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3. 연구 방법 (나의 모든 계몽된 빛은 그리스도의 것임)
 밀러주의자들은 하늘 성막을 “척량함”
 1844년 대실망 직후의 몇 년간은 월리암 밀러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대한 믿음을 몽땅 포기하였다. 그러나 여섯 명 정도로 구성된 작은 무리들은 성경은 잘못일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 말씀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잘못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낙담을 극복하고 관련된 성경절들을 조심스럽게 다시 연구하였으며, 그들의 경험은 “달”“쓴” 경험을 통과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계시자의 이상(異像)을 거울에 비춘 모습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소 정결”을 취급한 모든 밀러주의 기별을 재조사하기 시작하였다. (50.4)
 엘렌 화잇은 이같은 밀러주의자들 중 하나였으며, 그녀는 그들의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묘사를 남겨 주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을 바라던 자들에게는 위로가 없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연구함으로 귀중한 지식을 얻었다. 그들은 구원의 계획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매일 그들은 거룩한 책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하나의 성경절이 다른 성경절을 해석해 줌으로써 한 말씀도 헛되게 사용되지 않고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어 있는 놀라운 조화를 발견하였다”(교회증언 1권, 677). 오늘날 학생들도 성소의 표상과 상징들을 연구할 때에 “한 말씀도 헛되게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50.5)
 그들은 거의 그 즉시 선지자 다니엘이 언급한 “성소”(단 8:14)는 그들이 생각했던 대로 세상이 아니라,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봉사하고 계시는(히 8:1 이하)하늘에 있는 “장소”(렘 17:12)임을 알았다. 구약의 표상으로부터 그들은 그분께서 1844년 10월 22일, 원형의 대속죄일에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는 당신의 특별한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그 일을 마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50.6)
 밀러주의자들은 예언되었던 바를 경험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이 하박국의 “기다리는 시간”(합 2:1~3)을 통과하였으며, 요한이 인내하는 것으로 나타냈던 바를 경험하였고, 또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척량”하라는 하늘의 명령을 성취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한 문제 한 문제가 하늘의 주 하나님에 의하여 정립되었다. 그러므로 과거에 진리였던 것은 오늘날에도 진리이다”(가려뽑은 기별 2권, 104). 그들의 심령에 타오르는 구주의 중보 사업에 대한 모습과 더불어 그들은 예언의 시나리오에서 다음 단계, 즉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 10:11)는 명령을 시행할 준비가 되었다. 다른 아무 그리스도인들도 이같은 진리를 전파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밀러주의자들의 이 무리들은 결국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로 발전하였다. 1853년에 제임스 화잇은 “성소 문제는 우리의 신앙과 소망의 기초가 되므로 주의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51.1)
 이 시련의 경험을 통과한 자는 뒤에 오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진리가, 하나님께서 이 특별한 사업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인도하시는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서 정한 시기에 밝혀져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예언의 정확한 성취를 한걸음 한걸음 계속 따랐으며 이 사업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갖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며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일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저들의 말’을 믿어야 한다”(가려뽑은 기별 2권 111). (51.2)
 어떤 물건이나 가구에 대하여 “실측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안사가 먼저 다른 모든 부분이나 전체와 관련되는 각 요소의 치수들을 모아야 한다. 다음에는 부분들을 구성하는 재료들과 필요한 양을 생각해야 한다. 이같은 구체적인 일은 성소 연구에 바쳐져야 될 일에 대한 예증이다. 모든 특별한 상징들은 “척량”되어져야 하며, 그 비례와 재료와, 위치와 관계들이 주의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건물과 그 기구와, 희생물과, 제사장 직분과, 축제와 의식들이 주의 깊이 고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각 부분에 의하여 상징되는 진리는 하늘 성소에서 수행되는 실체와 비교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봉사의 이같은 관계는 개인적으로 학생의 생애에 적용되어야 한다. (51.3)
