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5 장 바울과 율법 제 3 부 오해되고 있는 본문들 조사
 바울 서신의 여러 구절들이 빈번히 율법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배척되었으며 결국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규범이 아니라는 것을 지지하는데 사용되곤 했다. 본 장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율법의 폐지 입장을 지지하는데 사용되는 주요 다섯 구절들을 연구하고자 한다. (119.1)
 (1) 로마서 6:14: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로마서 6:14은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준수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바울 서신의 본문이다. 그 구절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말한다. 본문의 통상적인 해석은 그리스도인들은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율법 아래 더 이상 있지 않는바, 그 이유는 그 율법들의 도덕적인 가치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드러난 사랑의 원칙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20.1)
 이것은 이 구절을 심각하게 잘못 읽고 있는 것으로 그 이유는 문맥에서는 직접적으로 바울이 모세의 율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암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문장 전체의 직접적이고도 광역적인 배경에서, 바울은 죄의 지배를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과 대조하고 있다. 대조법은 “율법 아래”라는 말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므로, 결국은 “율법의 정죄 아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 모두를 율법의 모든 정죄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120.2)
 “모세의 율법의 규범 아래”를 뜻하는 “율법 아래”라는 구절은 모세의 법 아래 있었던 신자들이 은혜의 수용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그러한 사상은 전혀 불합리한 사상들이다. 더 나아가, 죤 무래이(John Murray)가 지각력 있게 관찰한 것처럼, “하나의 법규가 되는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저절로 사람을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의 범주 안에다 놓지는 않는다.”20) (120.3)
 바울은 “그 ‘율법의 지배’로부터 신자들이 해방된 것은 ‘죄의 정욕’에 의해서 ‘지배받는’ 상태에 있으므로 이제는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고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영적인 속박과 허약성으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신자들을 자유 하게 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도덕적인 원칙들을 대적하여 죄를 짓도록 자유를 주지는 않았다.”21) (120.4)
 “은혜 아래”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 아래 있다는 것을 뜻하므로, “율법 아래”에 대조되는 것은 율법에 의해 선언된 정죄나 하나님의 냉대하심 아래 있다는 사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로마서 6:14에서 바울은 신자들이 죄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한다(롬 6:1, 2, 6, 11, 11-13 참조)고 가르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죄의 지배와 율법의 정죄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120.5)
 이 구절에서, 죤 무래이가 이끌어 내고 있는 것처럼, “율법의 힘과 준비와 은혜의 힘과 준비 사이에는 철저한 대조가 있다. 은혜는 사람을 죄의 속박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표현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능력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므로, ‘은혜 아래’ 있는 것은 죄가 지배할 수 없다는 것, 즉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는 것으로,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22) (120.6)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음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똑 같은 사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롬 7:4, 6).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정죄와 율법에 대한 모든 부당한 오해와 오용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또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무법적이고 율법적인 사용의 결과로 오는 얽매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율법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할 도덕적인 원칙을 제시하는 한 “율법 아래”있다. (120.7)
 이 해석은 바울이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확증하고 있는 직접적인 문맥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다. 그는 다시,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롬 7:14)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이러한 진술은 분명히 바울에게 있어서 법은 그리스도인의 행위의 도덕적인 표준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법이고, 또 그렇게 남아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121.1)
 놀랍게도, 신약의 주요한 교리들을 급진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루돌프 불트만 조차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의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롬 6:14))는 말은 율법의 요구들이 더 이상 그에게 해당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닌바, 그 이유는 그에게 요구되는 사랑(아가페)은 곧 율법의 성취였기 때문이다”(롬 13:8-10; 갈 5:14).23) 요점이 잘 제시된 것은, 로마서 13:8-13에서 바울은 특별한 네 계명을 인용하고 또 “다른 계명들”을 포함시키므로 사랑이 어떻게 율법을 이루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121.2)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는 가운데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죄에서 해방”(롬 6:18)시켰기 때문에 단순히 신자들이 율법의 권위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부터는 멀리 율법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게 하는 것”(롬 8:7)은 바로 악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의 요구”(롬 8:4)를 성취하도록 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죄의 지배와 죄의 정죄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은 또 다른 의미에 있어서 그들의 도덕적인 생애가 그 율법의 도덕적인 원칙들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옵는 것은, 신자들이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롬 6:17)해 왔으며, 또한 하나님의 법에 담겨진 도덕적인 원칙들을 순종해 온 것이다. (121.3)
 (2) 고린도후서 3:1-18: 편지와 성령
 고린도후서 3장은 율법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므로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그들의 행위의 규범으로 묶여져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사용되는 내용들을 많이 취급하고 있다. 본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의 중요성에 비추어 우리는 몇 개를 구체적으로 보고자 한다. (121.4)
 본 장은 왜 고린도인들에게 바울이 자신의 봉사를 권위 있게 하도록 추천하는 편지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므로 시작한다. 그 이유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고후 3:2)이기 때문이다. 만일, 고린도에 오면서, 질문은 바울이 자신의 권고의 편지를 지참했는지 아니했는지에 관한 것이라면, 그 대답은 “나의 봉사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된 여러분들 자신이 곧 나의 신임서들이다”이다. (121.5)
 바울은 계속해서 편지의 구상을 고린도교인들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토대로 하여 발전시킨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후 3:3). 성령에 의해서 마음에 기록된 편지에 대한 언급은 바울의 마음에 새 언약의 옛 약속들에 대한 생생한 상상을 하도록 자극시킨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통해서 그분께서 자신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때(렘 31:33), 자신의 굳은 돌 마음은 제거되고 그들에게 육신의 마음을(겔 11:19; 36:26) 주실 그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켰다. 바울의 봉사의 결과로 고린도인들이 경험한 마음의 변화는 새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확실한 입증이었다. (121.6)
 편지와 성령
 바울은 옛 언약의 사역과 새 언약의 사역 사이에 있는 분명한 차이점을 전자는 편지의 사역으로 그리고 후자는 성령의 사역으로 기술하므로 요약하고 있다. “저가 또 우리를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은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 우리는 이제 바울이 죽이는 것은 편지(의문)요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라는 것 사이에 있는 중요한 차이점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122.1)
 바울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율법 그 자체가 악한 어떤 것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사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하게 가르치기를 “이로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롬 7:12)며,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롬 10:5; 참조 갈 3:12; 레 18:5)고 하였기 때문이다. (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