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2 부 예수님과 안식일 제 2장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와 안식일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제칠일 안식일과 안식년을 통하여 히브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부여하려고 했던 자유와 석방과 해방은 이스라엘이 고대하는 메시야의 구속을 상징하기에 충분하였다. 신명기에서는 넷째 계명이 분명히 출애굽의 해방과 관련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계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188.3)
 안식일과 출애굽 해방의 이같은 연결은 왜 안식일이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축제인 유월절과 이념적으로 연결되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 매 안식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작은 유월절”이나 다름이 없다. (189.1)
 안식일 계명은 매 제칠일과 안식년(레 25:8)과 희년(레 25:8)에 히브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고달픈 생활과 사회적 불평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진정한 해방자였다. 안식년과 희년은 히브리 사회 내의 억압받는 자들의 진정한 해방자였다. 또 토지는 토지를 빼았긴 자들과 동물들에게 값 없이 먹을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경작하지 않고 휴경지로 묵혔다. 노예들은 해방되었고 동료 시민들에게 빚진 채무자들은 부채를 탕감받았다. 이러한 구체적 요구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좀처럼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안식년, 희년들은 메시야에 의해 이루어질 미래의 해방과 구속을 예상시키는 목적에 널리 사용되었다. 안식년이 메시야적 기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안식년들에 내포된 세 개의 중요한 특징들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189.2)
 첫째, 연례적인 안식일들은 개인적인 채무들과 종살이로부터의 면제를 약속하고 있다. 이러한 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하는 메시야적 구원을 유형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사 61:1-3; 40:2). 신약의 용서(아페시스) 개념도 대부분 연례적 안식일에 이루어졌던 재정적 부채와 사회적 불의로부터의 면제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면제,” “여호와의 면제,” “면제년”(신 15:1,2,9; 31:10; 레 25:10)에서 비롯된 것이다. (189.3)
 구약성경의 희랍어 역본인 70인역 성경에서는 “면제”(데로크)를 “아페시스”로 번역했는데 신약에서 용서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옵시며”(마 6:12)라는 주의 기도문에 나오는 구절도 연례적 안식일의 재정적 부채의 면제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재정적 부채와 사회적 불의로부터의 안식년적 면제는 죄의 도덕적 부채를 면제하는 메시야 시대에 대한 예표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189.4)
 이사야 61장 1-3절은 희년적 대사면과 석방을 가져올 메시야의 사명을 묘사하기 위하여 안식년 면제의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신의 구속적 사명의 본질을 밝히고 설명하기 위하여 이 성경절을 이용하였다. (190.1)
 안식년의 두 번째 메시야적 특징은 양 뿔(요벨)을 사용하여 나팔을 불어 안식년의 시작을 알리는 방식에 있다. 희년에 나팔을 부는 이미지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야가 추방자들을 모으는 행위(사 27:13, cf. 9:9-14)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고전 15:52; 살전 4:16; 마 24:31). (190.2)
 안식년의 세 번째 메시야적 특징은 희년의 출발을 알리기 위하여 수양의 뿔을 부는(레 25:9) 7월 10일에 있다. 이것은 희년의 안식일 면제가 시작되는 이 대속죄일에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제공하는 정결과 새로운 도덕적 출발을 뜻한다. (190.3)
 시간의 일곱 구조
 안식년의 독특한 메시야적 특징들은 메시야의 구원을 기다리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시간의 일곱 구조 형식을 사용하도록 고취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안식년적 메시아니즘”(Sabbatical Messianism), 또는 “크로노메시아니즘”(Chronomessianism)이라고 부르고 있다. (190.4)
 안식년적 메시아니즘이 기초한 성경절은 다니엘 9장이다. 여기에는 두 개의 안식년적 기간이 나타나고 있다. 그 첫째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대민족이 국가적 회복을 이루기 전에 겪어야 할 포로 기간에 관하여 예언한(렘 29:10) 70년의 기간인데(단 9:3-19), 이 기간은 10개의 안식년으로 구성되어 있다(10×7). 두 번째 기간은 기술적으로 “70 안식일 주기”라고 일컬어지는 “70주일”(샤브임)의 기간인데 이 기간의 끝에 메시야의 구원이 나타난다(단 9:24-27). 이 안식년적 메시아니즘이 후에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 1:29)나 1956년에 멜키제데크로 알려진 쿰란 제2동굴에서 발견된 파편 텍스트 같은 후기 유대 문학에서도 발견된다. (190.5)
 결론
 구약의 안식일 주제에 대한 간략한 개관을 통해 구약시대에는 제칠일 안식일과 안식년이 육체적 안식과 사회적 해방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메시야적 구원에 대한 소망을 키워주는데 기여하였다. 랍비 아브라함 요수야 헤셀은 안식일의 메시야적 기능을 다음과 같이 생생히 묘사하였다. “시온은 폐허 속에 있고 예루살렘은 먼지 속에 누워 있다. 주일 내내 오직 구속의 희망이 있을 뿐, 그러나 일단 안식일이 이 세상에 들어오면 사람은 현실적인 구원의 순간에 접한다. 마치 그 순간에는 메시야의 영이 지구의 표면을 운행하는 것과 같다.”8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야 구원의 안식년적 상징들은 우리로 하여금 신약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과 안식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191.1)
 Ⅱ. 신약성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주님의 관계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의 메시야적/구속적 유형론이 존재한다.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과거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창조와 미래의 메시야적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키기 위하여 제정된 구약의 제도쯤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칼빈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의 하나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날 영적인 안식의 그림자를 나타내 주는 법률적인 의식”이라 하였다.9 그리스도가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를 종식시킴으로써 안식일을 성취했다는 주장은 가톨릭 교도들과 개신교도들 사이에 많은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주님과 안식일의 관계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192.1)
 문제는 그리스도가 성소 봉사의 경우에서처럼(히 8:13; 9:23-28) 안식일의 기능과 안식일의 준수를 종식시킴으로써 안식일 안에 들어 있는 종말론적 기대를 충족시켰는가 아니면 안식일의 의미와 기능을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성취까지 기념하도록 확장시킴으로써 안식일의 종말적 기대를 성취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또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준수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의심할 수 없는 요구로 보았는가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안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교체될 수 있는 것으로 안식일 준수를 생각했는가. 또 그리스도는 가르치기를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제칠일에 주님께 의지하여 안식함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라 하지 않고 날마다 “구원의 안식”을 누리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였는가. 이를 위하여 누가복음, 마태복음, 요한복음, 히브리서에 기록된 안식일의 관련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92.2)
 1. 누가복음에 나타난 안식일과 주님의 관계
 안식일 준수의 모범을 보이신 그리스도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의 공적 봉사의 출발을 선포하신 날이 “안식일”이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6-19). (193.1)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분이셨다는 사실에(“자기의 규례대로”-눅 4:16)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복음의 시작 부분에서 예수님이 습관적인 안식일 준수자로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누가가 예수님을 안식일 준수의 한 모델로 내세우려 한 것이다. 누가가 쓴 사도행전 17장 2절에서도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다고 되어있다.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