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2 장 창조의 안식일인가? 의문의 안식일인가? 제 1 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역사에 나타난 창조 안식일
 구약에 나타난 창조 안식일(Creation-Sabbath)
 안식일의 기원에 대한 성서적인 견해는 명백하다: 즉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서, 곧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쉬시고” “복 주시고” 그리고 “거룩하게 하신”(창 2:2, 3) 삼위 하나님의 행위의 결과인 창조 주일의 완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창세기 2:2, 3에서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활동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진술한다. “쉬셨다”(rested)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인 사바트(sabat)는 휴식(relaxation)이 아니라 중지(cessatio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후자의 사상은 출애굽기 20:11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인 누아(nuah)에 의해서 표현되고 있으며, 거기서는 하나님의 쉼이 하나의 인간의 쉼의 모델로서 인류학적인(anthropological) 기능을 달성하고 있다. 어떻든, 창세기 2:2, 3에서 하나님의 쉼은 우주론적인(cosmological)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구절은 칼 바르트(Karl Barth)가 제시하고 있는 바대로, 하나님께서 “이 독특한 창조에 대해서 창조주로서 만족해 하셨다. . . 그는 또 다른 창조의 과정을 갖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는 또 다른 창조를 필요하지 아니하셨다.”4)는 표현을 하는데 돕고 있다. 이 사실을 승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멈추셨다. 창세기 2:3은 창조주께서 그 전날에 짐승들과 아담과 하와를 축복하신 것처럼 일곱째 날을 “축복하셨다”(blessed, barak)고 확정한다(창 1:22, 28).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들은 단순히 “선한 소원들”만이 아니라, 그것들이 열매맺고, 번성하며 행복과 풍요로운 생애를 보증하는 것들이다(시 133:3). 일곱째 날이라는 말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유익하고 활력이 넘치는 날이 되도록 하므로 인간의 생애가 풍요롭고 또 신선하게 만드실 것을 약속하셨다는 의미가 있다.5) 출애굽기 20:11에서, 일곱째 날의 창조의 축복은 분명히 주일마다 오는 안식일과 연결되어 있다. (36.1)
 창세기 2:3 역시 창조주께서 “복 주었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확정한다. 여기와 또 안식일 계명 모두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어근 까도시(שׁדק〔qdš〕, holy)로부터 온 끼데시(qiddeš, piel: 강의 능동형)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히브리어에서 “거룩한”(holy) 또는 “거룩”(holiness)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뜻은 거룩하게 사용하기 위한 “구별”(separation)이라는 말이다. 안식일이라는 말에서, 그날의 거룩성은 이날을 다른 여섯 날로부터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안식일의 거룩성은 사람이 준수하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날을 통해 인간이 그들의 생애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자유롭고 더 충만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곱째 날을 하나의 통로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으로부터 유래된다. (36.2)
 창조-안식일의 중요성
 구약에서 창조 안식일이 지극히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일곱째 날을 준수하라(출 20:11)는 명령의 신학적인 동기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의 표(출 31:17)로서의 기능을 위한 신학적인 칭의를 마련해 준다는 사실에서 지적되고 있다. (37.1)
 일곱째 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출 20:10)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명령에 주어진 신학적인 이유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출 20:11)기 때문이다. 창조 안식일과 안식일 계명 사이의 결합은 너무나 밀접하여 전자는 후자를 위한 기초를 마련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1) 창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모본을 따르는 것이고,

 (2) 하나님을 창조주로 승인하는 것이며,

 (3)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안식과 축복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37.2)
 창조 안식일은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의 “한 표징”(`ôth)으로서의 역할도 제공한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출 31:17). 표징의 특성은 그 것 너머의 어떤 것을 가리키고, 확실한 실체에 대한 이해를 하도록 중재하거나, 아니면 부합하는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6) (37.3)
 창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약의 표징으로서, 안식일은 회고하고 앞을 내다봄으로 구속사(언약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중재한다.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하고 또 하나님을 본래의 완전한 창조의 주인공인 창조주로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초청한다(창 2:2, 3; 출 20:8, 11; 31:17). 또한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그 본래의 완전함으로 회복하기 위한 그분의 “영원한 언약”(출 31:16; 히 4:9)을 성취하기 위해 앞을 내다보고 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도록 용기를 준다. 따라서, 안식일은 창조(창 2:2, 3; 출 20:11; 31:17)와 구속(신 5:15; 사 56:1-4)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서 있다. 그것은 과거의 완전한 창조로 우리를 안내하고, 또 그것은 지속적으로 미래 곧 궁극적인 회복을 가리킨다. (37.4)
 신약에 있는 창조-안식일
