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생체학의 신비 ” (185.2)
 “현미 채소 해조류에 된장국 식사 ∙∙∙ 도시락까지” (185.3)
 “어느 날 갑자기 통증이 사라져, 지금은 더 건강” (185.4)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생명 건져 ∙∙∙ 이젠 천연식 강의도” (185.5)
 왁스맨 부부를 찾아갔다. 나를 진단한 후, 암이 너무 말기여서 엄격한 천연식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육류, 우유 제품, 하얀빵, 밀가루 제품을 포함한 일체의 가공식품, 설탕, 기름견과 종류, 과일유, 탄산수, 화학 물질이 든 식품은 절대로 먹지 못하게 했다. 술은 금물이었다. (185.6)
 나의 식단은 50-60%가 현미등의 천연곡류이고, 25%가 현지에서 가꾼 채소류, 나머지 15%가 콩과 해조류이고, 약간의 국물과 양념이 곁들여졌다. (185.7)
 나는 그 때쯤 내 자신을 이상한 엉터리 과학 속에 던지고 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명의 불꽃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으며, 누가 이 불길을 다시 살려 준다고 말만해도 그 방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어떤 미세한 희망이라도 있기만한다면 붙잡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85.8)
 데니 왁스맨은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다. 그는 미국인의 건강이 식사 방법의 개악으로 멍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185.9)
 미국인들은 1,900년쯤에는 가공하지 않은 알곡, 채소, 과일을 주식으로 했으며, 육류, 우유제품, 인공 조미료, 복합 탄수화물 등은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땐 건강했다는 것이다. (185.10)
 20세기 기술혁명은 식생활까지 바꿨다. 대부분의 음식은 중가공품 (重加丁品)으로 변했으며, 채소같은 천연식품은 주식 대신 악세서리 부식으로 격하(格下)했다. (186.1)
 가공된 곡물류, 깡통에 담은 채소류, 각종 화학 물질이 든 음식들, 이런 것들이 소위 문명국의 대표적 식단으로 부상했다. 이런 풍조와 함께 20세기 의술의 최대의 난적(難敵)인 심장병과 암의 이환율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왁스맨은 이론을 전개했다. (186.2)
 거시 생체학적 견해에 따르면, 이런 보건악화는 건전한 식생활 개선과 건강한 생활 양식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며, 암은 극단적인 신체의 불균형의 결과이다. 왁스맨은 이런 불균형을 균형있는 식사로 바로잡을 수 있으며, 그렇게되면 체내의 독이 스스로 빠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신체의 독은 지방질, 가공 식품, 합성식품, 기타 화학물질의 축적 그 자체거나 그 축적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186.3)
 나는 의사로서 왁스맨의 이론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식사가 암의 뿌리가 된다는 주장은 암의 병원(病原)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같은 왁스맨의 주장은 암의 선천성, 바이러스성, 환경 요인성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거시 생체학이 내존하고있는 신념체계도 문제였다. “식이 요법으로 나을 수 있다”라는 등의 강한 신념을 가지면 암이 쉽게 물러간다는 이 요지는 아무래도 과학도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186.4)
 죽어가면서 한번 절망 상태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땐, 편견이나 자존심 같은것은 한갖 화려한 사치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186.5)
 나는 병원 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매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젠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장기적인 전망이 없었으며, 이 거시 생체학만이 미래를 희미하게나마 설계해 줄 따름이었다. (186.6)
 9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하루도 빼지않고 매일밤 왁스맨 식당에 가서 다른 십오륙명의 식구와 함께 천연식을 들었으며, 점심은 역시 왁스맨 식당에서 싸주는 일본식 도시락으로 때웠다. 그리고, 아침은 옅은 된장국과 오트밀로, 내가 손수 만들어 먹었다. (187.1)
 점심 시간이면 괴로왔다. 내가 그 일본식 도시락을 꺼내 놓고 현미와 채소로 된 천연식을 들고 있노라면, 모두들 나를 불쌍하게 보거나 이방인으로 취급했다.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의사가 가짜 의사에게 넘어 갔어” 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187.2)
 이런저런 일로 닥쳐오는 심리적 고통이 너무 무거웠다. 그러는 중에도 육체적 통증은 더해 갔다. 에스트로젠 호르몬을 맞음에 따라 체중이 느는것도 내겐 볼썽사나운것이었다. 호르몬 요법을 쓰기 시작한 후, 체중은 140파운드에서 170파운드로 증가했다. (187.3)
 몸에 수분이 빠지지 않아 전신이 퉁퉁 부어올랐으며, 또 가렵기 시작했다. (187.4)
 나는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기위해 병원 신축 설계에 몰두했다. 그리고, 거시 생체학에도 더욱 마음을 기울였다. (1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