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1부 폭풍우 제2장—기독교 지하드8)
 그들의 승리의 함성에 천사들, 장로들 그리고 네 생물이 7중의 경배로 “아멘” 하며 화답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12절). (100.2)
 이제 이상(異像)은 하늘에서 전개된다. 먼 미래에 하늘과 땅이 경배에 연합할 때, 하나님이 참으로 그분의 백성 가운데 거하실 때이다. 백성은 옛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랬듯이(대상 9:33),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계 7:15). 이상은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7:15), 이는 광야의 성소를 연상하게 한다. 그리스어 스케눈(skēnoun, 장막을 치다)은 불과 같은 구름, 즉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 중에 계시는 “임재”의 상징인 히브리어 셰키나(shekinah, 거하다라는 동사 샤칸[shakan]에서 파생됨)와 비슷하게 들린다(출 40:34~38). (100.3)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의 사실(fact)이다. 그분은 물리적으로 그분의 백성과 함께 계신다. 본문은 시편 23편에 대한 암시로 끝맺는다.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7).57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데 만족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를 열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림, 갈증, 뜨거움 그리고 실존에서 오는 고통을 씻어 주실 뿐 아니라, 친히 함께 계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신다. (100.4)
 하늘의 침묵
 선지자는 이제 마지막 인을 주시한다. 그것을 떼면 마침내 두루마리의 내용이 나타날 것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인들처럼 개봉되지 않는다. 매번 요한은 이상에 그 자신이 관련이 되었다. 처음 네 인은 “내가 들으니”라는 표현으로 시작 되었고 다섯째와 여섯째에는 “내가 보니”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일곱째 인은 요한이 듣거나 볼 필요가 없다. 인이 방아쇠를 당긴 사건들이 처음으로 하늘에서 만 일어난다. 앞의 여섯은 세상의 사건들과 관계되어 있었고 인간 역사의 진행을 따랐다. 하지만 일곱째는 단 한 절에 기록된 매우 짧은 순간을 묘사한다.(계 8:1).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묘사하는 대상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쟁의 비명, 짐승의 으르렁거림, 남녀들의 탄식소리, 자연재해의 혼란들(계 6:12~16) 후에 우리는 별안간 침묵을 맞이한다. 완전한 침묵.

  (101.1)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그 사건은 형용할 수 없다. 침묵은 말이나 음악이나 미술로도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침묵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침묵만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다.58 그 침묵은 족히 반시간 동안 지속된다. 하루가 1년을 상징하는 예언적 언어에서59 이것은 1주일에 해당된다(24시간의 하루가 예언적으로 1년이라면, 한 시간은 365일 나누기 24, 즉 15일이 될 것이고, 반시간은 1주일에 해당이 된다). 인간의 역사는 시작했던 대로 종결된다. 창조에 걸렸던 것과 같은 시간으로, 마지막 일주일의 침묵은 태초 일주 일간의 침묵(창 1장)을 반향하며, 이러한 개념은 유대 전승에 의하여 더 확실해진다.60 일곱째 인의 개봉은 두루마리의 내용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강림과 새 창조, 새 세상의 약속, 그것이 우리의 의문들과 우리의 열망과 우리의 고난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101.2)
 주(註)
 1) 욥 37:4을 보라, 참조 계 11:18, 14:2 등.

 2) 참조 계 20:4

 3) 신 17:9; 참조 렘 18:18.

 4) Tannith 2.6; Sukkah 5.6~8; Yoma 1.5를 보라.

 5) 출 25:40을 보라, 참조 히 8:5; 9:23.

 6) 겔 26: 19~21; 욘 2:6; 합 3:10을 보라, 참조 Philippe Reymond, L'Eau sacree, savie, et sa signification dans l'Ancient Testament, Vetus Testamentum, Supplements(Leiden: 1958), vol. 6, p. 231. 이러한 이미지는 동 시대의 다른 문화나 다른 신화에도 나타난다. 바벨론 신화에는 세 상의 기원을 물의 신 티아마트에 대한 바벨론 신 마르둑의 승리로 묘사하고 있다.

 7) 시 136:6.

