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1부 폭풍우 제3장—죽음의 쇼파르
 그것은 서방의 기독교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과정이 아니다. 애굽과 바벨론으로 표현된 두세력 간의 투쟁은 가톨릭교회와 그의 세속적인 적대자들의 범위를 넘어선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력은 그것의 종교적·정치적 경계를 넘어서 확장된다. 세속주의는 반 성직적(反 聖職的) 인본주의 정신으로 이슬람과 유대교계에까지 침투해 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오늘날 양 종교에 종교적 근본주의가 밀어닥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야톨라13)들과 랍비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큰 소리를 내고 있다. 이란, 알제리, 이집트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 이스라엘처럼 점점 정치가 종교 권력에 굴복하고 있다.

13) 이란 회교 시아파 지도자의 칭호(역자 주).
(123.2)
 한동안은 세속주의가 기독교계를 비평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 근본주의가 세속적, 자유주의적, 합리주의적인 추세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독교 우파(右派)는 “진정한” 그리스도교 국가 건설을 돕기 위한 정치권력을 얻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유럽도 그러한 경향이 인기를 얻기에 좋은 지세(地勢)를 갖추고 있다. 새로운 기독교 우파는 많은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 정신을 띠고 있다. (123.3)
 우리는 다음과 같이 교회의 역사를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123.4)
 1. 교회는 스스로 도덕적·종교적인 이슈들에 대하여 유일한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바벨로 세우게 되었다. (124.1)
 2. 18세기에는 새로운 혁명 정신이 성직자들에 반대하여 일어났고, 인본주의와 세속적 풍조들을 장려함으로써 후에 그것들은 마르크스주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그리고 진화론적 철학들로 발전하였다. 그것은 바벨론에 대한 애굽의 공격이었다. (124.2)
 3.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세속주의는 선교사 사역과 식민주의를 통하여 다른 비(非) 서방 종교와 문화들로 퍼져나갔다. (124.3)
 4.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주의 운동들의 대두(擡頭)와 전쟁 공포의 기억은 합리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과 종교적·문화적인 가치로의 회귀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 기간은 종교적 베스트셀러와 복음주의 매체 스타들의 시대였다. (124.4)
 우리는 지금 그 과정 중에 두 진영이 하나의 바벨로 연합하기 직전인 넷째 국면에 와 있다. 그러한 전개의 초기 징조들을 우리가 이미 목격했을 수도 있다. 종교 부흥의 배경에는 인간중심적인 분위기가 있으며, 그것은 지난 세기의 세속적 풍조를 특징지었던 사상과 다르지 않다. 종교는 보다 “인본주의적인” 이상(理想)을 향하여 발전해 왔다. 모든 사람 안에 계신 “내재”(內在)하는 하나님이 대개 인간의 이해와는 다르게 위로부터 자신을 계시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 보다 더 우선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124.5)
 뉴에이지 운동의 인기는 또한 우리에게 세기의 종교 부흥에 예기치 않은 왜곡을 가져왔다. 그것은 거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그 운동이 말하는 관용의 메시지를 가르친다. 토머스 베리(Thomas Berry)와 같은 “생태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테야르 드 샤르뎅(Teihard de Chardin)14) 신부도 “어머니 대지”(mother earth)에 대한 새로운 존경심에 영감을 주었다. 그들은 진화(進化)를 일컬어 그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현하신 “성스러운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14)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예수회 신부, 동시에 인류학자로서 “베이징 원인(猿人)”을 발견하였다(역자 주).
(124.6)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연에도, 죽은 자의 안에도, 산자의 안에도, 어디에나 계신다고 하며, 이러한 경향은 나아가 영혼 불멸, 환생의 이론들 그리고 심령술사나 점성술사를 찾는 행동들로 강화된다. 이 모든 추세는 동일한 전제에서 비롯된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계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여기 계시고, 오셨고, 인간으로 성육신하셨다. 바라거나 기도하거나 그분을 기다릴 필요가 어디 있는가? 오늘날 인간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125.1)
 비기독교적인 영역에서 “성스러운 우주에 대한 탐색”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이라고 하는 대변인을 만났다. 근래에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있었던 강연에서 체코 대통령 그는 모든 문화, 사실상 온 인류는 공통적인 영적 차원으로 연합된다는 주장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지구 민주주의”(planetary democracy)를 위한 호소들은 마르크스주의적인 국제주의 이상의 호소를 반향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몰락 이후 그 말은 새로운 의 미를 띠게 되었다. 인본주의와 인간중심적 관심은 이제 종교적인 가치들과 결합한다. (125.2)
 미디어는 일제히 그러한 발달들을 입증한다. 너바나(Nirvana)의 십자가15)로부터 마돈나의 흑인 예수까지, 크리스털 보석 장식으로부터 피어싱을 한 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였다. 애굽과 바벨론이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단순한 증상들일 뿐이다. 교회와 종교는 전체적으로 아직 세속적 · 무신론적 운동들에 대하여 반대한다. 그러나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혼합물 안에 모든 성분들이 들어 있다. 곧 애굽과 바벨론은 바벨이라는 끓는 가마솥 안에 합쳐질 것이다.

