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요한복음 6장의 모든 것을 이틀 남짓한 기간 동안에 경험하셨다. 첫째, 그는 5,000명을 먹이셨고, 그 결과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1-15절). 청중과 제자들로부터 물러나신 후 예수께서는 한밤중에 갈릴리 바다 물 위를 걸어서 배 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셨다(16-21절). 그 다음날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그는 그와 모세가 백성들에게 준 떡의 장점들을 비교하는 대화를 청중과 나누셨다(22-35절). 이 일은 그에게 그의 유명한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는데, 그 속에서 그는 백성을 영적으로 먹인다는 용어로써 자신의 사명을 묘사하고 있다(35-39절). 이 장은 예수의 제자들이 심각할 정도로 줄어들어 열두 명만 그와 함께 남게 되는 것으로 마쳐지고 있다(60-71절). (165.1)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6:1-15를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66.1)
 1. 안드레와 베드로는 둘 다 이 문단에서 예수께 이야기하고 있다. 성구 사전을 사용하여 여기서 그들이 한 말과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서 한 말을 비교해 보라. 이 사실이 5,000명을 먹일 때 그들 각자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166.2)
 2. 그대는 예수께서 이미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자들에게 어디서 떡을 살 것인지 물으심으로써 그들을 시험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66.3)
 3. 그대는 이 이야기와 구약의 유월절 이야기(출 12)와 만나 이야기(출 16:1-8) 사이의 유사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166.4)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배경
 예수께서 갈릴리로 돌아오셨는데, 이는 요한복음에서 비교적 드문 일이다. 사실 가나의 혼인 잔치(2:1-11), 왕의 신하의 아들의 치유(4:46-54), 21장에서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6장의 사건들만이 갈릴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달리, 이 복음서의 대부분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166.5)
 요한복음 6장의 사건들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발생했다(6:4).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었으며, 이러한 형편은 그 황량한 곳에 그처럼 큰 군중이 모일 수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설명해 준다(화잇, 시대의 소망, 364). 요한복음에서 유월절이 언급될 때마다 주의 만찬이나 십자가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둘 다 나타날 때도 있다—화잇, 시대의 소망, 388, 389를 보라). 자연히 이 장에는 출애굽의 영상(映像, imagery)이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적을 베풀어 청중을 먹이는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광야의 이스라엘을 상기시킨다. 민수기 11장에서 모세는 음식 부족에 대해 불평하는 광야의 거대한 군중과 대면한다. 요한복음 6:5에서 예수께서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이 모든 백성을 먹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13절). 이것은 요한복음 6장을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 강력하게 묶어 주는 많은 암시들 중의 하나이다. (166.6)
 문단의 세부 사항
 이 이야기는 갈릴리 바다 건너편 디베랴(와 가버나움-1절)에서 일어났다. 큰 군중이 예수를 따르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병자들을 치유했기 때문이다(2절). 그래서 그는 언덕의 사면 위에 자연스럽게 생긴 강단을 발견하고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3절). 3절의 표현은 마태복음의 산상 설교를 매우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마 5:1을 보라). (167.1)
 여기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는 빌립과 안드레(요 6:5-9)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가장 활동적인 제자들에 속한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가장 활동적인 제자들에 속하는 요한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반면에, 이들이 언급된 것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다(앞서 언급한 대로 요한은 이 복음서에서 사랑 받던 제자와 동일시되는 듯하다[12:23, 24; 19:35; 21:24]). 빌립은 그들이 현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동네인 벳새다 출신이므로(1:44), 예수는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 문제에 대한 인간적 해결책을 물으심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행하려는 이적의 초자연적인 측면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수들(5,000, 200, 5, 그리고 2)에는 어떤 영적인 또는 상징적인 의미는 없다. 이들은 단순히 실제 상황들을 회상한 것이다. (167.2)
 이 이야기 가운데는 이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주의 만찬의 제정에 대한 강한 암시가 있다. 예수께서는 떡을 취하여 축복하신 후—헬라어로 유카리스테사스(eucharistēsas)인데, 여기서 영어 유커리스트(Eucharrist, 성찬식)라는 단어가 나왔다—회중에게 나누어 주셨다(11절). 여기에 선택된 이 특수한 헬라어는 신약의 다른 부분(특히 눅 22:19고전 11:23, 24)에 사용된 주의 만찬을 가리키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상기시켜 준다. (167.3)
 이 복음서는 남은 조각을 모아 낭비된 것이 없게 하라는 예수의 명령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유일한 복음서이다(12, 13절). 그 결과, 사람들은 그들이 신명기에 예언되어 있는 모세(그 역시 “하늘에서 떡이 내려오게 했다”)와 같은 선지자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14절; 참고 신 18:15-18). 그런 토의가 강제로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자, 그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떠나가셨다(15절). (168.1)
 문단의 주요 주제
 성만찬의 떡
 이 이야기의 기록 속에 나타나는 성만찬과 출애굽 용어는 독자들에게 요한복음 6장, 특히 30-59절에 이어지는 내용에 대해 미리 준비를 시켜준다. 요한은 주님의 만찬 사건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는 그 부재를 6장에서 주님의 만찬과 동일한 신학으로 보충하고 있다. 유월절의 참된 의미는 예수와 그분만이 제공할 수 있는 만찬 가운데 발견될 것이다(Talbert, Reading John, 132). 그러므로 6장은 예수께서 유대주의를 대체하신다는 주제, 정결의 물과 성전을 대체하시는 2장, 사마리아인의 믿음과 예루살렘을 대체하시는 4장, 그리고 베데스다의 물을 대신하시는 5장에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 주제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168.2)
 그러나 주님의 만찬에 대한 요한의 암시가 하나는 언덕 사면에서, 다른 하나는 해변(요 21:1-14)의 소풍 도시락의 상황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어떤 의미로 성만찬 예식, 만찬식단, 그리고 소풍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예수를 대면하는 것은 정상적인 예배순서가 진행되는 교회 건물에만 제한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와 동행하는 자는 매일의 식사가 성만찬이 된다는 뜻이다(화잇, 시대의 소망, 660, 661; Barclay, 1:225, 226). (1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