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2 장 창조의 안식일인가? 의문의 안식일인가? 제 1 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역사에 나타난 창조 안식일
 대 교리문답(Large Catechism, 1529)에서, 루터는 안식일은 “관습, 사람, 그리고 장소와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지금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유롭게 된, 구약의 다른 법들과 같이 전적으로 외적인 문제이다”36)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견해는 아우스벌그 고백록(Augsburg Confession, 1530)의 제 28장에서 “성경은 안식일을 폐지했는바, 그 이유는 복음이 나타난 이 후에는 모든 모세의 의문의 법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37)라며 더욱 강조되고 있다. (42.1)
 구약과 신약, 그리고 율법과 복음 사이에 대한 루터의 급진적인 구별은 재 침례론자들(Anabaptists), 좌파 청교도들(Leftist Puritans), 퀘이커교도들(Quakers), 메노나이트인들(Mennonites), 후트 무리들(Hutterites), 그리고 근대 율법 폐기론자들(Modern Antinomian Denominations)과 같은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수용되어 발전을 보게 되었다.38)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안식일이 창조의 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고 폐하신 모세의 제도라고 주장해 왔다. 결론적으로,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특별한 날의 준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42.2)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Sabbatarians)
 급진적인 개혁자들은 안식일에 대한 두 반대 개념을 장려했다. 앞에서 언급한 어떤 무리는 구약과 신약 사이를 극단적으로 구분하므로 안식일이나 어떤 날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고 또 은혜의 시대에 대치된 모세 시대의 일부로 보는 루터교회의 이론적인 결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편 다른 무리는 두 복음서 사이에 있는 칼빈의 통일성 있는 논리적인 함축성을 따르면서, 일곱째 날 안식일의 준수를 모든 시대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창조의 법으로 받아들이고 권장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름지어진 “안식일 엄수 자들”(Sabbatarians)이라고 부를 것이다.39) (42.3)
 최근의 연구들은 종교개혁 시기에 훌륭한 무리들이 모라비아(Moravia), 보헤미아(Bohemia), 오스트리아(Austria), 그리고 시레시아(Silesia) 지방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40) 사실, 어떤 가톨릭의 소 분파 목록에는 이들이 루터파들과 칼빈파들 이후에 곧바로 일어난 무리들로 기록되어 있다.41)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는 보헤미아에 있는 안식일 엄수 자들에 대해서 “이제 내가 듣기로는 보헤미아인들 가운데 일종의 새로운 유대인들이 일어났는데, 상당한 미신을 가지고 안식일을 준수하는 자로서, 그들을 안식일 엄수자들(Sabbatarii)이라고 부른다”42)고 언급한다. 이와 유사하게, 루터는 모라비아와 오스트리아 지방에 안식일을 준수하는 무리들이 있었다고 보고한다.43) 사실, 1538년에 루터는 일곱째 날 안식일의 준수를 성경으로부터 논증하는 편지인 안식일 준수자들을 반대하는 서신(Letter Against the Sabbatarians[Brief wider die Sabbathers]을 썼다.44) (42.4)
 로마 가톨릭의 사제로서 최초로 루터교회의 교인이 되었고, 후에 재침례교회의 목사가 된 오스발트 글라이트(Oswald Glait)는 모라비아, 시레시아, 그리고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재침례론자들 가운데 있는 안식일 엄수론자들에 대한 견해를 1527년에서 1528년 사이에 성공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45) 그는 이 전에 사제요 또 재침례론자였던 학식 있는 앤드리어스 핏쳐(Andreas Fisher)의 지원을 받았다.46) 글라이트는 안식일에 관한 소책자[Booklet on the Sabbath](Buchlenn vom Sabbath--1530년 경)를 집필했으나 확장하지는 않았다. 글라이트의 책에 대한 가스파르 쉐벤크펠트(Caspar Schewenckfeld)의 반박 문에서,47) 우리는 글라이트가 그리스도인 시대를 위한 십계명의 유효성과 적절성을 받아들이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2.5)
