 언급하였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는 대신에, 다윗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문자적으로 그 맹세는 “왕의 사심과 왕의 혼[네페쉬]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 것이다. 이 모든 대목은 여호와의 이름이 사용되기 적절한 곳들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11장 마지막에 그가 나타날 때에는, 다윗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가장하고 지냈는데 마치 천둥처럼 울렸다: “다윗의 소위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절). (254.4)
 하늘 문에 거의 이를 듯이 올라간 왕이 지옥으로 곤두박질하는 순간이다. 그는 홀로 몰락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타락이 순간적으로 온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다윗처럼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은 여호와께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가 떨어졌을 때에, 그는 하룻길 정도 멀리 있었다. 이전에 시글락을 떠나 유다로 오기 전에 그는 여호와께 물었다: “내가 ...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셨다: “올라가라!”(2:1). 다윗이 그날 밤 지붕에 올라갔을 때에 그는 여쭙지 않았다. 만일 그가 물었다면 세상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55.1)
 지붕에서 떨어짐(11:1-27)
 모든 해석자들은 11장이 다윗의 운명의 전환점이라고 본다. 폴친은 이렇게 말한다: “다윗의 이야기의 중심에서 우리는 바람 빠진 풍선에 가깝기보다는 거품이 터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된다. 11-12장에 이어 나오는 비극적인 사건들은 이전 장들의 폭발적인 사건들의 후속적 반향에 불과하다”(David, 119). (255.2)
 사무엘상․하의 기자가 지금까지 다윗의 어두운 면에 대한 미묘한 암시만 허락하는 중에 다윗이 영광스런 등극을 하도록 허락하였다면, 이제는 그 미묘함을 떨쳐버리고 확연히 들춰내었다. 역대기의 저자가 다윗의 등극에 따른 저주스런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무시한 사실은 이 사건들이 사실상 저주스런 사건들임을 확정하는 것이다. 역대기 저자의 침묵에 근거하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역대기의 저자는 다윗의 가장 요란한 죄들, 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의 암살 등을 전하지 않는 사실이 또한 부각된다. 사실상, 역대기는 밧세바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우리아는 다윗의 무사 30인의 목록에만 나타날 뿐이다(대상 11:41). (255.3)
 그러나 사무엘상∙하의 구조에 관한 한, 다윗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폴친은 그 점을 이렇게 말한다: “다윗이 원래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지금에 와서 큰 실수를 범하였는지, 혹은 독자들이 지금에서야 다윗은 항상 계산적이고 자기만 돌보는 사람이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든지, 그것이야말로 그 이야기 속에서 미제로 남아있는 여러 개의 공백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David, 119). (256.1)
 그러나 다윗의 이전 역사가 애매하였다 하더라도, 11-12장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한다. 11장에서 우리는 갑자기 다윗을 본다. 12장에서 다윗은 불현듯 자신을 본다. (256.2)
 피상적으로 보면, 11장10장의 마무리이다. 즉 암몬과의 전투가 계속된다. 팔레스타인의 겨울은 대개 전투 일정으로는 너무 축축한 날씨이기 때문에 봄이 되어야 다시 적의가 돌아온다. 그래서 11장을 시작하는 말이 이와 같다: “봄이 되어, 왕들이 출전할 때에, 다윗이 요압과 왕의 신복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내보내었다. 그들이 암몬을 패하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렀다”(1절). (256.3)
 다윗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결백은 1절 마지막에서 끝난다. 그 뒤를 잇는 이야기는 달리 상상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256.4)
 그의 지붕 위에서 다윗은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는데,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는 그녀를 원하였다. 종자를 보내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그는 그녀를 취할 수 있는지 묻지 않았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보면 확실한 것이 그는 언제냐고 물었지, 만약이나 혹이라고 묻지 않았다. 성경은 다윗이 그녀가 유부녀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그것에 관하여 주저없이 밝혔다. 보고를 받고, “다윗은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왔고, 그는 그녀와 동침하였다”(4절). 그리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256.5)
 얼마 후 시간이 지나서 그녀는 다윗에게 기별했다: “내가 잉태하였나이다”(5절). 이것은 사무엘하에 나오는 밧세바의 말의 유일한 직접 인용이다. 다윗은 무마하는 일에 신경을 썼다. 왕의 요구에 따라 요압은 우리아를 전선으로부터 집으로 보내었다. 요압과 전선에 관하여 물은 후 다윗이 말했다: “집으로 가서 발을 씻으라”(8절). “네 발을 씻으라”는 것은 평상적인 휴식을 말할 수도 있으나, 성 관계를 듣기 좋게 말한 것일 수도 있다(비교 11절).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우리가 여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삼상 21:5)고 말한 것은 근무 중에 있는 군사는 금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아의 행동과 그의 말은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료 군사들에 대한 그의 충정은 더 끈질겼다. 그는 집으로 가려하지 않고 “왕궁 문에서 그 주인의 신복들로 더불어” 자기를 택하였다(11:9). (2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