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 위에 예수의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흔들림을 당하고, 버림받은 느낌을 가지고 종종 자포자기하여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교회를 상징한다(6:19). 이 이야기는 교회에게 예수께서 이 땅의 권세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항상 그 때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은 자기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다가오신다. (172.2)
 우리의 삶이 거친 바다 위에서 떠밀려 다니는 배처럼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이 있다. 매사가 통제 불능인 것처럼 보일 때조차 예수께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유익하다. 그는 우리의 실수를 포함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이루신다. 그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사람의 실수 속에서도 최선을 이루신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후에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맡기고 편히 쉬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반면에 불건전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데도 멀리 있다고 느끼고, 그가 기뻐할 이유를 제공하시는데도 두려워한다. (172.3)
 “나는 ... 이다”(“I AM”)라는 위대한 표현
 요한복음의 특징들 중의 하나는 예수께서 구약에서 야훼에게만 적용되는 용어인 I AM (“나는[내가] ... 이다[있느니라]”(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egō eimi])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이 헬라어의 강조 용법을 이 복음서에서 세 가지 용례로 사용하셨다.

 (1) 그분 자신이 인간 수준에 있음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셨다(6:20; 4:26). 제자들이 예수께서 다가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자, “내니(에고 에이미 [egō eimi]) 두려워 말라”(6:20)고 말씀하셨다. 그는 다른 인간과는 대비되는 분으로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2) 자신이 신성의 수준임을 밝히시기 위해 사용하셨다. 예수께서는 “나는 ... 이다”(I AM)를 자신의 거룩한 속성을 묘사하는 표현과 함께 사용하셨다(“나는 생명의 떡이다”[“I am the Bread of Life”], “나는 선한 목자이다”[“I am the Good Shepherd”]).

 (3) 절대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구약의 야훼와 같은 분이심을 분명히 선포하기 위해 단순히 “나는 ... 이다”(“I AM”; 「개역한글판」은 구약의 이 표현을 “스스로 계신 자”로 번역하고 있다—역자 주)라고만 말씀했다. 요한복음에서 이 구절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그 구절을 사용하신 것에 대한 구약 배경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2.4)
 구약에서도 신성한 I AM이란 진술은 세 가지 용례로 나타나는데 위에 언급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1) 구약에서 I AM 이란 진술은 야훼의 본성을 드러낸다(출 3:14; 6:2, 3). 그는 항상 자기 백성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타났다.

 (2) I AM 진술은 또한 야훼의 유일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는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하나밖에 없는 참된 신이다(사 43:10, 11). 세초부터 세말까지 그처럼 알려진 다른 신은 없다. 그만이 진정으로 장래에 대해 예언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사 46:9, 10).

 (3) I AM 진술은 또한 야훼께서 다가올 세대에 행하실 미래의 전능한 구원 사역의 한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겔 34:20-31; 36:22-38). (173.1)
 요한복음에서 그의 신성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I AM 진술은(위의 2번 항목), 구약의 세 번째 용례에 기초한 것이다. 이 복음서에서 이 같은 “신성”의 I AM 진술은 예수께서 무엇을 제공해 주셔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야훼에 의해 약속된 미래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성취된다. 그는 생명의 떡이다(6:33-58). 그는 세상의 빛이다(8:12; 9:5). 그는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이다(10:7-18).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26). 그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그는 참 포도나무이다(15:1-8). 구약에서 미래의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다. 그래서 이 같은 I AM 진술 속에서 우리는 요한의 실현된 또는 현재적 종말론(realized or present eschatology)의 개념의 또 다른 표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와 관계를 맺는 것은 미래 왕국의 풍요를 믿음으로 지금 누리는 것이 된다. (173.2)
 요한복음에서 절대적인 I AM 진술(셋째 용례)은 야훼의 본성(첫째 용례)과 유일성(두 번째 용례)을 드러내는 구약의 I AM 진술에 근거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에 나타나는 야훼의 본성과 모든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참으로 육체가 된 하나님이다. 이는 미래에 대한 그의 지식에 의해 명백해진다. 그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심으로 그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I AM”을 믿게 될 것이다(13:19; 또한 사 46:9, 10을 보라). 예수의 신성은 미래를 아는 그의 지식으로 분명해진다. (174.1)
 예수의 신성을 믿는 것은 구원에 필수적이다. I AM (예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로 죽을 것이다(8:24; 참고 사 43:10, 11). 예수께서 미래를 아시는 것이 충분한 증거가 아니라면, 그의 신성은 그들이 “인자를 든 후에”(8:28)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강력히 증거할 것이다. (174.2)
 또한 예수께서는 I AM 형태를 사용하여 요한복음의 서언에 이미 명백해진 것, 즉 영원을 통하여 그가 신성으로 선재(先在)했다는 것을 선포하셨다. 그는 아브라함 이전에 계셨던 위대한 I AM이시다(8:58; 참고 출 3:14). (174.3)
 제4 복음의 “나는 ... 이다”(“I AM”) 형태에서 예수께서는 구약의 야훼로 나타나신다. 그는 최고의 의미에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거닐 때조차 완전하고 진실한 하나님이셨다. 그는 영원을 통하여 선재하셨다(8:58). 그는 지금 그(I AM 진술 속에 나타난 “신성”)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구약의 미래 왕국의 영광을 구현시킬 수 있다. 그의 신성을 믿는 것이 구원에 필수적이다(8:24). 이는 그가 예언한 것이 성취될 때, 특히 십자가와 부활 시에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13:19; 8:28). (174.4)
 목사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방문을 받으면 예수의 신성에 관하여 질문을 던지는 사람과 함께 일할 기회를 자주 가진다. 그들은 요한복음 1:1, 8:58, 로마서 9:5, 그리고 디도서 2:13과 같이 예수의 신성은 가리키는 모든 고전적인 본문에 대해 미리 준비된 대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의 특별한 성경번역본은 요한복음 1:3골로새서 1:16, 17과 같이 쟁점이 되는 구절들을 변경시켰다. 그러나 결코 논박될 수 없는 한가지 증거는 신약 전체를 통하여, 특히 요한복음에서 성경 저자들은 반복하여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만 최고의 의미로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특성과 행위를 예수께 적용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적용은 신약의 저자들의 편에서 매우 자주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예수를 가능한 한 최고의 존경으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아버지께 드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공경하게 되기를 원했던 것이 명백하다(요 5:23). (175.1)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6:22-59를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75.2)
 1. 왜 사람들이 예수를 계속해서 따랐는지에 대해 요한복음 6장에 나타난 이유를 열거해 보라. 그런 후에 예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에 대해 목록을 만들어 보고 14-15절에서부터 41-43절에 나타난 사람들의 태도의 변화까지 기록해 보라.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175.3)
 2. 위의 구절을 출애굽기 16장민수기 11장과 비교해 보라. 예수께서 제공하시는 생명의 빵과 모세에 의해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와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 예수께서 이 부분에서 의도하시는 핵심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두 단락으로 기록해 보라. 그가 제공하는 떡이 만나보다 어떤 면에서 더 큰 것인가? (176.1)
 3. 예수께서 그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예수께서 똑같은 사상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표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76.2)
 4. 종이를 가져다가 가운데에 줄을 그어라. 한쪽 편에 본문에서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함축하는 모든 진술을 열거해 보라. 반대쪽에는 예수께 나아오는 것이 개인적인 선택임을 함축하는 것들을 열거해 보라. 두 주제는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176.3)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