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 성소의 신학적인 측면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을 지으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그들이 애굽을 떠나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에 주어졌다(출 25:8). 이 사실은 구속이 성소에 나아가는 것보다 선행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왜냐하면 구속을 받아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 사람만이 그분과의 충만한 교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소는 에덴에서의 상태,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454.2)
 a. 만남의 장소
 성소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만남의 장소이다. “회막”(tent of Meeting)이라는 이름이 그 기능을 보여 준다. 즉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이 만날 수 있는 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출 40:32)이다. 하나님과 만난다는 개념은 출애굽기에서 중요하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시내산에서 만나겠다고 약속을 하셨다(출 3:12). 그들은 그 산으로 여행을 했으며, 그 만남을 위하여 준비했으며(출 19:10, 11), 제 3일에 야훼를 만났다(18절). 시내산은 이스라엘의 첫 성소가 되었다(12절; 24:2-5, 12). 히브리 성소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신 장소인 시내산의 경험을 끊임없이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출 29:43; 시 68:17). (454.3)
 b.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지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산에서 나타났다(출 24:16, 17). 그 영광이 나중에는 성소 안에 거했다(출 40:34, 35). 그것은 그분의 임재의 광채일 뿐만 아니라(출 24:17), 특별히 그분의 신격(person)의 신비이기도 했다. 꿰뚫어볼 수 없는 그분의 영광의 빛은 그분의 내재성과 그분의 초월성을 증거했다(출 33:18-23). 성소로부터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일을 계속하셨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십계명(출 20:1-17)은 이제 성소로부터 선포되었다(출 25:22). 또한 성소로부터 하나님은 왕과 재판관으로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셨다. 이 능력은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온 세상에까지 미쳤다(출 15:17, 18; 23:23; 암 2:5). 성소 내에서의 그분의 국지적인 임재는 어떤 식으로도 그분을 제한하지 않았다. (454.4)
 c. 예배의 중심지
 이스라엘 자손에게 있어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예배의 행위였다(참조 시 85:6). 특히 그들이 야훼를 즐겁게 찬양하기 위하여 왔던 절기들 동안에 그러했다(시 68:24-26; 132:7).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한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와 위로를 발견하기를 희망하면서 그들의 염려들과 필요들을 갖고 성소로 갔다(시 43:2, 4, 5). 때때로, 그들은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의로운 자들 중에 계수될 수 있도록 야훼께로부터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왔다(시 32:1, 2, 5, 11). 거기서 그들은 야훼께로부터 복과 의를 받았다(시 24:3-5). (454.5)
 d. 하늘 성소로 접근하는 장소
 출애굽기 25:9에 따르면 그 성막은 야훼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 주신 “식양”(히브리어 타브니트)을 따라 지어져야 했다(참조 401). 이 개념은 이스라엘의 성소의 참본질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빛을 비춰주기 때문에 연구할 필요가 있다. 타브니트라는 명사는 “짓다”를 뜻하는 바나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구약에서 타브니트는 건물을 위한 구조(시 144:12), 식양 혹은 모델(왕하 16:10; 대상 28:11-19), 어떤 것의 이미지 혹은 표상(신 4:16, 18; 시 106:20; 사 44:13; 겔8:10; 10:8), 혹은 복제품을 가리킨다(수 22:28). 그것은 대개 입체적인 물체를 묘사하며, 대부분의 경우 원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454.6)
 문제는 출애굽기 25:9타브니트가 원본인 하늘 성소를 가리키는 모델인지의 여부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신앙 가운데 하늘 성소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만 있다면, 출애굽기에서 사용된 타브니트는 원본인 하늘 성소를 가리킬 것이다. 구약은 지상 성소의 배후에 더욱 장엄한 구조물, 곧 하나님의 거처가 하늘에 있다고 증언한다. 그 하늘의 거처가 모세에게 보였으며, 그것은 그가 지어야 할 성소를 위한 모델 역할을 했다. 하늘 성소에 대한 언급들이 시편과 예언서들 가운데서 발견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보좌는 그분의 하늘 성소에 있으며(시 11:4) 야훼께서는 그분의 천상의 거처에서 땅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고 계신다고 확언한다(시 33:13, 14; 102:19; 113:5, 6). 하나님의 하늘 거처를 가리키기 위해 다른 용어들, 즉 “성전”(holy temple, 미 1:2; 합 2:20), “성전”(temple, 삼하 22:7; 시 18:6), “성소”(sanctuary, 시 60:6; 150:1), “처소”(dwelling or place, 사 18:4; 1:3) 그리고 “집”(house, 시 36:8)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거처가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분의 “거처”(dwelling place, 시 11:4; 93:2; 단 7:9)뿐 아니라 하늘의 “성소”(sanctuary(시 20:6; 102:19)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된 “하늘들”(heavens)이란 명칭을 발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아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 성소를 가리키는 환유법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시 11:4; 93:2; 단 7:9). (455.1)
