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 예수께서 “사망의 열쇠”를 갖고 계시다
 제자들은 의아했다. 그들은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하고 항의했다. 잠들었다는 것은 열이 내려 이제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76.9)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상태에 대해서 너무나 대범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르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 11:11~14)고 밝히 말씀하셨다· (76.10)
 친구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님께 전혀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서 믿는 자의 죽음은 삶과 삶 사이의 짧은 틈일 뿐이었다. 뒤에 오는 영원을 생각한다면 이 짧은 간격은 저녁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는 사이의 간격보다 더 긴 것도 아니다. (76.11)
 “나사로가 잠들었다.” (76.12)
 “나사로가 죽었다.” (76.13)
 “내가 깨우러 가노라.” (76.14)
 이틀 후, 예수님과 그의 무리가 베다니에 도착하자 마리아와 마르다가 이해할 수 없어 울었다. 두 여인은 모두 흐느끼며 예수님을 원망하였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32). 나사로가 죽은 이후로 뜬 눈으로 날을 새면서 이 말은 계속 해서 두 여인의 입술에서 그치지 않았다. (76.15)
 “만약 예수님께서 제 시간에만 오셨어도 우리 오빠는 죽지 않았을 텐데.” (77.1)
 필자도 어머님과 또 잠든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같은 말을 되뇌어 보았다. 틀림없이 요한도 밧모 섬에서 그의 형 야고보의 죽음과 그가 사랑하던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같은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만약 예수님이 먼저 오셨기만 했어도! (77.2)
 예수님은 나사로의 누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셨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3, 24)라고 대답했다. (77.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 26) 하셨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하였다. (77.4)
 예수님께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을 때 신자들은 어떤 의미로도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나사로는 그분을 믿었으나 죽었던 것이다. (77.5)
 예수님의 뜻하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죽는 죽음은 하나님의 눈에는 잠자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으로 깨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의 약속은 너무나 믿을 만하고 또 보증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기 시작한 것 같고 죽음이 예사로운 휴식이나 진배없는 것 같아지는 것이다. (77.6)
 예수께서 우셨다
 그러나, 예수님께 그 친구의 죽음이 전혀 두려움을 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나사로의 무덤 옆에서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5)고 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울었다고 해서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이 여행을 떠나도 운다. 사람이 보고 싶어 우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며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요일 4:7)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운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으므로 “소망 없는 다른 이와같이”(살전 4:13) 슬퍼하지는 않는다. 장의사 직원들이 보고 확인한다. 신자들과 불신자들은 분명히 슬퍼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77.7)
 그러나, 예수님은 오래 우시지 않았다. 나사로는 조그만한 동굴 무덤에 장사되어 둥근 모양의 돌이 무덤 입구를 막고 있었다. 예수님도 곧 그런 곳에 장사될 것이었다(이런 무덤은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일반에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필자의 대학 동료들이 최근에 요르단 동편에서 두 개의 동굴을 발견하였으며, 또 다른 몇 개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77.8)
 예수님은 애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덤 입구로 가 서시고 사람을 시켜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옮기게 하였다. 나사로는 이미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다. 입구가 열려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빛이 굴 속에 쏟아지자 평석 위에 천으로 싸여 눕혀있는 시체 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이 많은 노인들은 그 시체를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그들도 얼마 후에는 저런 모양으로 누워 있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무시무시하다고 소근댔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침착하게 시신을 지켜보고 서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계속 예수님이 더 일찍 오시지 않은 것이 야속스러웠다. (77.9)
 그 때, 예수님이 생명을 불어넣는 간단한 지시를 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 즉시 동굴 속의 시체는 생명력의 움직임을 나타냈다.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다리를 세워 땅위에 일어섰다. (77.10)
 허리를 꼿꼿이 세운 후 모여선 친구들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요 11:43, 44). (78.1)
 드디어 감격의 포옹과 눈물과 기쁨의 환성이 뒤따랐다. (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