 신약은 안식일의 창조적인 기원을 인정하고 있다. 그 분명한 예를 마가복음 2:27에서 발견한다. 그 구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며 안식일의 본래의 목적을 언급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해 안식일을 깨는 책임이 있음을 반박하시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선택하신 단어들은 의미심장하다. “만들었다”(made-ginomai)라는 동사는 안식일을 처음 “만드는 것”(making)을 암시하고 있으며, “사람”(man-anthropos)이라는 단어는 그것의 인간적인 기능을 암시한다. 따라서 안식일의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가치를 세우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그 안식일의 본래의 권리로 돌리신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 이유는 주님을 위해서는 처음 시작할 때의 법이 더 탁월하기 때문이다. (37.5)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본래의 의도의 중요성이 모세의 법에 따라서 만들어졌던 결혼제도의 타락을 보고하는 또 다른 한 경우에서 강조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고 말씀하시면서 본래의 에덴의 기원으로 되돌려 놓으신다. 그런 후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을 위한 결혼과 안식일 제도의 근본적인 가치와 기능을 명확히 하시기 위해서 그것들의 창조의 기원을 추적하신다. (37.6)
 어떤 저자들은 이 유명한 그리스도의 선언을 “인간의 복리가 안식일의 쉼보다 더 우위에 있으므로” 안식일은 “더 이상 매력적인 축복이 아니라 고역이 되었다. 따라서 그 날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날을 반대하거나 부주의하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7)라는 의미로 주석한다. (37.7)
 적어도 이런 해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어진 율법에 대한 그 본래의 의도가 달성될 수 없었으므로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폐지하셔야만 했다는 인간의 근시안적 사고가 그 책임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추리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법의 유효성도 그것의 본래 의도된 목적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이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한 결론은 어떤 계명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중재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들이 된다. (38.1)
 더 나아가서, 이런 말을 “인간의 복리가 안식일의 쉼보다 우위에 있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안식일의 쉼이 그들의 복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독단적으로 인간에게 부과되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로 그 말씀과는 역행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dia) 있으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안식일이 사람의 창조 후에 왔으며(egeneto), 사람을 규율과 법의 노예로 만들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의 육체나 영적인 복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38.2)
 사람의 복리는 안식일의 적절한 준수로 말미암아 제한을 받지 않고, 오히려 보증을 받는다. 그 후, 이런 기억할 만한 확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계명을 폐지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복리를 위해 그것의 의도된 기능을 결정하셨을 때의 그 본래의 창조에 대해 호소하시므로 그 계명의 영원한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38.3)
 히브리서 안에 있는 창조-안식일
 창조 안식일에 대한 또 다른 분명한 언급이 히브리서 안에서도 발견된다. 4장에서, 저자는 안식일의 쉼의 우주적이고도 영적인 특성을 두 구약의 본문들, 즉 창세기 2:2시편 95:11을 밀착시켜 사용하므로 입증하고 있다. 전자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히 4:4; 창 2:2, 3 참조)고 말하므로 안식일의 쉼의 기원을 창조로 올라간다. 후자는(시 95:11), 이러한 하나님의 쉼의 한계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쉼(히 4:3, 5, 10)에 들어가므로 발견되는 구원의 축복을 포함시킨다. 우리의 직접적인 관심은 그 구절에서 언급된 쉼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지 않고,8) 오히려 저자가 그것의 기원을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히 4:4)라고 말하므로 창조의 때로 올라간다. (38.4)
 문맥은 분명히 저자가 하나님의 “일”“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히 4:3)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의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술의 입증 가치는 저자가 안식일의 창조 기원에 대해서 논쟁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하므로 시인하고 있다는 사실로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 따라서, 히브리서 4장은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이 옹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로서 제시되고 있다. (38.5)
 유대인의 역사에 나타난 창조-안식일
 이 문제를 결정짓는 성경 외의 자료들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의 역사와 그리스도인들의 역사 모두에서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에 대한 광범위한 인정을 발견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기원에 대해 두 다른 견해를 전개시켰다. 광역적으로 말하면, 두 견해는 언어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팔레스틴(히브리)의 유대교는 안식일을 절대적으로 모세의 때에 한 국가로 등장하게 된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을 맺고 있는 유대인의 법에 국한시킨다. 희년서(禧年書, Book of Jubilees)에서 진술된 바에 따르며, “그는(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제외한 다른 어떤 백성이나 백성들에게도 이 날에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 나라 백성들에게만 그 날에 먹고 마시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승인하셨다(2:31).”9) 비록 부조들이 종종 안식일을 준수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그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기 전에 있었던 예외로 간주된다.”10) (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