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그들은 예수가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고 주장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52, 53절). 예수께서는 그런 공격을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예언적인 이상의 초점이 됨을 주장하셨다(56절). 그러므로 그는 아브라함보다 더 크실 뿐만 아니라, 그는 I AM 이시다(54-58절; 제4 복음에서의 I AM 구절들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제7장을 보라). 이런 “신성 모독”(“blasphemy”)에 뒤이어 그의 반대자들이 그들의 손에 돌을 들고 나타났을 때 예수께서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가셨다(59절). (204.3)
 문단의 주요 주제
 높이 들림[高揚, exaltation]으로서의 십자가
 요한복음에는 십자가를 지칭하는 하나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들어올린다”(“lifting up”)는 표현이다(3:14, 15; 8:28). 이 용어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의 물리적 행위를 문자적으로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한편, 들어올림의 뜻을 정서적 의미로 확장시켜주고 있다. 누군가를 들어올린다는 것은 그들을 격려하거나 높은 지위를 주어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높이는 것은 자랑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들리심”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올린 물리적 행위에 적용되고, 또한 그의 승천(昇天)이라는 물리적 행위에 적용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예수의 성품의 “영광스럽게 됨”(“glorification”)과 관련되어 있다. 십자가는 그의 거룩한 성품에 대한 여타의 증거보다 예수의 참된 본성을 더 잘 확증해 주고 있다(28절). (205.1)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들어올림”(“lifting up”)과 마찬가지로 진리(truth)라는 단어도 요한복음에서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Brown, 1:499). 무엇보다 먼저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체(person)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1:17; 14:6). 예수의 도래와 그의 삶과 죽음은 진리를 세상에 이르러오게 했다. 그러나 진리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신 동안 그의 생애와 교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품성을 계시한 것이기도 하다(3:33, 34). 사람이 진리를 추구할 때, 그가 갈 수 있는 다른 장소가 없다(8:32, 36; 14:6). 그러므로 확대된 의미에 있어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증언들은 예수의 시대 이래로 세상에서 진리의 중심 되는 원천이 되었다(16:13). “제2 세대”에 사는 우리에게 신약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가 되었다. (205.2)
 어떻게 진리가 사람을 자유케 하는가? 바클레이는 네 가지 측면을 밝히고 있다. (206.1)
 (1) 진리는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예수의 제자는 결코 홀로 행하지 않고, 예수의 임재 속에 있으므로 두려움은 사라진다. (206.2)
 (2) 진리는 자아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충족된 삶을 이루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그들 내부에서 발견된다. 예수께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206.3)
 (3) 진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므로 움츠러든다. 자신이 하나님께 가납(嘉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206.4)
 (4) 진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죄의 중독적인 능력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죄를 짓는다. 죄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고 죄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제자도(弟子道, discipleship)는 죄의 사슬을 깨뜨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충만한 잠재력에 도달하도록 능력을 더해 준다(Barclay, 2:21-23). (206.5)
 세상의 빛
 광야에서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 보호, 그리고 인도를 나타냈다(Barton, 1893). 요한복음 8:12-59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묘사하고 계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그를 영접한 새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 보호, 그리고 인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세상의 빛으로서 그는 또한 사람들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제시하였다(32-36절). 그러나 빛에 관한 또 하나의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추어진 결점이나 흠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의 본성과 기별의 빛이 비추는 곳마다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뒤따르게 된다. 세상의 빛 되신 분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심판을 가져왔는데, 이는 그분이 제공한 죄로부터의 구원을 그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도록 한 그들의 죄의 끈질김 때문이었다(33-59절). 또한 죄가 있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비치는 빛 가운데서 죄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이다. (206.6)
 예수 당시와 같이 역사의 끝에도 심판의 쟁점은 언제나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그 외에 다른 쟁점은 없다. 그를 영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를 거절하는 것은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이뤄지는 심판은 언제나 행위에 빛을 비춰 준다(32-44절). 사람이 예수를 영접했는지 아니했는지에 대한 최선의 증거는 그 입의 고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행위에 있다. (207.1)
 ■ 말씀을 적용함
 1. 그대의 가족 가운데서 그대의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예수께서도 같은 문제를 직면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그대의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그대는 그대의 가정에서 신앙을 표현하는 일에 대하여 개방적인 편인가, 또는 신중한 편인가? (207.2)
 2. 다른 사람들이 죄에 빠져 있을 때, 그대는 그들을 판단하기에 빠른가? 아니면 그대의 마음에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동정심인가? 그대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인에 대한 예수의 반응이 이혼과 재혼에 대한 교회의 반응에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207.3)
 3. 그대는 그리스도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를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대답에 대하여 설명해 보라. 그대가 성경이나 어떤 신학적 관점을 터무니없게 오해한 경험이 있는가? 그대가 그런 오해를 하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207.4)
 4. 그대의 종교적 유산 중에서 그대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대를 부끄럽게 하는 측면들도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대는 그대의 종교적 유산이 그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대체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2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