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3 부 오해되고 있는 본문들 조사
 로베르토 바데나스(Roberto Badenas)는 The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에서 출판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Christ the End of the Law: Romans 10:4 in Pauline Perspective)에서 성서적인 문헌과 비 성서적인 문헌에서 텔로스(telos)의 의미와 용례에 대한 매우 종합적인 연구를 마련하고 있다. 그는 고전 헬라어, 70인역, 위경(Pseudepigrapha),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필로(Philo), 그리고 바울에서, “[텔로스의] 기본적인 의미들은 직접적이고, 목적 적이며, 그리고 완성적인 것으로서, 일시적[종료]이지 않으며. . . 텔로스 노무[telos nomou, 율법의 마침]와 관계된 표현들은 목적, 성취, 또는 율법의 목표를 가리킨다. . . 로마서 10:4과 같은 문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모든 신약의 말씀들에서, 텔로스(telos)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목적론적인 방법으로 번역되었다”고 하였다.46) 다른 말로 텔로스(telos)는 고대 성서적인 문헌과 비 성서적인 헬라어 문헌에서 ‘종료’‘폐지’가 아니라, ‘목적’ 또는 ‘목표’로 표현되고 있다는 뜻이다. (133.4)
 바데나스 역시 그리스도인 문헌에 나오는 텔로스 노무[“율법의 마침”]에 대한 해석에서 자세한 역사적인 연구를 마련하고 있다. 초대교회로부터 중세기의 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그는 목적론적이고 완성적인 의미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헬라어를 말하는 교회는 로마서 10:4에 있는 텔로스(telos)를 ‘목표’, ‘목적,’ ‘충만,’ 그리고 ‘성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스코포스[skopos, goal 목적], 플레로마[pleroma, fullness, 충만], 그리고 텔레시오시스[telesiosis, perfection, 완전] 등의 용어의 뜻으로 이해했고 또 그렇게 설명했다. 노모스[nomos, 율법]는 구약의 성서로 이해되었다(종종 노모스 카이 프로페타이[율법과 선지자]로 표현 됨). 결론적으로, 로마서 10:4은 구약의 성취, 곧 그리스도 안에서 예언들이나 목적들이 성취된 것에 대한 진술로 해석되었다.47) (133.5)
 라틴 교회의 저술들에서, 그 동일한 용어인 피니스(finis)는 실제적으로 헬라어의 텔로스(telos)와 꼭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라틴어 피니스“페르펙찌오(perfectio), 인텐찌오(intentio), 플레니튜도(plenitudo), 콘수마찌오(consummatio), 또는 임플레찌오(impletio, fulness) 등의 용어에 의해 설명되었다.”48) 따라서, 초대 교회의 헬라어와 라틴어 문헌 모두에서, 텔로스/피니스라는 용어는 거의 절대적으로 “종료”나 또는 “폐지”라는 시간적인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목적”이나 “목표”목적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133.6)
 중세 시대 동안에도 로마서 10:4의 해석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율법을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하셨다는 진술로 해석되었다. 문자적인 주석에 강조를 두었던, 종교개혁 시기에도 로마서 10:4을 목적론적(루터)이며 동작의 완료 적인(칼빈) 해석을 하므로, 텔로스/피니스의 헬라어와 라틴어의 의미를 보존했다.”49) 로마서 10:4의 대부분의 해석이 “목적, 목표, 완성”이라는 뜻을 가진 텔로스의 역사적인 용례를 경시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로서, 그 결과, 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끝내셨다”고 믿도록 하므로 그들을 인도했다. (134.1)
 종교개혁 후에 발달한 로마서 10:4에 대한 율법 폐지론 적인 해석은 주로 율법과 복음, 구약과 신약 사이의 불연속성에 새로운 강조를 둔 것에서 기인된다. 루터 교도들은 루터가 다른 문맥에서 표현한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로마서 10:4에다 적용하기 시작했다.50) 재 침례론자들은 신약이 구약보다 우위에 있다는 자신들의 견해에 따라 로마서 10:4이 율법의 폐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51) (134.2)
 18세기의 합리주의 운동에 의해서 야기된 성경에 대한 저 견해(lower view)가 로마서 10:4을 율법의 폐지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향을 갖도록 영향을 미쳤다.52) 19세기에, 성경의 고등비평을 강조하는 독일 자유 신학의 압도적인 영향은 로마서 10:4의 해석을 율법 폐기론자의 “율법의 폐지” 견해가 우세하도록 영향을 끼쳤다.53) (134.3)
 오늘날에도 여전히 편만한 로마서 10:4의 종료/폐지 해석은 특별히 구약과 신약, 율법과 복음 사이의 불 연속성을 강조하는 자들에 의해서 옹호되었다.54) 본 연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율법의 폐지 해석이 하나님의 세계 교회와 위기에 처한 안식일이라는 책을 저술한 데일 라쯔라프와 같은 이 전에 안식일을 준수했던 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을 발견했다. 이 해석은 바울이 일관성 있게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율법이 종결되었다고 가르치는 주로 잘못된 신학적인 가설에 의해서 조성 되고 있다. (134.4)
 지난 20여 년 동안에 있었던 의미심장한 발전은 점차로 많은 신학자들이 로마서 10:4의 목적론적인 해석, 즉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이시다”라는 해석을 받아들이게된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발전에 기여하게 된 것은 이 본문에다 주관적으로 신학적인 가설들을 삽입시키기보다는 주석적으로 분석하려는 새로운 노력들이다. 바데나스는 “일반적으로 더 주석적인 해석을 지향하는 연구는 텔로스(telos)를 목적론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으며[‘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이 되신다’], 반면에 조직신학은 그 용어를 더 시간적으로 해석하려고 접근하고 있다[‘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끝내셨다’]고 주목하고 있다.”55) (134.5)
 로마서 10:4에 대한 새로운 주석적인 연구는 이 구절의 정확한 의미를 새로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고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연구가 많은 복음주의 신조와 실천에 기초가 되어 왔기 때문에 율법의 폐지 해석을 포기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 배경에서, 우리는 이미 인용한 로베르토 바데나스의 탁월한 논문 이 외에, 몇 가지의 중요한 연구를 언급할 수 있다. (134.6)
 로마서 10:4에 대한 최근의 연구
