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3 부 오해되고 있는 본문들 조사
 막힌 담은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므로”(엡 2:15)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법 안에 포함된 계명들”의 자격은 바울이 도덕률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생활에서와 성소 봉사 모두에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를 나누는데 영향을 끼쳤던 “의문의 법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도덕률은 유대인을 이방인들로부터 나누지 않았는바, 그 이유는 바울이 후자에 말하면서, 그 도덕률이 “마음에 새긴 율법의 요구”(롬 2:15)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130.6)
 골로새서 2:14에서, 충분한 용서가 승인된 것은 “법들 속에 포함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므로”가 아니라, 오히려 규정들이 우리를 대적하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새겨진 기록들을 전적으로 파기하므로 서이다. 두 구절의 문맥은 전적으로 다르지만, 여전히 두 구절중의 어느 한 구절도 도덕률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제시하지 않는다. (131.1)
 죄의 기록
 십자가에 못박힌 “의문에 증서—케이로그라폰(cheirographon)은 우리의 죄에 대한 기록이다. 이 대담한 은유에 의해, 바울은 하나님의 용서의 완전하심을 확증한다. 법들이 우리를 대적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기록한 문서를 “취소하셨고,” “제하셨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죄를 기록한 합법적인 기초는 “묶는 법규들인 규정들”(tois dogmasin)이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으신 것은 죄에 얽히게 한 합법적인 기초(율법)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기록한 보고서였다. (131.2)
 이 강력한 은유를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련된 하나님의 용서의 완전하심을 바울이 재확인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결코 실패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증거를 깨뜨리시므로, 용서를 받은 자들을 그들이 정죄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으므로,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리”(골 2:15)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구속과 용서를 마련하신 이후, 열등한 중보자들의 도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불완전한 것은 당연하다. (131.3)
 이 전반적인 논증에서, 하롤드 웨이즈(Herold Weiss)가 제시한 것처럼, 율법은 “아무런 역할도하지 못한다.”44) 따라서 율법을 언급하거나, 또는 어떤 구약의 법규들을 언급하는 “의문에 쓴 증서-cheirographon를 독파하려는 어떤 시도도 전혀 보증을 받지 못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문서는 도덕적인 법이나 의문의 법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의 죄의 기록 문서인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도 죄에 대한 기억이 우리 안에서 불완전 감을 자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부당한 감정에 대한 해결책은, 바울에 따르면, 금욕적인 “규정”의 제도에 복종하므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 하시고 우리에게 충분한 용서를 주셨다는 바로 그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발견된다. (131.4)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해석을 반대한다. 그들의 견해로 본 그 이유는, 그것이 이 땅에 살았던 개개인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점검하게 될 마지막 심판의 교리를 훼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롬 14:10; 계 20:12). 그들의 논증은 만일 우리의 죄의 기록이 삭제되었거나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마지막 심판을 행하기 위한 합법적인 기초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반대는 우리의 죄의 기록을 무효로 하고, 제하고, 못 박는다는 하나님의 비유가 심판의 날에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현재의 생애에서 총체적인 하나님의 용서의 재 보증을 마련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을 경시하고 있다. (131.5)
 예컨대,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성전의 행각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라고 설교했을 때, 그는 그들의 죄가 도말된 사람들에게 마지막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지 않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베드로는 그 때에 대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벧전 4:17; 참조, 벧후 2:9; 3:7)라고 설교했다. 우리의 죄를 기꺼이 “도말”하거나 또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진”(미 7:19)다는 하나님의 비유들은 마지막 심판의 필요성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의 완전성을 신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도말 되었거나”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용서받은 죄들은 자동적으로 심판의 날에 옹호 받을 죄들이다. (131.6)
 우리는 골로새서 2장이 복음의 본질—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기록과 그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소식—을 재확인하고 있으나, 율법과 안식일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므로 결론을 맺는다. 그 본문을 율법에 대해 언급을 한 것으로 읽으려는 어떤 시도도 신빙성이 없는 무모한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132.1)
 (5)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바울 편지서에서 로마서 10:4에 있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end—telos]이 되시니라”라는 구절만큼 많이 사용되고 또 남용되는 구절도 없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율법의 역할에 대한 두 대조적인 견해를 위한 하나의 용이한 슬로건으로 활용되어 왔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구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율법을 의의 한 길로서끝낸 것으로 놓으므로, 결국은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준수로부터 해방된 것으로 믿는다. (132.2)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에서 바울은 모든 법이 의도하는 목표는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의의 약속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가르치고 계신다고 열정적으로 주장한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동의하는바, 그 이유는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텔로스(그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마지막”이라기보다는 “목표”임)라는 언어, 바울의 논증의 흐름, 그리고 율법의 기능에 대한 전반적인 바울 서신의 교훈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32.3)
 텔로스(Telos)의 의미: 종료인가 목적인가?
