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문은 이중으로 잠겨 있는 듯이 보일 뿐이다. 하나님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계 3:8)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진실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다. 그분은 우 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190.2)
앞에서 언급했던 하박국 선지자도 결국 깨닫고 모든 의심을 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악기를 들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때까지리이까?”라고 불평하는 대신에 그 시대의 농민들의 언어를 빌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190.3)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 18).
(190.4)
1260년/일의 박해 기간이던 1530년 대의 어느 때에 안토니 파아손스(Anthony Parsons)라는 사제(司祭)가 개신교로 개종했다. 진노한 살리스베리의 주교(Bishop of Salisbery)는 그 사제와 다수의 개신교도들에게 공개적인 화형을 선고하였다. (190.5)
곧 이어 그들은 이른 아침에 나무에 묶이어 처형장에 세워졌는데 파아손스가 마실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그는 물을 얻어 마신 다음에는 또 토스트를 하나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은 은유적인 말로 다른 사람들을 격려했다. “나의 형제들아, 즐거워하라. 그리고,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쳐들라. 내가 믿노니 우리들은 이 아침의 쓰라린 조반을 먹은 후에 우리의 하나님이요. 구속주이신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훌륭한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190.6)
파아손스는 손을 아래로 뻗어 이제 곧 불에 타게 될 땔감들을 자신에게로 가깝게 끌어다 놓은 후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전투를 위해 준비된 그리스도인 병사이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덕을 통한 자비 외에는 아무런 동정도 바라지 않는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세주이시다. 나는 그에게 나의 구원을 의탁한다.”7(190.7)
아토니 파아손스는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그 흰옷을 의지하기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의 주변에서 누리게 될 미래의 기쁨을 신뢰하기로 선택했다. 그는 눈 앞에 고통스러운 죽음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이 진실로 돌보고 계심을 믿기로 작정하였다.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