 오늘 그리스도인은 성막을 “척량”해야 한다
 이들 초기 밀러주의자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우리는 계속해서 성소의 모든 세부 사항들을 연구해야 한다. 처음에는 우리 구주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하여 언급할지라도, 다음에는 성막에 대하여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예수님은 진정한 모본이시다. 그분의 자아 희생적 생애는 우리의 모본이다. 나는 그 모본이 거의 연구되지 않고, 그들에게 거의 존중되지 않고 있음을 보았다”(교회증언 1권, 174). 생각이 깊은 학생은 건물과 기구와, 제사장 직분과 의식과 같은 부수적인 사건들 너머로 구주를 보아야 한다. 다윗은 이 세세한 것들을 응시하였을 때, “그 전에서 말하기를 모든 것이 영광이라 하도다”(시 29:9)라고 외쳤다. (51.4)
 에스겔의 성전에서 하늘의 감독자가 사용하고, 하늘 성전을 척량하도록 요한에게 전달되었던 거룩한 척량 “장대”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친히 “장대”로 불리워지신다(사 11:1; 비교, 미 6:9). 그분의 생애와 봉사를 척량자로 사용함으로 우리는 성소의 의미를 “척량”해야 한다. (52.1)
 성소에 대한 주제는 중요하다
 엘렌 화잇은 각 그리스도인이 이같은 연구를 계속하도록 권고한다. “성소에 관한 문제는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크산 대제사장의 위치와 사업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을 활용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차지하기를 바라시는 그 위치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이같은 주제에 심사 숙고하는 것이 참으로 긴요하다”(각 시대의 대쟁투, 488). (52.2)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성소는 전적으로 신약의 눈을 통해서 자세히 조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막의 많은 국면의 의미는 신약이 있기 수세기 전에 통찰력이 있는 독자들에 의하여 파악되었다. 개인적인 견해로, 신약의 진술은 면저 있은 구약의 빛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표상학상의 예언들을 성취시키셨을 때, 이 성소의 상징들로부터 나오는 빛은 분명하게 빛났으나, 그 빛들은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 (52.3)
 바울은 구주의 죽으심과 하늘 성소에 서의 승리의 봉사를 공허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의 고대 예증들에 충분히 익숙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이같은 표상들을 이행하신 일에 대한 그의 진술은 오직 구약의 빛이 그것들 위에 비추이기 때문에 분명하게 된다. 신구약으로부터 나온 사상들이 모이게 될 때, 성막에서 가르쳐진 구원의 계획에 따르는 의미는 더욱 증가된 광채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성소의 상징 연구에 대한 이같은 제안들을 적용하여,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어린양을 가지고 시작해 보자. (52.4)
 구주는 대표적인 어린양이시다
 예수께서는 시험을 받으시기 전후에 침례 요한에 의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두번씩이나 언급되었다(요 1:29, 36). 이 그림으로 그림 언어(pictureword)는 저 애매하고 우는, 네 다리와 털가죽과 꼬리와 두 개의 작은 뿔과 쫑긋한 귀를 가진 동물을 우리 눈으로 봄이 없어도, 우리의 마음에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인식하고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당신의 아버지께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죽도록 내어 주신 부드럽고 친절하신 우리 구주시다. 오랜 세월 사용됨으로 그 상징은 현실이 되었다. 거룩한 상상력의 이같은 습관적인 적용은 성막에 있는 모든 표상과 상징들을 가리키도록 해야 한다. (52.5)
 모세와 이사야와 우리 구주께서는 희생 제물인 어린양에 대한 매우 많은 세부 사항에 주의를 돌리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은 모든 다른 종류의 희생물에도 적용된다. 어린양은 순결하고, 어리고, 흠이 없어야 하며 “천산(千山)의 양떼”의 크신 소유주에 의해서 값없이 제공된 것이어야 하였다. 어린 양은 자발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자에 의해서 제단에 바쳐져야 하였는데, 그는 그것을 줄로 묶어, 땅에 내던져, 진흙 속에서 그의 온 무게에 짓눌리게 한다. (52.6)
 그런 다음 신중하게 그의 무력한 대속물을 도살한다. 우리가 도살하는 칼날 위에 태양의 번쩍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리고 그 몸서리치는 죽음의 고뇌와, 목구멍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피를 목격하게 될 때, 우리의 상상력은 그 희생물과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심장이 공포로 뛰게 되는 것은 이러한 상징과 표상들 속에 깊이 새겨진 이같은 활동과 사상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 행하는 실체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53.1)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상상력이 사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