 본문에 대한 논쟁적인 해석은 대부분, 일반적으로 영어성경에서 “끝”(“end”)으로 번역되고 있는 용어인 텔로스(telos)의 의미에 대한 각기 다른 이해들로부터 유래된다. 그러나, “끝”이라는 영어 용어는 대부분 무엇인가가 정지되는 것을 지적하는 종료(termination)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여행, 학교의 학기, 또는 일하는 날의 “끝”은 어떤 특정한 활동의 종료이다. 대조적으로, 헬라 용어의 텔로스(telos)는 다양한 광역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헬라어 영어 렉시콘(A Greek-English Lexicon(William Arndt and Wilbur Gingrich)은 텔로스(telos)는 “종료나 정지”의 뜻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목적, 결과, 목표, 계획, 성취”등의 뜻으로도 사용된다고 설명한다.45) (132.4)
 “목적, 계획, 목표” 로 사용되는 텔로스(telos)는 70인역 성경(Septuagint)과 비 성서문헌에서와 마찬가지로 고전 헬라어에서 가장 보편적인 용어였다. 이 의미는 텔리폰(telephone, 전화), 텔레스코프(telescope, 망원경) 등의 영어의 복합적인 단어에서 보존되어 왔다. 이러한 경우들에서, 텔레(tele)“고안된,” 또는 “목적으로 하는”을 뜻한다. 예를 들어, 텔리폰은 먼 거리에 있는 음성을 재생시키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다. 텔리스코프는 먼 거리에 있는 물체를 보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다. 이러한 텔로스(telos)의 다른 의미들은 로마서 10:4에서 일반적으로 (1) “종료”와 (2) “끝”을 언급하는 두 주요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132.5)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 10:4에 있는 텔로스(telos)는 “종료,” “중지,” 또는 “폐지”를 의미한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마침”이되시므로, 율법의 준수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시키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끝내셨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바울이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율법의 계속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또 새 영어성경(New English Bible)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끝내신다”(“For Christ ends the Law”)라는 번역에서 반영되고 있어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인기를 끈다. (132.6)
 이런 해석학적 번역은 다소 모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율법이 종결되었다고 분명히 확증하고 있다고 믿게 하므로 독자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다. 우리가 보게 될 것이지만, 종료로 해석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이 율법의 유효성과 가치를 확증하는 수많은 바울 서신의 명백한 진술들(롬 3:31; 7:12, 14; 8:4; 13:8-10)과 함께 직접적인 문맥에 배치되는데 있다. (133.1)
 목적론적인 해석은 로마서 10:4에 나오는 텔로스(telos)라는 단어는 기초적인 뜻인 “목적”“목표”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을 견지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에 있어서 구약과 모세의 오경으로 이해되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목적이 되시며” 그분 안에서 그 율법의 목적과 성취에 도달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자들은 율법에 표현된 의를 경험한다. 이런 해석은 초대 교회로부터 종교 개혁시기까지 편만 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133.2)
 두 주요 고려 사항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율법의 목적이 되신다”로 해석하는 로마서 10:4의 목적론적 해석은 그 구절의 뜻을, (1) 성서적인 문헌과 비 성서적인 문헌에서 텔로스(telos)의 역사적인 용례와, 그리고 (2) 더 큰 문맥과 직접적인 문맥에서 바울의 논증의 흐름에서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제 이 두 요점을 연구해 보도록 하자. (133.3)
 텔로스의 역사적인 용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