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1부 폭풍우 제3장—죽음의 쇼파르
 제3장 죽음의 쇼파르 (요한계시록 8:2~11:19)
 로쉬 하샤나
 그 다음 이상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보좌로 인도한다. 그 곳에서는 일곱 천사들이 나팔을 불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계 8:2). 새로운 일곱 사건의 주기가 막 전개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일곱 편지와 일곱 인에 서도 그랬듯이 우리를 성소 장면으로 데려가는 예언적 이상의 전주곡(前奏曲)이 먼저 나온다. 성소는 유대인 절기의 중심지이며,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사명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에 앞서 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상이 유월절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났었고, 일곱 인의 이상 앞에는 예수님의 즉위 이상이 오순절을 배경으로 나왔었다.

  (109.1)
 이제 쇼파르(shofar, 고대 유대인의 나팔)들이 소리를 울리기 직전에 우리는 제단의 이상을 보게 되며(계 8:3), 거기서 천사는 향을 사르고 있다. 갑자기 천사가 향로의 내용물을 땅에 쏟는다! (110.1)
 이 이상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아침마다”“저녁 때”(출 30:7, 8) 계속하여 향을 사르던 성전 예식에서 유래되었다. 이 의식은 정육면체로 된 단에서 1년 내내 거행되었다. 1년에 한 번, 킵푸르(Kippur)에는 불을 채운 향로에 향을 직접 부어서 “휘장 안” 지성소로 들고 갔다(레 16:12, 13). 본문의 이상은 우리를 매일 의식의 장면으로 데리고 가는데, 거기서 제사장이 성전의 낭실과 단 사이의 바닥에 뜨거운 숯을 쏟는다. 계시록의 천사는 여기서 제사장의 행동을 반사하고 있다. (110.2)
 랍비들의 문서 중 하나인 타미드(Tamid)에는 기원전 1세기의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한 세기 후, 즉 계시록이 기록되고 나서 불과 몇 년 후에 미쉬나에 편입되었다.1 거기에는 예식 전체가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이 본 구절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제사장 중 한 명이 부삽을 취하여 그것을 낭실과 단 사이에 쏟았다. 삽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아무도 옆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다.”2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 8:5). (110.3)
 타미드의 또 다른 구절에 따르면, 삽질을 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예루살렘으로부터 10킬로미터나 떨어진 여리고까지 들렸다고 한다.3 부삽(마그레파[magrefa])의 모양을 보면 왜 그렇게 소리가 크게 났는지 설명해 준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의하면, 마그레파에는 수백 개의 구멍(또는 관)이 있었고, 매 구멍마다 각기 다른 높이의 음을 내었다고 한다.4 매번 삽질을 할 때마다 여러 음이 마치 파이프 오르간처럼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삽의 요란한 소리는 뜨 거운 숯과 어울려서 하나님의 심판과 진도에 대한 인상이 떠오르게 한다. (110.4)
 선지자 에스겔은 베옷을 입은 제사장 같은 천사가 숯불을 예루살렘에 쏟는 동일한 이상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연결을 더욱 발전시킨다(겔 10:2). 그 몸짓은 예루살렘에 떨어질 파멸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다. 실제로 후에 예루살렘은 불로 멸망되었다(겔 24:9; 왕하 25:9). (110.5)
 계시록의 천사가 숯을 쏟는 행위도 동일한 위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낭실과 단 사이에 부삽으로 숯불을 쏟는 것처럼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다”(계 8:5). (111.1)
 성전의 예식을 반영하는 천사의 의식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님 앞에 살라지는 향은 공의를 부르짖는 압제당하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기도를 묘사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1, 2). (111.2)
 본 구절은 다섯째 인의 애가(歌)를 메아리친다. 그 역시 같은 향단으로부터 피어오른다(계 6:9, 10). 천사의 상징적인 행동은 이제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낸다. 그것은 억눌린 자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111.3)
 다섯째 인을 뗄 때는 “땅에 거하는 자들”(6:10)에 대하여 복수를 부르짖는 희생자들의 피가 부어졌었다. 이제 쇼파르는 “땅에 거하는 자들”(계 8:13) 위에 보복이 내리는 것을 선포한다. 일곱째 나팔의 기별 속에는 보복의 의도가 선명하게 공명한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계 11:18). (111.4)
 압제에 대하여 보복이 답을 하듯이, 인(印)에 대하여 쇼파르가 대답한다. 인들은 우리에게 압제를 보여 주었고, 이제 쇼파르들은 심판을 선언한다. (111.5)
 나팔들의 이미지로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실제로 본문은 나팔이 아니라 쇼파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팔”(trumpet)이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살핑크스(salpinx)는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쇼파르를 번역할 때 사용된 말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전쟁이나 재판 같은 엄숙한 일이 있을 때 수양의 뿔을 불었다. 제사장들은 여리고를 정복할 때(수 6:4, 6, 8, 13) 승리를 알리기 위하여 그리고 속죄일에(레 25:9)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하기 위하여 쇼파르를 울렸다.5 (111.6)
 지금까지 계시록에서는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에 앞서서 한 번(계 1:10) 그리고 일곱 인에 앞서서 한 번(계 4:1), 가끔씩 쇼파르를 울려 왔다. 이제 전 역사에 걸쳐서 쇼파르 소리는 점점 강화되고 공명된다. 기도가 하늘에 울려 퍼지듯이, 이제 우리는 끊임없이 쇼파르의 소리를 듣는다. 쇼파르와 기도의 조합은 “나팔절”(다시 말해서 쇼파르의 절기)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다. 이 절기는 오순절 다음에 따라오며, 히브리 월력의 제7월(티쉬리:지금의 9~10월) 초하루이다(레 23:23~25). 그 날은 유대인들의 새해 첫 날(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이다. (112.1)
 열흘 동안 쇼파르의 소리는 유대인들에게 대속죄일(티쉬리월 10일)을 준비하도록 상기시켰다. 매 아침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13가지 속성(출 34:6, 7)과 함께 셀리호트(selihot, 용서를 구함)를 암송한다. 토라의 낭독은 이삭의 탄생과 제사에 관한 구절들을 골랐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요청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구절들이었다(창 21, 22장). (112.2)
 계시록의 문맥에서 쇼파르에 대한 언급은 그 예언적 이상에서 소망, 심판, 회개의 촉구와 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킨다. (112.3)
 하나님 앞에서 베옷을 입고 향을 사르는 천사는 즉위하신 후에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중재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동시에 낭실과 단 사이에 쏟아진 뜨거운 불을 담은 향로는 회개를 촉구하며 극적인 쇼파르의 울림을 메아리친다. (112.4)
 요엘서에도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쇼파르 소리와 “성전 낭실과 단 사이에서” 중보하는 제사장을 짝지어 보여 준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쇼파르]을 불어 ∙∙∙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욜 2:12~17). (112.5)
 나팔절과 요엘 선지자의 훈계에 대한 암시를 통하여 계시록의 이상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고, 또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시켜 준다. 그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부름이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호소이다.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