 8) 사 27:1; 40:12.

 9) 시 74: 12, 13; 89: 13~15.

 10) 렘 49:36; 단 7:2.

 11) 계 7:1; 20:8.

 12) Hermann L. Strack and Paul Billerbeck, Kommentar zum Neuen Testament aus Talmud und Midrash(München: 1922~1961), vol. 3, p. 799.

 13) 시 132:17; 렘 48:25; 단 7:8, 11, 21; 슥 1:18, 19등을 보라.

 14) 행 7:55, 56; 빌 2:9~11; 히 8:1, 2; 10:19~22 등을 보라.

 15) Leslie C. Allen, Psalms 101-150, Word Biblical Commentary(Waco, Tex.: 1983), vol. 21, p. 80; Gerhard von Rad, “The Royal Ritual in Judah,” in The Problem of the Hexateuch and Other Essays(London: 1966), pp. 103ff을 보라.

 16) 출 24:7; 왕하 23: 2, 21; 신 17:18; 왕하 11:11~13; 23:3 등.

 17) 우리가 연구하는 계시록의 본문에서는 출애굽기의 성소봉사의 개시를 다루는 본문(출 40)처럼 성소의 모든 부분(등대, 향의 대접, 뿔, 그룹)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언급하는 다른 경우는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대속죄일의 문맥(레 16)이 유일하다. 그러나 여기 어린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대속죄일을 가리키는 것일 수는 없는데, 전통적으로 어린양의 희생은 성소의 낙성식에 있었고(출 40:29; 참조 레 10:10) 대속죄일과는 무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속죄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약궤(레 16:11~15)에 대한 언급도 거기는 없다. 게다가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는 지성소를 가리키는 말인 나오스(naos)도 계시록 4~5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 11장에는 나온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단어가 계시록의 후반부에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계 11:2, 19(2 회); 14:15, 16; 15:5, 6, 8(2회); 16:1, 17; 21:22(2 회) . 전반부에 유일하게 이 단어가 나오는 두 구절은 미래의 시간에 관련된 언급이다.

 18) 행 1:8; 2:38, 39; 엡 5:18.

 19) 창 49:10; 삼하 7, 대상 17, 단 9:24∼27; 눅 1:32, 33.

 20) 요한계시록 1장 19절은 “이 일 후에”(계 4:1)라는 표현을 설명해 준다. “이 일”은 문자적으로 일곱 교회의 시대를 가리킨다. “이 일 후에”는 그러면 요한의 동시대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시대 다음의 때와 관련된다. 새국제역(NIV)이 같은 단어를 요한계시록 1장 19절에서는 “후에”(later), 요한계시록 4장 1절에서는 “이 일 후에”(after this)라고 번역한 것을 주목하라.

 22) 욥 40:9; 시 45:4; 눅 6:6; 행 3:7; 사 48:13; 출 15:6~12; 시 17:7 등.

 23) 몇 가지 요소들이 그 두루마리가 그리스도의 미래 통치에 대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통치는 더 우월한 권위 아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즉위할 때 “언약의 책”으로써 그 종주(宗主)에게 구속되는 것과 같은, 역사를 주관하는 분의 주권이다. 에스겔서의 구절과 평행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 즉 그것이 보좌에 앉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렸다는 것과(겔 1), 안팎으로 기록되었다는 점(겔 2:9, 10; 참조 계 5:1)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에스겔서의 이 구절이 계속해서 이 두루마리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겔 2:10)다고 언급하는데, 그 말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심판과 경고로 해석된다(겔 3장을 보라) . 마찬가지로, 요한은 그의 이상 가운데 그 두루마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통치 기간 중에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경고와 심판을 포함하고 있음을 본다. 아마도 그 선지자는 계시록에서 나중에야 완전하게 나타날 심판들을 미리 목격한 것 같다. 계시록 자체와 5장의 “두루 마리”는 동일한 용어, 비블리온(biblion)으로 불린다(계 1:11; 22:7, 9, 18, 19에서 계시록을 가리키고, 계 5:1, 2, 3, 4, 5, 7, 8에서는 두루마리를 가리킴) . 그리스도 예수는 “반드시 속히 될 일” 을 알리기 위하여 두 책을 주신다(계 1:1; 참조 22:6). 계시록이 인봉되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종말론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그것은 “때가 가까우니라”(계 22:10)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계시록을 다니엘와 비교할 수 있는데, 그 책은 “마지막 때까지 ∙∙∙ 봉함”되었으며,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단 12:4; 참조 9, 10절) 것이다.

