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2 부 예수님과 안식일 제 2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와 안식일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리스도를 고소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다른 사람의 육체와 정신적 안녕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경험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그들은 안식일에 생명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봉사에 동참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념하는 대신에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고”“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함으로써”(막 3:2-6) 안식일에 파괴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227.3)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수동적이고 나태한 한 날로 생각하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행동의 날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안식일 신앙관은 당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 신앙관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었다. (227.4)
 이러한 사실은 기원전 130-200년 사이의 문헌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서한」(Epistle to Diognetus)이라는 초기 기록에도 나타나 있다. 이 기록은 유대인들에 대하여 비난하기를 그들이 “안식일에 하나님이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금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거짓되이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12 이처럼 강력하게 안식일 준수를 인도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안식일 신앙정신은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구속적 상징성을 실현하셨다는 복음서의 주장에 뿌리를 둔 것이다. (228.1)
 요약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에 의하여 하나로 묶여 있다. 구약에 나타난 안식일의 주요 주제들, 이를테면 안식일의 평화와 번영, 안식일의 쉼, 안식일의 해방, 그리고 제칠일 안식일을 기초로 한 시간 구조 등은 7일마다 맞이하는 안식일이나 칠 년에 한번씩 맞이하는 안식년이 모두 메시야적 구속의 소망을 요약하고 이 소망을 키우는 데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228.2)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강림은 안식일의 구속적 상징의 구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적 사명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그들이 오래 고대해 왔던 안식년의 “자유”(눅 4:18)와 “안식”(마 11:28)을 제공하셨다. (228.3)
 십자가의 빛에 나타난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적 완성까지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일 안식”(히 4:9)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기념하기 위하여 육체적으로 일을 쉬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안식에 영적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포함한다(히 4:10). 안식일의 육체적인 쉼은 신자들이 영적인 안식을 체험하는 수단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서 좀더 자유롭고 좀더 풍성히 일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일상적인 일들을 중지하는 것이다. (229.1)
 신약성경에서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구원의 봉사로 말미암아 폐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더 명료해졌으며 더 확대되었다. 구약성경의 안식일에 의하여 상징화된 안식과 구속이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봉사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다고 이해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준수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선”을 베풂으로써 메시야의 구속적 안식을 경험하고 기념하는 날로 생각하였다. 이 말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안식일은 단지 육체적인 노동을 중지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에게 자비를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속까지 기념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229.2)
 혼란과 무질서의 세력이 갈수록 증가하여 불의와 탐욕과 폭력과 부패와 범죄와 고통과 죽음이 세상을 가득 채워가고 있는 이 시대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일의 안식이 남아 있으므로”(히 4:9) 그같은 파괴적인 세력이 끝내 승리할 수는 없다고 다짐하신다.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가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며 그가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고 계시다고 확언하신다. 하나님께서 세계 창조의 때에 혼돈을 정복하셨으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멍에로부터 그의 백성을 해방하셨으며 “매 안식일마다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는”(사 66:23) 신천지를 세우기 위하여 그가 “이제까지 일하신다”(요 5:17)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229.3)
 아우구스티누스가 웅변적으로 토로하였듯이 우리는 그 최종적인 안식일에 “안식하며 볼 것이요, 보며 사랑할 것이며, 사랑하며 찬양할 것이다”(City of God, xxⅱ, 30, trans. Gerald Walsh, Demetrius B. Zema, Grace Monahan [NewYork, 1958], 544). (230.1)
 참고
 
1. The Babylonian Talmud, Shabbath 12a.

 2. Mishnah, Shabbath 6:2.

 3. The Midrash on Psalms, trans. William G. Braude, (New Haven, 1959), vol. 2, 112.

 4. Bereshith Rabbah, 12:6.

 5. 아브라함 요슈아 헤셀(Abraham Joshua Heschel), 안식일: 시간 속의 지성소,(The Sabbath : It's Meaning for Mordrrn Man), 오만규 역(서울: 성광문화사, 1981), 33, 34.

 6. Sanhedrin, 97a.

 7. Mishna Tamid, 7:4.

 8. 헤셀, 84, 85.

 9.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John King [Grand Rapids, 1948], 106.

 10.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Grand Rapids, 1950), 436.

 11. Karl BarthChurch Dogmatics, Edinburgh: T&T. Clark, 3:2:51.

 12. Ante-Nicean Fathers, 1973. reprint, vol. 1, 26. (2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