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과 그의 천사들이 지구로 쫓겨났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전쟁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2)!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 지구가 이런 혼란 가운데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구는 우주의 전쟁터이다. 인류뿐만 아니라 천사를 포함한 수백만의 우주 거민들이 어느 한 편에 속해 있으며 수천 년간 싸워온 이 전쟁은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328.1)
우리의 눈으로 천사를 볼 수 없지만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엡 6:12). 이런 우리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위로하고 있다. (328.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328.3)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다. 그에 반해 사단은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대항하는 사단을 하늘에서 쫓아내셨다. 사단이 예수님을 유혹할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328.4)
사단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단은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11절). (329.1)
하나님은 사단보다 강하신 분이다. 수천 년 전에 사단과 모든 죄인들을 멸하실 수 있으셨다. 그렇게 하셨으면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폴폿 같은 피에 굶주린 폭군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멸하는 것이 죄를 근절시킬 수 있는가? 사단을 따르는 천사들도 한 때는 죄 없는 천사들이었다. 사단이 없어진 후에 지금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이나 다른 누군가가 사단의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329.2)
만약 하나님께서 과도하게 힘을 사용하셨다면 실제적으로 반역의 위험을 더 키웠을 것이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처럼”(요일 4:18) 강한 힘은 파괴적인 공포를 창출하며 온전한 두려움은 사랑을 내어쫓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개념을 하나님과 그분의 권능을 경외하는 면에서 생각한다면 건강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 오직 공포 외에는 다른 어떤 느낌도 없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분을 두려워한다면 그들은 그분을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섬기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지극히 높으신 자와 같이 되는 그들 자신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쪽 구석으로 치워질 것이다. (329.3)
만약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너무 일찍 멸하셨다면 죄인들 모두가 실제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을 것이다. 구원 받을만한 사람들도 잃어버렸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충성된 백성과 그렇지 않은 백성이 서로 확연히 구분될 수 있는 단계로 진전될 때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공존케 하셨는지 보여주기 위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다.(마 13:24~30). (329.4)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정직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억제하신다. 계시록 3:20에서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우리를 로봇처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랑할 줄 모르는 로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원하신다. (330.1)
사랑은 감상적이거나 실없거나 사탕발림이나 향수나 면도로션 같은 것을 종종 얼굴에 뿌렸을 때 “빠지는” 변덕스러운 감상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온 우주의 도덕적 기초인 것이다. 사랑은 자유의지를 가진 지적인 존재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초이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서로를 파멸시킬 것이다. 만약 이것이 의심스럽다면 신문이나 저녁 뉴스를 보라. (330.2)
만약 하나님께서 간단하게 “그래.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 네가 그렇게 사단을 섬기고 싶다면 가서 섬겨라. 나는 이만 물러나겠다”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증오와 파멸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정부만이 영원토록 지속될 것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고(요일 4:8) 그분의 법의 기초가 사랑이기 때문이다(마 22:36~40). 하나님께서는 연합국이 유럽을 나치 통치하에 버려둔 것과 같이 공정한 기회를 주시지 않고 인간들을 사단에게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330.3)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온 우주를 죄에서 완전히 단절시키는 방법으로 사단과 죄인들을 멸하실 수 없으셨다면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하실 수 있겠는가? (330.4)
계시록 20~21장에선 하나님께서 불로써 죄의 궁극적인 소멸과 완전한 지구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그 답은 하나님께서 점진적으로 온 우주를 교육시키고 계신다는 것이다. 성소 봉사를 통해 알게 된 교훈들이 포함된 성경에 기록된 사건과 교훈들과 성령님의 끊임없는 역사는 이 모든 교육 과정의 일부분이다. (331.1)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은 이 교육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회심케 하는 사건인 동시에 온 우주 거민 앞에 악의 세력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치러 오셨고, 희망과 사랑의 말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 반면에 사단은 인간들을 선동하여 그들의 너그러우신 주님을 가장 고통스럽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죽이도록 선동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사단과 이 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나의 죄를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의 고통을 더 가중시킨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 내가 얼마나 깊은 웅덩이에 빠져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331.2)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악을 끝내는 일에 이토록 오래 기다리고 계시는가? 사단은 연극에 능하며 사기꾼이면서 홍보에도 도사이다. 사단은 천사 삼분의 일을 설득시켰다. 인간과 같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무딘 존재들이 사단의 약삭빠른 속임수를 알아차리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331.3)
우리의 문제는 무지이다. 교육은 시간이 걸린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극복해야 할 하나님께 대한 많은 편견들과 정신적인 장애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331.4)
인간은 종종 무지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한다. 그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므낫세 왕은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고 하나님을 모욕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그를 권고하셨을 때에 그는 드디어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대하 33:13). (332.1)
예수님은 인간의 무지를 잘 알고 계신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분을 고문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332.2)
하나님께서는 점진적으로 우리의 무지의 휘장을 벗기신다. 우리가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가 선택함에 있어 더 많은 책임을 갖게 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심코 저지른 죄를 자신이 알게 되었을 때에 이에 대한 희생제물을 드려야할 책임이 있었다(레 4:27~28). 신약 성경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332.3)
내 딸 사라가 여섯 살 때 아내와 나는 금색 리트리버 강아지를 사 주었다. “섀도우(Shadow)”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강아지는 5주 밖에 되지 않은 정말 귀여운 강아지였다. 그러나 그 강아지는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밖에 나가는 법도 배워야 했고, 가구나 카펫 그리고 손이나 다리를 물지 않고 그의 뾰족한 이를 가지고 장난감을 물며 노는 법도 배워야 했다. (3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