 24) 쿰란에서 바르 코크바의 서신들 중에 발견된 두루마리들을 보라. Yigael Yadin, The Finds From the Bar Kokhba Period in the Cave of Letters, Judean Desert Studies(Jerusalem: 1963), P. 118; 참조 Frank Moore Cross, “The Discovery of the Samaria Papyri,” The Biblical Archaeologist 26 (1963): 111~115.

 25) 계 1:4, 7, 8; 2:5, 16; 3:11; 4:8; 16:15; 22:7, 12, 17, 20.

 26)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186~190을 보라.

 27) 1 Enoch 90:19, 기원전 161년경에 기록된 부분.

 28) Genèse de l'Antisémitisme(Paris: 1956), p. 133.

 29) 신 11:14; 14:23; 28:51; 대하 32:28; 느 5:11 등.

 30)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65, 66, 72을 보라.

 31) 신 8:3을 보라; 참조 마 4:4; 요 6:46~51; 느 9:15; 시 146:7.

 32) 시 45:8; 슥 4:1~6.

 33) 눅 22:20; 고전 11:25

 34) 눅 10:34.

 35) L'Eglise de saint Augustin à l'époque moderne (Paris: 1970), p. 32.

 36) Isaac, Genèse de l'Antisémitisme, p. 196.

 37) 신 28:49; 욥 9:26; 애 4:19; 합 1:8, 마 24:28을 보라.

 38) 계 1:18; 20:13, 14.

 39) 시 22:14∼29; 91:13을 보라.

 40) 이 표현은 Isaac의 Genèse de l'Antisémitisme, pp. 131ff에 나오는 말이다.

 41) Hitler's Table Talk, cited in Rosmary Ruether, Faith and Fratricide(New York: 1974), p. 224.

 42) Saul Friedlander, Pius XII and the Third Reich: A Documentation, trans. Charles Fullman(New York: 1966)을 보라.

 43) 시 13:2; 35:17, 79:5; 89:46; 94:1~3 등.

 44) 참조 단 12:6.

 45) 레 16:30을 보라, 참조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126~129.

 46) Doukhan, Secrets of Daniel, pp.129~133을 보라.

 47) Doukhan, Secrets of Daniel, pp.108~110을 보라.

 48) 단 7:2을 보라.

 49) 계 10:2,5을 보라; cf. 창 1:1~9; 출 20:11; 느 9:6; 시 95:5; 마 23:15 등.

 50) 또한 시 89:12, 13; 100:38을 보라.

 51) Meredith G. Kline, Treaty of the Great King:The Covenant Structure of Deuteronomy, Studies and Commentary(Grand Rapids: 1963), pp. 18, 19; Meredith G. Kline, The Structure of Biblical Authority(Grand Rapids: 1972), p. 120을 보라.

 52)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18–20을 보라.

 53) 사 15:15; 대상 12:14; 16:15; 시 91:7 등.

 54) 출 18:21; 신 33:17; 삿 6:15; 민 1:16; 수 22:21 등.

 55) Gerhard Kittel, 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 and ed. Geoffrey W. Bromiley(Grand Rapids: 1964–1976), vol. 5, p. 583을 보라.

 56) 마카베오하 11:8; 마카베오상 13:51을 보라; 참조 요 12:13.

 57) Jacques B. Doukhan, Aux portes del'esperance(Dammaried-les-Lys, France: 1986), pp. 243ff3를 보라.

 58) 합 2:20; 습 1:7; 슥 2:13을 보라.

 59) Doukhan, Secrets of Daniel, pp. 108, 109, 143~145을 보라.

 60) 4 Ezra(2 Esdras) 6:39; 7:30ff,; 2 Baruch 3:7,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