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2 부 예수님과 안식일 제 2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와 안식일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용서해 주심과 받아 주심과 구원해 주심의 확증을 갈망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확증이 말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형과 상징을 통해서도 제시되고 있다. 성소의 제사 제도와 침례와 성만찬과 세족예식과 안식일 같은 것들은 모두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구원의 확증을 경험하고 개념화하게 하려는 제도들이다. (178.1)
 그 중에서도 안식일은 특별한 것이다. 안식일은 그 기원과 본성과 생존과 기능에 있어서 성경상의 어떤 제도들보다도 다르고 독특하다. 첫째로 그 기원을 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그의 안식과 교제의 기쁨으로 초청하기 위하여 창세 때에 제정하신(창 2:2,3; 히 4:3-10) 제도이다. 하나님의 종교의 최초의 제도이다. 두 번째로 안식일은 제한된 사람들만이 접근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물질적인 대상이나 공간이 아니라 제한 없이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날(시간)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본성이 독특한 날이다. (178.2)
 세 번째로 안식일은 역사적으로 남다른 생존력을 나타낸 제도이다. 안식일은 아담의 타락과 노아의 홍수와 애굽의 노예 생활과 바벨론의 포로와 로마 제국의 반 안식일 입법조치(A.D. 13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공포됨) 같은 시련들을 겪고도 살아 남았다. 프랑스와 러시아 등지에서 이루어진 10일 주간 제도와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이루어진 수없이 많은 반 안식일적 조치들을 거치면서도 끄떡없이 살아 남았다. 끝으로 안식일은 그 기능에 있어서도 남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대 위업을 개념화하고 내면화하고 경험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의 날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예수님의 강림을 상징했던 구약의 한 제도라 하여 그 용도의 폐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178.3)
 분명히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적인 봉사를 통하여 안식일의 상징적 기능을 성취시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성취시킨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계명을 성취시킴으로써 안식일 준수를 종식시키고 그 대신에 신자들로 하여금 날마다 실존론적으로 구원의 안식을 경험하게 하였다고 해석한다. 루터교회의 입장이 대체로 이렇다. 그런가 하면 상당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안식일 준수의 여러 측면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안식을 예시했던 예식적이고 제사적인 측면만이 종식되었고 7일 중 제칠일 하루를 지키라는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인 측면은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로 말미암아 폐기되지 않고 일 주일의 첫 날인 일요일의 준수로 옮기었다고 믿고 있다. 가톨릭과 칼빈 계통의 개혁교회 입장이 기본적으로 이렇다. (179.1)
 이 두 주장의 공통점은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예식적 혹은 상징적 기능을 다 성취시켰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킬 의무에서 해제되었다는 것이다. (179.2)
 문제는 안식일로 예표된 메시야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봉사의 관계이다. 그리스도는 성전 봉사의 경우에서처럼 안식일의 기능을 중지시킴으로써 메시야의 구속을 나타내는 안식일의 상징들을 성취시켰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적인 봉사를 통해서 안식일의 의미와 그 준수를 현실화하고 더욱 풍요롭게 함으로써 안식일의 상징들을 성취시켰는가. (180.1)
 놀랍게도 안식일에 관한 많은 문헌들이 신, 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의 구속적인 의미와 기능을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그 문헌들은 주로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과 구속사로 이어지는 안식일 계명의 계속성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한 창조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완전한 구속과 최종적 회복의 기념으로 발전하는 안식일 신학의 흐름을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때 비로소 안식일 준수의 의미와 경험은 더 풍성하게 될 것이다. (180.2)
 Ⅰ. 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주님의 관계
 어떤 면에서 창조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고 카오스로부터 코스모스를 이끌어낸 구속의 이야기이다. 창조 사건에 나타난 안식일은 하나님에 의하여 첫 번째로 이루어진 구속 행위의 목적을 드러내고 있다. 안식일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창조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형태 없는 물질을 사용하여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이야기인가? 창조의 기쁨은 가장 소망스러운 기쁨의 하나이다. 천상적 기쁨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이 전하고자 하는 창조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자기의 소중한 무엇을 나누어주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모두 내주는 특별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세계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180.3)