15) 미국의 록 밴드인 너바나의 “Heart—Shaped Box”라는 곡의 뮤직 비디오에는 초현실적인 공간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하나가 십자가에 달린 노인이다(역자 주).
(125.3)
 간주곡:빛나는 천사, 책 그리고 두 증인
 여섯째 인에서처럼 여섯째 쇼파르도 일곱째 쇼파르로 넘어가기 전에 전환기를 가진다. 그리고 인 시리즈에서처럼 간주곡으로 멈춰 서서 하나님의 진영(陣營)을 들여다본다. (126.1)
 빛나는 천사
 사망과 혼돈의 사자(使者)인 떨어진 별(계 9:1, 2)과 대조하여 우리는 이제 권능의 빛나는 천사, 하나님의 천사를 바라본다(계 10:1). 그의 머리 위의 무지개는 하나님이 인류와 맺은 언약의 표징이다(창 1:12, 13). 그의 발은 각각 땅과 바다를 밟고 있어서, 하나님이 물들과(1~8절) 땅을(9절 이하) 창조하셨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

  (126.2)
 그 존재는 계시록의 첫 이상에 나오는 인자(人子)와 닮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은 “해 같고”(계 10:1; 참조 1:16), 그의 발은 불처럼 타오르며(계 10:1; 참조 1:15), 그의 음성은 천둥이 울리는 것 같다(계 10:3; 참조 1:15). 또 그처럼 구름이 그를 호위한다(계 10:1; 참조 1:7). (126.3)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본 구절은 다니엘 선지자의 마지막 이상과 더 많이 유사하다. 다니엘 12장에서 그는 이 이상과 같은 존재가 땅과 바다 위에 서서, 그의 손을 하늘로 향하여 들고 “영생하시는 자”(단 12:7)를 가리켜 맹세한다. 그 맹세는 바로 앞 절에 나오는 “어느 때까지냐”(6절)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그 대답은 다니엘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8절).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봉함할 것”이 라고 대답한 후(9절),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12절)고 덧붙인다. 그때가 되어야 “어느 때까지냐?”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이 나타날 것이다. 그 기간이 지나야만 “마지막 때”가 이른다. 그러나 이전의 이상에서 이미 이 “마지막 때”를 언급한 적이 있다. (127.1)
 다니엘 8장에는 두 명의 천상(天上) 존재가 대화를 나누는 또 다른 이상이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도 “어느 때까지”(단 8:13)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다시 그 대답은 마지막 때로 간다.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단 8:14). 다니엘의 끝에도 동일한 질문이 강렬한 기대감에 찬 기간인 1,335일과 관련되어서 등장한다(단 12:12).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예언적 기간이 동일한 사건, 즉 하늘의 킵푸르로 향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20 흥미롭게도, 이 마지막 때의 킵푸르를 알리는 하늘의 존재는 킵푸르의 임무를 수행하는 대제사장과 같이 세마포 옷을 입고 있다. (127.2)
 이 심판의 때는 순교자들의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그것은 또한 다섯 째 인의 부르짖는 영혼들이 묻는 질문(계 6:10)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사실 여섯째 인은 선지자 다니엘이 고대했던(단 8:17, 19, 26) “마지막 때”를 소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힘센 천사의 옷차림(계 10:1) 뒤에 있는 의미를 깨닫는다. 한 천사가 다니엘에게 그의 이상은 “마지막 때”까지 봉함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단 12:9). 이제 천사는 “마지막 때”가 이르렀고, 더 이상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한다(계 10:6). 여섯째 쇼파르의 시대는 다니엘의 예언을 개봉한다. 이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1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