 글라이트는 안식일 계명이 할례와 같은 일종의 의문의 법이라는 그의 비평에 대한 논쟁을 반박했다. 그 대신, 그는 “안식일은 창조가 시작될 때부터 명령되어 지켜졌다”48)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낙원에서 안식일을 준행 하도록” 명령하셨다.49) 따라서, “안식일은. . . 영원한 소망의 한 표징이며, 또 창조의 기념일로서. . . 세상이 있는 날 동안 지켜져야 할 하나의 영원한 언약이다.”50) 이러한 가르침 때문에, 글라이트는 추방당하고, 박해받아, 결국은 다누베 강에 던져져서 죽음을 당했다(1546).51) (43.1)
 안식일을 지키는 재침례론자들(Sabbatarian Anabaptists)의 가장 탁월한 지도자였던 글라이트의 죽음이 안식일 교리의 보급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이것은 종교개혁 당시에도 폴란드, 화란, 독일, 프랑스, 헝가리, 러시아, 터키, 핀란드, 그리고 스웨덴과 같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있었음을 지적한다.52) 17세기에는, 특별히 영국에서도 안식일을 준수했던 자들이 있었음이 감지된다. 이런 상황은 바우크함(R. J. Bauckham)이 주목한 것처럼,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자로서 그리고 영국성공회의 대변인이었던 그가 일곱째 날 안식일의 오류를 대항하여 스스로 싸우라고 설교했으며, 그들은 렌세롯 앤드루스(Lancelot Andrews), 감독 프란시스 화잇(Bishop Francis White), 리차드 박스트(Richard Baxter), 죤 번연(John Bynyan), 에드워드 스틸링플리트(Edward Stillingfleet), 죤 오웬(John Owen), 나다나엘 홈즈(Nathanael Homes), 요한 월리스(John Wallis) 들이다. 그들의 노력은 17세기에 검증된 그 교리에 무언의 동조를 하게 되었으며, 제칠일 준수자들(일요일에 일하는 것을 옹호했던 사람들임)은 청교도들과 영국 국교의 권세자들에 의해서 부당하게 취급을 받았다.”53) (43.2)
 제칠일 침례교도들(Seventh Day Baptists)은 영국에서 지도적인 안식일 준수자들의 교회가 되었다.54) 미국에서 그들의 첫 교회는 1671년 12월에 로데 아일랜드에 있는 뉴포트(Newport)에 설립되었다.55)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들(Seventh-day Adventists)이 고맙게도 1845년에 안식일에 대한 지식을 전달받게된 것은 전적으로 체칠일침례교도들 덕분인 것으로 인정한다.56) 그 후에 안식일은 제칠일하나님교회(Church of God Seventh Day), 하나님범세계교회(Worldwide Church of God)와, 많은 작은 군소 교단들이 안식일을 창조의 법으로 받아들였으며,5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을 최근까지도 거절해 왔다. (43.3)
 종교개혁적 전통
 종교개혁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 즉 영국 청교도 교회(English Puritans), 장로교회(Presbyterians), 회중교회(Congregatonalists), 감리교회(Methodists), 그리고 침례교회(Baptists)는, 소위 말하는 “타협적 입장”이라고 불려지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안식일을 창조의 법으로 인정을 하면서, 또 다른 편으로는, 일요일을 교회가 이룩한 안식일의 합법적인 대차제도로 옹호하고 있다. (43.4)
 일반적으로 그들은 일요일의 일시적인 준수와 영적인 준수 사이를 구분했다. 칼빈은 정당하게도 앵글로아메리칸 청교도 안식일교회(Anglo-American Puritan Sabbatarianism) 안에서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 이 견해의 개척자이면서 또한 장려자로 간주되고 있다. 안식일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의 기초는 루터의 율법과 복음 사이의 대조에 대한 자신의 거절에서 발견된다. 칼빈은 구약과 신약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안식일 계명을 영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그는 율법을 그리스도교화하려고 노력했다.58) (43.5)
 칼빈은 안식일의 도덕적 국면과 의문의 국면을 나누는 아퀴나스의 구분에 새로운 해석을 제안하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때에, 율법의 의문에 해당되는 부분은 폐해졌다”는 자신의 견해에다 인간을 위한 창조의 법으로서의 안식일의 수용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창조 때에 안식일이 영원한 법으로 주어졌으나, “그 후에는 율법 안에서 안식일에 관한 새로운 교훈이 주어졌는바, 곧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것이며, 그것도 잠간 동안만 주어졌다”59)고 주장한다. (43.6)
