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6부 위험에 처한 관계 제37장 성소 봉사는 교육 과정이다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예를 들어 섀도우가 4달 되었을 때 부엌 탁자에서 나의 저녁식사를 발견하고는 다 먹어버렸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 바닥에서 마지막 한 조각을 핥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빵을 먹으려고 빵을 토스트기에 집어넣고 몇 분 후에 돌아왔다. 그러자 그 야윈 강아지는 두 발을 탁자에 기대놓고 그 토스트 빵을 막 먹으려는 찰나였다. 나는 “안 돼”라고 외쳤다. 그 때 섀도우는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었다. 새도우가 어렸기 때문에 현재처럼 그가 잘못한 만큼 혼내지 않았다. (333.1)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성장시키고 계신 것에 감사한다. (333.2)
 하나님께서는 점차적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분 자신을 보여주시며 이러한 과정은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에 걸쳐 지속된다. 우리 선조의 믿음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조들이 다다랐던 곳 이상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더 쌓아 올려야 한다. (333.3)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육시키시면서 다른 우주 거민들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다. 그들의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온 우주는 그분의 교실인 것이다. (333.4)
 만일 당신이 사단이고 하나님의 우주에서 피조물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충분히 알게 될 때에 당신을 멸하실 것을 안다면 그대는 무엇을 하겠는가? 해야 될 한 가지 일은 그분의 학생들을 무지와 죄와 낙심을 통하여 하나님과 분리시킴으로 혼란을 야기시키려 할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333.5)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334.1)
 교실 안에 사자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그의 운명이 가까워 올수록 그의 노력은 더 필사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종이 울리기 몇초 전의 지고 있는 농구 팀처럼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총출동을 할 것이다. (334.2)
 사단은 우리를 잠시나마 슬프고 고통스럽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고 있는 한 영원히 해를 입힐 수 없다. 사단은 이미 진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이끌려가고 성령의 힘에 힘입어 변화되어 가고 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기 싫어한 것과 히틀러가 유럽을 포기하기 싫었던 것, 오그레이디 대위의 적들이 그를 놓아 보내주기 싫었던 것처럼 사단은 우리를 보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상 사단은 우리를 당연한 먹이 감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334.3)
 사단은 나에게 한 고양이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도마뱀을 고양이에게로 구해주어 고양이가 먹지 못하게 했다. 고양이는 증오에 찬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고양이가 집 고양이가 아니고 사자였다면 나를 단숨에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양이가 나를 찢지 못한 이유는 내가 더 컸기 때문이다. (334.4)
 교육은 시간이 걸린다. 교실을 핵무기로 파괴하는 것은 그 과정을 속히 끝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백성들을 교육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은 무지와 혼란, 의심, 사단이 그 길을 가로 막으려고 노력하는 분열이란 빙산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것이다. 배를 포기하지 말라. 궁극적으로 가라앉을 것은 빙산이기 때문이다. (3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