 바로 이 진리가 안식일의 축복과 성화에 특별히 반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한 날이나 장소를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거룩한 현존을 한 날이나 장소에 나타내는 것이며 따라서 안식일의 성화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의 거룩한 현존을 통해 그의 피조물들에게 축복을 끼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181.1)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 사이에 자신의 거룩한 현존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한 날을 구별하심으로써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였다”(창 2: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아름다운 것들만 주시려 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달콤한 경험까지 주시겠다는 의도로서 제칠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를 통해 드러내신 것이다. (181.2)
 안식일, 임마누엘의 약속
 안식일의 의미와 경험은 구속사의 전개와 더불어 더욱 심화되고 고양되고 확대되어 갔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 있는 인류의 기쁜 삶의 전망이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분쇄되었을 때 안식일은 파괴된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결심의 상징이 되었다. 과거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과 은혜의 기념일이었던 안식일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 앞으로 이루어내고야 말 위대한 업적을 약속하는 날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약속을 굳게 의지하는 믿음의 날이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그 위대한 일을 소망하는 소망의 날이 되었다. 카오스에서 완전한 코스모스를 출현시킨 하나님의 우주적 대 위업의 상징이었던 안식일은 이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죄와 사망의 멍에로부터 풀어 자유케 할 미래의 구속 활동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현존을 통하여 인간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사람의 시간으로 들어오신 행위를 상징하였던 안식일이 이제는 하나님이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 장차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오실 것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은 모두 하나님이 안식일의 축복과 성화를 통해 이 세상을 위해 하나님이 처음으로 계획하고 표시했던 목적의 실현인 것이다. (181.3)
 안식일, 아담의 첫째 날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단순히 한 개인이 불의와 압제로부터 벗어나 개인적인 안식과 해방을 누리는 날로 그치지 않았다. 안식일은 또한 장래에 있을 메시야의 평화와 번영과 구속의 희망을 키우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안식일의 이 두 번째 기능이야말로 하나님이 태초에 안식일을 제정하던 당시의 기능을 더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182.1)
 창세기에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어떻게 안식일을 지켰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좋았다”는 표현이 일곱 번씩이나 반복될 만큼 에덴 동산이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세계였고 또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칠일 안식일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아담과 이브가 지킨 에덴의 안식일이야말로 후대의 신자들로 하여금 메시야 시대를 상상하게 하는 기초적 토대로 이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82.2)
 아담의 첫 번째 날이었던 창세기 2장의 안식일과 메시야 시대 사이의 유사성과 동등성은 성경과 그 밖의 자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창조의 안식일이 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속과 회복을 상징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주제를 간략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82.3)
 안식일의 평화와 조화
 메시야의 시대에는 창조의 안식일에 아담과 동물들이 함께 누렸던 그 평화와 조화가 회복될 것이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릴 것이다”(사 11:6). 그 때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사 11:9).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평화가 땅에 가득하게 되는 광경은 능히 안식일로 요약되는 창조의 첫 날의 광경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83.1)
 창세 때 아담이 누린 첫 번째 안식일과 앞으로 올 메시야 시대 사이의 연결은 랍비들의 안식일 규칙에도 잘 나타나 있다. 예컨대 랍비 시메온 B. 엘레아자르(Simeon B. Eleazar)는 가르치기를 “안식일에 해충을 죽여서는 안 된다. . . . 안식일에 해충 하나를 죽이는 것은 낙타 하나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1 고대 유대 율법 결집인 미쉬나(Mishnah)에도 안식일에 대한 유사한 진술이 있다. “(안식일에) 남자는 칼이나 활이나 창이나 몽둥이나 방패를 들고 나갈 수 없다. 기록하였으되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창으로 가지치는 낫을 만들라 하였으며 나라는 나라를 대항하여 칼을 쳐들지 말고 더 이상 전쟁을 몰라야 한다”2고 하였다. 랍비들은 태초의 안식일에 죽음이 없었다고 가르쳤을 뿐 아니라 안식일은 미래에 도래할 세계의 미리 맛봄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