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께로 가져온 딜레머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만일 그가 그녀를 가게 하라고 하면, 그들은 그가 모세의 법에 불순종하도록 백성을 가르친다고 고소할 것이었다. 만일 그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면, 그들은 유대인에게 스스로 처형권을 갖도록 허락하지 않던 로마인들에게 신고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와 같은 반응으로써 간음에 대한 법적인 형벌도 존중하시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정과 용서의 중요성도 강조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는 이들은 마치 그들 스스로는 아무런 죄책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200.4)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아무 다른 방법으로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는 누가복음 7:36-50의 여인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를 용서하지도 않았다. 그는 재판관으로서 행동하지 않기로 선택했다(요 3:17; 8:15). 반면에 그는, 그분과의 만남과 관련하여 그녀가 그녀 자신을 어떻게 심판했는지에 대하여 그 여자의 장래의 행동들이 증거하게 할 것이다(12:47, 48). (201.1)
 문단의 주요 주제
 이 문단의 주제는 요한복음과 조화를 잘 이룬다. 예수께서는 그 여인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또한 그녀의 고소자들에 관해서도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틀림없이 받아야 했던 선고를 내리기를 거부하셨다. 2,000년 동안 이 이야기는 비록 정죄가 정당한 때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속히 정죄하려는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 경계를 주어 왔다. 예수께서는 자비와 친절의 한 모본을 보이셨다. 자신의 죄와 관련하여 그의 자비를 맛본 사람들은, 비록 그 죄들이 고의적이고 사악한 것이라 할지라도 죄와 더불어 투쟁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롭고, 부드럽고, 오래 참게 될 것이다(딤후 2:24-26; 참고 화잇, 교회 증언, 6:120-123). (201.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8:12-59를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202.1)
 1. 이 문단에서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과 아버지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관하여 말씀하신 많은 진술들을 열거해 보라. 이 문단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그를 보냈는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토의해 보라. (202.2)
 2. 이 문단에서 예수와 그의 반대자들을 구분하는 모든 문제들을 열거하라. 그 논란이 발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은 같은 비난을 다른 말로 계속하고 있는가? (202.3)
 3. 본문을 복사하여, 아버지 또는 진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표를 하라. 이 단어들이 자주 사용된 것은 이 문단의 기본 문제들에 관하여 어떤 점을 지적하는가? (202.4)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와 배경
 8장의 나머지는 7:1에서 시작한 초막절 사건의 일부이다. 이 부분은 I AM (나는 ... 이다) 진술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마친다(12, 58절). 예수께서는 축제를 위해 성전 뜰에 모인 사람들과 더불어 자신의 경우에 대해 논쟁을 계속하셨으나, 이제 지도자들은 무대 뒤편에 불쑥 나타나서 예수께 정면으로 공격을 가해 왔다(13, 22, 48, 52, 57절). (202.5)
 초막절은, 이 장의 초반에서 언급한 것처럼, 출애굽을 경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공급하시고 불기둥으로 어두운 밤을 밝히시며 따뜻하게 해주신 광야의 경험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었다(출 17:1-17; 민 20:1-13; 출 13:21, 22; 14:24; 민 14:14; 참고 사 60:1-3; 슥 14:7, 8). 예수께서는 다시 행사의 진행을 중단하시고는 자신이 바로 세상을 밝히는 분임을 선언하셨다. 그는 광야에서 빛을 제공하신 바로 그분이시다(8:12). (202.6)
 문단의 세부 사항
 8:12-20에서 빛 주제(12절)와 심판 주제(15, 16절)를 능가하는 주된 주제는 요한복음 5:31-47을 연상시키는 증거(witness)이다. 아버지께서는 예수의 증거에 자신의 증거를 더하심으로 율법의 최소한의 표준을 충족시키셨다(8:13-18; 참고 신 19:15). 만약 예수의 반대자들이 그분과 참된 관계에 들어갔다면, 그들은 그분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고, 그 두 분의 결합된 증거의 능력을 느꼈을 것이다(19절). (203.1)
 8:21-30에서 예수의 신원과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계속된다. 예수께서는 의미 깊은 I AM 진술을 두 번 더 하신다(24, 28절). 33-59절마태복음 23장의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의 비난을 연상시켜 준다. 이 단락 전체는 아브라함이라는 주제로써 한 데 묶을 수 있다(33, 37, 39-41, 52, 53, 56, 58절). 예수와 그의 반대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유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203.2)
 32절과 33절에서 유대인들과 예수는 이중의 오해에 직면한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유의 의미를 오해했고, 또한 그들은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의 의미를 오해했다. 예수께서 중히 여기시는 유일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이다. 예수의 진리가 생애에 스며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죄에게 예속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충만한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죄에게 예속된 자들은 비록 그들이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라 할지라도 이방인보다 더 나을 바가 없다(34-36절). 예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구원이 그만큼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됨은 육신을 따라서가 아니라, 행위를 따라 이루어짐을 지적하고 있다(37-40절). 유대인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처럼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녀는 아브라함이 행동한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39절). (203.3)
 예수의 반대자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가리키면서 논쟁의 궤도를 이탈해 가려 하자(41절), 예수께서는 수사학적 대응으로 맞서셨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영적 형제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42절).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진리를 가져오신 분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40절), 그들의 행위는 그들이 가인처럼 태초부터 살인자며 기만자였던 마귀의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44절).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의 진실하고 무죄한 행위는 그가 하나님의 참된 아들임을 증거하고 있다(45-47절). (204.1)
 대화가 이 지점에 이르게 되자 상황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예수의 정죄에 반발하여 도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대 자신은 마귀의 일을 하기 위해 그에게 사로잡힌 그의 자녀이다”(참고 48절). 이 말은 그들의 생각에 예수를 사마리아인만큼이나 나쁘게 여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으로 불리는 것에는 개의치 않으셨으나, 귀신들린 자로 불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셨다(49절).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