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4부 거룩한 열성 제20장 속죄는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용서가 속죄의 과정의 한 부분이므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신실하게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일 때에 용서를 받기 때문에 속죄 사역은 십자가 이후에도 계속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148.5)
 범죄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한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레 4:31, 35). 하지만 그것이 속죄 과정의 끝이 아니었다. 속죄는 용서를 뛰어넘는다. 대속죄일에는 이 속죄의 더욱 심오한 국면이 나타났다. 이날에 이미 자신의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죄로부터 성소를 정결케함(레 16:16, 33-34)을 통해 그들의 모든 죄에서 “정결케”(레 16:30) 되었다. (149.1)
 이스라엘 백성은 용서받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미 용서 받은 사람이 대속죄일에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일을 하지 않으므로 속죄의 정결하게 하는 국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처벌하실 것이었다(레 23:29~30) (149.2)
 대속죄일이 그러한 이름(레 23:27~28)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날이 속죄의 국면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후에 살펴보겠지만 대속죄일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있을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국면을 예표하고 있다. 특별히 정해진 대속죄일에 희생제물의 피가 성소를 정결케 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뒤에 특별히 정해진 속죄의 때에 정결함을 제공한다. (149.3)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제사를 통해 제의적 부정함을 정결케 하는 것은 “속죄(atonement)”라고 불리웠다. 예를 들어 레위기는 방금 아이를 출산한 여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 12:8). 가령 피부에 질병(현대의 문둥병과는 다른 질병임, 레 14)에서 나은 사람의 경우처럼 이러한 종류의 속죄는 몇몇의 단계를 거쳐야 했다. 예수께서 단계적으로 소경된 사람을 고치신 방법과 비교해보면(막 8:22~25) 아마도 예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것의 위대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49.4)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부정함을 위한 속죄제는 죽음의 운명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의 죄된 행위에서 뿐만이 아닌 우리의 죄된 상태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것을 나타냈다. 속죄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제의적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것은 속죄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레 12:7~8) 죽음의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성취되고 있는 속죄로 간주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 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시고 오랜 후에 그분의 재림 때에 우리가 영생을 받을 때까지 완결되지 않을 것이다(고전 15:51~54). (150.1)
 속죄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그리스도의 속죄와 희생를 축소시키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하고 계신일을 더 중요하게 만든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속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큼을 보여준다! 모든 속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부터 흘러나온다. (150.2)
 하나님은 우리와 그분 자신을 다시 연합시키고 계신다. 이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일이다. “게임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은행에 “돈”을 예치해 놓으셨다. 그분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수표”를 써 주실 준비가 되어있다. (150.3)
 우리에겐 구원을 받지 못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자. 그분을 우리의 책임자로 모시자. 그분께서 우리들을 하늘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그 길에는 장애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고전 15:57). (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