 신학 연구사(Studia Teologica)에서 출판한 긴 40페이지 분량의 기고문에서, 라그너 브링(Ragnar Bring)은 로마서 9:30-10:4에 있는 텔로스(telos)의 탁월한 의미를 경마장의 비유에 기초한 문맥(롬 9:30-10:4)에서 강조한다. 그는 이 문맥에서, 텔로스“경주의 결승점, 과업을 완성하는 것, 문제의 절정을 의미한다.”56) 그는 “율법의 목적이 의(義)였으므로,” 그 율법은 의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백성들을 인도하는 보호자(paidagogos)의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그분께서 율법을 종말론적으로 성취하신 분이심을 의미한다.57) (134.7)
 앞서 인용한 “성 바울과 율법”에서, 크랜필드는 직접적이고도 광역적인 로마서 10:4의 문맥에서, 텔로스“목적”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구절을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이 되시므로, 따라서 의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해석한다.58) 그는 4절이 바울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3절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4절“에게”(for-gar)로 시작되는 것에 주목한다. 크랜필드에 따르면, 바울은 4절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는 일에 실패한 이유를 제시하므로 자신의 설명을 계속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배척한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율법의 목적이 되시기 때문에, 이것은 그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있는 의의 상태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59) (135.1)
 유사하게, 죠지 호워드(George E. Howard)는 “율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사람이 복을 받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율법의 목적이 되신다”60)고 논증하면서, 로마서 10:4에 있는 텔로스(telos)에 대한 목적 지향적인 해석을 옹호한다. 로마서 10:4에 대한 더 긴 진술이 토우즈(J. E. Tows)에 의해 마련되었는데, 그는 텔로스(telos)를 “언어와 문맥적인 배경”에 기초하여 “목적”으로 해석한다.61) (135.2)
 최근에, 리네(C. T. Rhyne)는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로마서 3:31에 대한 식별력 있는 논문을 작성했다. 리네는 이 구절과 로마서 10:4 사이에는 의미심장한 신학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련이 텔로스(telos)의 목적론적인 해석을 지지하고 있으며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와 율법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바울의 긍정적인 이해에 잘 일치한다.62) (135.3)
 잘 알려진 존경받는 복음주의 신학자인 왈트 카이젤(Walter Kaiser)은 로마서 9:30로 부터 10:13까지의 전 구간에서 바울에 의해 전개된 논증들을 면밀히 점검하므로 로마서 10:4에 대한 목적론적인 해석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있다. 그는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의를 얻는 두 길을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는바, 한 길은 이방인이 받아들인 믿음의 길이요, 다른 길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익하게 받아들인 행위의 길”로 본다.63) (135.4)
 카이젤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내부에서 만든 의의 법[많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인]은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온 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64) 다른 말로, 이 구절에서 바울이 정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오기를 의도했던 의”가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그것의 목적이 되시는 그리스도 없는 율법으로 만든 내부적인 의”이다.65) 율법을 곡해하여 사용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정죄는 그 율법의 적절한 사용을 부정하지 않는다. (135.5)
 카이젤은 이 구절에 대한 자신의 통찰력 있는 분석을 다음의 말로 결론을 맺는다: 로마서 10:4에 있는 텔로스(telos)는 ‘목적’이나 또는 의도적인 결과를 의미한다. 율법은 메시야 되시는 그리스도 쪽으로 신자를 가리키는 큰 목적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 한 적절하게 이해될 수 없다. 그 율법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으로 남아 있다(롬 7:22; 8:7). 그것은 믿는 이방인에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롬 7:1;2, 14).”66) (136.1)
 로마서 10:4의 더 큰 문맥
 마지막 분석에서, 로마서 10:4의 정확한 의미는 그 본문의 더 크고 직접적인 문맥에 대한 조심스런 연구에서만이 확인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제 우리가 하고자하는 일이다. 더 큰 문맥(로마서 9장에서 11장)에서, 바울은 율법과 복음 사이의 관계를 제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된-이스라엘의 운명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제시한다.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은 이방인들이었으며,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신뢰성에 대해서 의문을 불러일으켜 그리스도를 거절했다. (136.2)
 바울이 토론을 벌리고 있는 질문은 로마서 9:6에 제시되어 있는바, 곧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졌는가?”이다. 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절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것이 위태로워졌음에도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사실일 수 있을까? 이것은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형성되었고 유대인이었던 사도들에 의해서 지도를 받았던 사도교회 안에서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었다. “문제는 하나님에 의해서 큰 특권들로 축복을 받았던 옛 언약의 백성들(롬 9:4, 5)에게 어떻게 이스라엘의 연장에 불과한, 새 언약의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67) (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