 그렇다면 “유대인”의 제 칠일 안식일(의문의 법)과 그리스도인의 첫째 날 안식일(도덕 법)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차이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으며, 특별히 신학적인 의미들을 구별하기 위해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칼빈은 유대인의 안식일을 “표상적인”(typical, [symbolic], 상징적인), 즉 “영적인 쉼인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진리에 그림자를 던져주는 하나의 법적인 예전”으로 묘사한다.60) 다른 말로, 그리스도인 안식일(일요일)은 “표상이 없다”는 말이다.61) 이것으로 그는 분명하게 세 가지의 기본적인 목표, 곧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 하시도록 허락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명상과 교회 봉사의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독립 교역자들을 막는 것 등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고안된 더욱 실용적인 제도라는 뜻이다.62) (44.1)
 해결되지 않은 모순
 영원한 창조의 법으로서의 일요일-안식일(Sunday-Sabbath)과 잠정적인 의문의 법으로서의 토요일-안식일(Saturday-Sabbath)과의 사이에 있는 긴장을 해결하기 위한 칼빈의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둘 다가 동일한 실용주의적인 기능을 성취하고 있지 않는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일요일-안식일은 “자아 포기”와 복음의 “참 쉼”63)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르치므로, 칼빈은 역시 그 날을 유대인의 토요일-안식일을 표상으로 돌린 것과 꼭 같이, 하나의 “표상적-상징적” 의미로 돌리고 있지 않는가? (44.2)
 이러한 미해결의 긴장은 칼빈의 후계자들의 가르침에서 답습될 수 있으며, 끝없는 논쟁을 유발시켜왔다. 예를 들어,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Heidelberg Catechism, 1563)으로 알려진 중요한 개신교회의 고백서를 편집한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는 “일곱째 날의 안식일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께서 지정되었으며, 그분의 본을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의 일로부터 쉬어야 하였으며,” “비록 의문의 안식일이 신약에서 폐해졌지만, 아직도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또 관련되어 있다”고 가르 친다.64) 이런 입장은 후에 유명한 영국의 청교도였던 니콜라스 본데(Nicolas Bownde)에 의해서 1595년에 기록된 안식일 교리(The Doctrine of the Sabbath)라는 기념비적인 작품 가운데서 끈질기게 옹호되었으며,65) 다른 고백문서들, 즉 1619년의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66)와 1647년의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록(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67) (44.3)
 이것들과 다른 유사한 문서들은 소위 말하는 일요일—안식일의 도덕적/창조적 국면(칠일 중 한 날)과 그리스도에 의해서 폐해졌다는 토요일—안식일의 의식적/모세의 국면(일곱째 날) 사이의 의도적이고도 독단적인 구별을 하기 위해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준비의 결여는 칠일 중의 한 날을 지지하는 자들에게 가장 큰 직접적인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44.4)
 도날드 칼손(Donald Carson)은 “만일 구약의 원칙이 실제로 예배와 쉼을 위한 일곱째 날 대신에 ‘예배와 쉼을 위한 칠일 중의 하루’였다면, 우리는 구약의 법이 제사장들을 위해 다른 어떤 날을 기술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한 내용의 결여는 구약의 사상 가운데서 일곱째 날의 중요성을 확증하며, 아울러 일요일을 구약의 안식일의 정확한 신약적 동의어”68)로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크게 의존하고 있는 칠일 중 하루를 반대하고 있다. (44.5)
 일곱째 날(seventh day)의 특성은 유대인들이 창조를 기념하고 영적인 쉼을 경험하도록 돕기 위해 고안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모세와 의문의 한 요소라고 논쟁하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과 꼭 마찬가지로 그 같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어두워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예배를 위해 하루를 바치는 것에 대한 이유에 혼란만을 남긴다는 뜻도 된다. 바우크햄(R. J. Bauckham)은 “16세기 중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것처럼 일요일 준수의 기초에 대한 부정확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혼란이 있게 되었다고 인정한다.”69) (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