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인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전반부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는 기간을 다루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전반부인 역사적 시대에 속하는 것이다. 다섯째 인의 시대에 발생하는 박해는 “두아디라 교회”(계 2:22)에 닥친 대환난과 작은 뿔이 “성도들”(단 7:24, 25)을 대적하여 일으킨 “전쟁”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185.8)
 순교자들은 심판을 간청하였다. 그들은 여쭙기를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였다. 그들의 간청 때문에 최후의 심판에 앞서 다섯째 인이 발생케 되었다. 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235~245페이지에서 우리는 최후 심판의 첫번째 단계가 다니엘 8장 14절에 명시된 2300년/일의 끝인 1844년에 시 작된다는 사실을 검토했다. 순교자들은 심판이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대해 오늘날의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려 하지 않으셨다. (185.9)
 수세기 전에 선지자 다니엘은 다니엘 8장의 묵시에서 심판의 시간이 선포되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처음 들은 것은 요한계시록의 순교자들과 하박국 선지자가 제기한 것과 동일한 질문인 “언제까지이니까?” 란 것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들은 대답은 2300 일에 대한 상징적인 말이었고 또 끝날이 이를 때까지 그 책을 인봉한 대로 즉 완전히 이해되지 못 한대로 놔두라는 지시를 받았다(단 12:4). (185.10)
 순교자들이 같은 질문을 다시 제기했을 때에도 그 답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바로 여기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185.11)
 우리는 “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128페이지에서 1260년/일이 기원 후 538~1798년에 걸친 기간이란 사실을 검토했다. 이와 같이 이 기간은 1844년에 시작되는 심판에 조금 앞서 끝난다. 우리는 또 앞에서 두어 차례에 걸쳐 1260년/일의 환난을 관련 예언과 함께 검토한 바 있다(pp. 33, 35, 125, 126 그리고 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130, 131).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서 다루지 않는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이 박해가 순교자들의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느냐 하는 것이다. W. E. H. 레키(Lecky)는 대영제국 학술원의 일원으로서 저명한 역사가인데 그가 그의 가족들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념의 일단을 우리에게 피력하고 있다. 렉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86.1)
“그 이단적인 신앙인의 어머니와 아내와 누이와 딸이 당해야 하는 고통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그 여인은, 자신에게는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그 남자의 신체가 서로 어긋나 있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인은 작은 불길이 서서히 타올라 차례로 사지를 태우고 끝내는 고뇌에 싸인 그를 완전히 휩싸버리는 것을 보았다. 드디어∙∙∙고문에 시달려 온 그 육체가 영면(永眠)하자 그 여인은, 이 모든 일이 그 여인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께 가납되는 것이며 또 이것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에게 영원토록 가하는 큰 고통의 미소한 잔상(殘像)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6
(186.2)
 순교자들의 가족들은 “언제까지이니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하소연을 얼마나 더 해야만 하는가? 그들은 얼마나 더 C. S. 루이스(Lewis)처럼 하늘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하늘 문이 이중으로 잠겨 있는 느낌을 계속해야 하는가! (186.3)
 렉키는 같은 페이지에서 말하기를 “그 스페인 이단자는 구경꾼들에게 그가 당해야 할 운명의 마지막 상태를 상기시켜 주는 끔찍스러운 고문의 흔적과 또 마귀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가득찬 옷을 입고 불길 속으로 이끌려 갔다”고 했다. 렉키는 또 가운에 맞추어 유사하게 장식된 크고, 원추형으로 생긴 고깔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 당국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 순교자들이 그들의 유별난 확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옥 불에서 불타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들이, 처형되는 이단자들에게 흉칙스러운 옷을 입히는 것은 마지막으로 이단자들이 그 흉칙한 모습을 보고 두려운 나머지 회개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186.4)
 진정한 순교자들은 갈팡질팡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 위에 강요된 악마의 가운 저 너머에서 하나님의 가운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흰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순교자들의 가족들도 그들의 시선을 그 흰옷에 계속 두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틀림없이 그렇게 했으며 또 크게 위로를 받았다. (186.5)
 일곱 인의 끝에 가까운 마지막 시대의 과업과 보장의 장면에서 하나님은 요한에게 당신의 보좌를 옹위하고 서 있는 진실한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하늘에는 이와같은 영광스러운 의복들이 있다]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그리스도가 지상의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했던 것처럼(요 12:13)]”, 마음으로 기쁜 노래를 불렀다(계 7:9). 그들은 언젠가 곧 그렇게 될 것이었다. (186.6)
 요한이 예언적인 이상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십사 장로의 하나가 요한에게 보장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생물들과 꼭 같이〕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며 “저희가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계 7:13~17)이라 하였다. (186.7)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을 멸망시키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최후의 멸망으로부터 보호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흰옷을 주시고 잠시 동안 무덤에서 쉬게 하시고 영생을 보장해주셨다.*

* 제단 아래의 영혼들이 지금도 살아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214~220페이지의 관련 문제와 해답란을 참고하라.
(187.1)
 144,000 인은 인봉되어 있다. 순교자들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집단에 대해 특별히 언급되었다. 이들이 바로 144,000 명의 무리인데 이들은 1260년/일의 기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몇 십 년의 기간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시련의 네 바람이 그 유례가 없는 파괴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한 천사가 특별히 144,000 무리의 각 사람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1~3)을 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187.2)
 여기에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인”요한계시록 14장 1절에 나오는 “그 아버지의,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인”“이름”은 모두 백성들의 이마에 표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187.3)
 

순교자의 고통은 극심하였으나 길지 않았다. 그의 유족들은 더 오랫동안 고통을 당했다.
(187.4)
 그래서, 이 표현의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시대를 살이 그의 백성들 각 사람에게서 자신의 사랑스러운 성품을 아름답게 재현시킴으로서 그들을 인치신다는 것으로 보인다. 12~14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취급하게 될 것이다. (188.1)
 이와같이 그리스도는 순교자들을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의 의의 옷을 입히셨다. 그는 또 144,000 인을 가공스러운 네 바람의 파괴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의 성품을 의롭게 개발시키겠다고 약속하셨다. 여섯째와 일곱째 인은 이 땅에 다시 오시겠다는 그리스도의 변하지 않는 약속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188.2)
 현상적 징조와 재림
 요한은 말하기를 1260 년간의 박해에 뒤이어 “어린 양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계 6:12~14)웠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에서 이 같은 현상적 징조들에 대해 토의하고자 한다. 이제 곧 목격하게 되겠지만 오늘날 많은 성경 학자들은 위의 현상적인 징조들의 첫 부분은 이미 성취되었고 이제는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이 종이 축처럼 말리는 일만 남아 있다고 믿고 있다. (188.3)
 아직은 하늘이 종이 축처럼 사라진 것도 아니며 산들과 섬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옮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예언적 사건을 바라보면서 마치 이미 발생한 것처럼 기술하여 말하기를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5~17)고 했다. (1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