 하늘 성소와 지상 성소, 이 두 성소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에 접근할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였다(사 6:1-7).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효력은 그 성소와 하나님의 천상 성전과의 관계로 결정되었다. 솔로몬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서원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동해 주시고(왕상 8:31, 32), 백성들이 용서를 구할 때는 언제나 그분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했다(34절. 참조 36, 39, 43). 지상 성소에서 행한 의식(儀式)들의 효험은 하늘 성소에서 발생한 일에 의존했다. (455.2)
 출애굽기 25:9, 40에 나오는 타브니트는 저 하늘의 실재[하늘 성소]를 가리킨다. 지상 성소가 하늘의 것을 본떠서 만들었기에,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몇가지 상응하는 개념을 지목할 수 있다. 첫째, 기능상의 상응점이 제시되었다. 하늘 성소는 우주에서 초월적인 하나님이 그분의 천상의 피조물과 만나는 장소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 8:27)라고 물었다. 하나님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분이시지만 자신을 낮추셔서 그분의 피조물들 가운데 거주하시고, 그들의 행동 영역에 들어오시고, 그들이 그분께 접근할수 있도록 이 땅에 그리고 하늘에 거주하신다(참조 29, 20절). (455.3)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이 만나는 장소인 이 하늘 성전은 또한 예배의 중심지이다. 거기서 하나님의 천사들, 그분의 천군들 그리고 “야훼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자들은 그분을 하늘들 안에 좌정하신 야훼로 친양한다(시 103:19-22). 거기서 또한 그분은 그들에게 그분의 뜻을 드러내시며, 그들은 귀를 기울이고 순종한다(20, 21절). 하늘의 “회중”은 그분이 비길 데 없는 분이기에 그분을 찬양한다(시 89:5-7). 하늘 성소로부터 하나님은 이땅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과 교류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들으실 뿐 아니라 내려오셔서 그들의 고통과 원수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신다(18:6, 14-19; 20:2, 6). 더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그분의 거처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용서를 허락하시며(왕상 8:30, 34, 49, 50) 그들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신다(36절)는 것이다. (455.4)
 하늘 성소가 어떻게든 지상 성소의 모델 역할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 어떤 구조적 관계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상응성은 지상 성소의 크기나 그것을 건축할 때 사용된 재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구조의 건축학적 개념에 의거하여 규정되어야 한다. 건축학적 개념은 다른 형태나 다른 크기를 취할 수 있고, 따라서 구조물을 짓는 데 다른 재료들이 사용될 수 있지만, 그 밑바탕을 이루는 개념은 변하지 않는다. 지상 성소의 두 칸 구조는 두 칸으로 된 하늘 성소를 가리킬 뿐 아니라 또한 그 장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두 국면도 가리킨다. 물론 하늘 성소는 지상의 것보다 무한히 우월하다. 유한과 무한,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 초월적인 존재와 그분의 피조물을 연합시키는 우주의 한 장소가 그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456.1)
 2. 성소, 언약 그리고 죄/부정의 본질
 a. 언약과 거룩함
 하나님의 본성은 결코 타협을 불허하는 거룩함이다(레 19:2). 그분의 거룩함은 그분을 비길 데 없이 비범한 분, 인간이 경험하는 죄와 사망의 세상과는 분리된 분으로 정의한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허락받는 것을 의미한다(출 19:6). 그 언약이 체결되었을 때, 율법이 백성들에게 낭독되었으며 희생 제물의 피가 제단 위에 뿌려졌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언약에 참여했음을 나타냈다(출 24:5-8). 백성들은 언약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방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레 19:2; 20:7, 8). 오로지 죄와 부정을 통해서만 이 언약 관계가 위협을 받거나 깨어질 수 있었다. (456.2)
 b. 죄와 언약
 구약에서 죄를 가리키는 어휘들은 풍부하다(참조 죄론 II. A). 성소 봉사의 문맥에서 죄에 대한 세 가지 견해가 특히 중요하다. 첫째는 죄(히브리어 헤트, “죄, 허물, 표적을 빗나감”)를 특정한 의무를 행하는 데 실패하는 것, 예컨대 언약의 율법을 순종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한다(레 4:2; 사 42:24). 둘째는 죄(아온, “죄악, 패역”)를 비뚤어지거나 그릇된 행동, 바른 것의 왜곡(예컨대, 욥 33:27)으로 칭한다. 셋째, 죄의 진정한 본질은 페샤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범죄, 반역”). 이 용어는 두 나라 사이에 언약을 깨뜨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왕하 1:1; 8:20, 22). 신학적인 문맥에서 페샤는 죄를 언약 및 언약의 주님에 대한 반역의 행위로 정의하며(사 1:2; 렘 3:13; 암 2:6-8),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인 정신을 소유한 것으로 기술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에(창 3장), 죄는 이제 인간의 본성 속에 신비스럽게 엮여지게 되었다(시 51:5; 143:2). 그 문제는 인간의 심령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거기로부터 죄가 솟아나온다(렘 11:8; 17:9; 18:12). 이런 주장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은 언약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4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