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지만 형벌은 죄에서 비롯된다. 넷째 쇼파르는 일식(日)을 예고했었다. 이제 태양은 맹렬하게 불타오른다. 사람들은 그들이 생명의 근원이라며 숭배하던 바로 그 신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당한다. (202.6)
 다섯째 잔은 문제의 핵심인 짐승의 보좌를 공격한다(계 16:10). 그 결과로 오는 재앙은 다섯 째 쇼파르를 연상시킨다. 흑암이 그 장면을 덮는다. 다섯째 쇼파르에서 그 흑암은 프랑스 혁명의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동반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의 상징인 트홈, 즉 무저갱으로부터 왔다(계 9:1, 2). 그때에는 흑암이 영역의 3분의 1만 덮었다(계 8:12). 이제 흑암은 수의(壽衣) 처럼 온 나라를 덮는다. 그때에는 반(反)종교 세력이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였다. 지금은 하 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이 종교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다니엘를 인용하자면, 이제 북방이 남방을 제압한 것이다(단 11:43).8 바벨은 원래 그의 대적 애굽의 특징이었던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사상 위에 자신의 최고 주권을 확립한다. (202.7)
 여기서도 심판은 죄에 비례한다. 사람들이 짐승과 그의 흑암의 보좌를 경배하였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그 동일한 흑암의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이 신봉하던 죽음의 종교의 희생자가 된다. (203.1)
 그 재앙은 애굽의 장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맹렬한 개입에 앞서 내린 아홉째 재앙과 흡사하다. 기원전 1세기의 외경 작품인 소위 솔로몬의 지혜서에는 우주적인 차원에서 내리는 흑암의 재앙에 대한 대목이 있다. 죽은 자들의 거처로부터 올라오는 흑암은 최후의 형벌을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것을 포괄하고 마무리 짓는다.9 (203.2)
 마찬가지로 다섯째 잔도 그에 앞서 일어난 모든 저주들을 포함한다. 헌데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바다는 피로 변했으며, 사람들은 계속 흑암 속에서 더듬거린다. 고통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증오도 더 커졌다. 우상 숭배(계 16:2)는 백성으로 하여금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9절) 훼방하도록 하고 마침내는 “하늘의 하나님”(11절)을 훼방하게 한다. (203.3)
 게다가 백성은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이 자기들에게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바꾸는 대신에 더 깊은 오류로 달려 들어가고, 돌아서서 그들이 인정했어야 할 분을 거칠게 대항한다. 한때는 종교적으로 혼동하여 그랬으나 이제는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게 된다. 그들의 행위는 애굽의 바로와 유사하다. 주님의 존재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를 보면서도, 그는 너무나 교만해서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분을 부정하였다. 그 후로 계속 갈등은 불가피하였다. (203.4)
 아마겟돈의 국면
 여섯째 잔은 여섯째 쇼파르에서 그랬던 것처럼 유브라데 강에 영향을 미친다(12절: 참조 계 9:14).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기 위해서 강물이 마른다(계 16:12). 성경의 전승은 유브라데 강이 마른 사건을 고레스가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한 것과 관련짓는다. “깊음에 대하여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고레스에 대하여는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사 44:27, 28: 참조 렘 50:38).

  (204.1)
 역사가 헤로도토스(기원전 484~425)는 그 바사 왕의 전략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레스는] 그의 군대를 강물이 도성으로 들어가는 지점에 배치하였고, 또 일부는 강이 도시로부터 나오는 성 뒤쪽에 두었다. 그리고 그의 부하들에게 그들이 볼 때 걸어서 건널 만하면 유브라데 강바닥을 따라서 성으로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그들을 배치하고 이 명령을 내린 후에 그 자신은 자기 군대에서 싸울 수 없는 자들을 데리고 행진하여 떠났다. 그가 호수에 도착 했을 때 고레스는 바벨론 왕후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강물을 처리하였다. 그는 호수로 들어가는 수로를 통하여 강물을 빼냈는데, 그것은 늪이었다. 그는 원래 강이었던 곳이 걸어서 건널수 있게 될 만큼 물을 빼냈다. 이렇게 되자 이 목적을 위하여 배치되어 있던 페르시아 군인들이 유브라데 강을 따라서 바벨론으로 들어갔다. 물은 이제 어른의 정강이 중간 정도까지 올 만큼 빠져 있었다.”10 (204.2)
 “동방에서 오는 왕들”(계 16:12)에 대한 이 언급은 고레스를 가리키는데, 그의 도래에 대한 예언은 다가오는 구원의 통로에 대한 예언으로서 이스라엘의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었다. “내가 의로 기[고레스]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나의 사로잡힌 자들을 값이나 갚음 없이 놓으리라”(사 45:13).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그가]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였느니라]”(사 41:2; 참조 25절). (205.1)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최고로 중요한 사건이다. 다니엘는 그 책 전체의 구조를 그 사건을 위주로 한 틀에 맞추었다(단 1:21; 6:28; 10:1).11 히브리 성경은 의미심장하게도 고레스에 관한 언급으로 끝난다(왕하 36:22, 23). 그가 바벨론을 정복함으로써 히브리 포로들이 해방되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게 허락한 것도 그의 조서였다. 성경은 그들이 유수(幽囚)로부터 돌아온 것을 새로운 창조로 본다. 고레스를 언급하기 직전에, 이사야는 창조의 행위를 상기시킨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4~28; 참조 45:18; 43:15). (205.2)
 고레스와 바벨론 유수로부터 귀환한 것에 대한 기억에 근거하고, 새 예루살렘의 건축을 전망하면서, 선지자 요한은 여섯째 잔의 이상을 시작한다. 여기서도 신화적인 바벨론의 멸망과 그에 뒤따르는 전투는 최후의 구원과 새 예루살렘의 창조를 위한 길을 예비한다. (205.3)
 서로 대립하는 두 진영이 있다. 한편에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계 16:12)이 구원하시는 하나님,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군대를 대표한다. 다른 편에는 “온 천하의 임금들”(14절)이 악의 세력, 바벨론을 대표하여 선다.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 특별히 개구리들로 상징된 마귀의 세력들 이 후자의 진영에 모인다. (205.4)
 여섯째 잔은 애굽에 내린 둘째 재앙을 연상시킨다(출 8장). 개구리는 애굽에서 다산(多産)의 신(히키트[Hiqit])이었다. 재앙이 내리는 동안 그들은 침실이나 침대 등의 가장 내밀(內密)한 장소들에 침입하였다(3절).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심판의 공교로운 면을 볼 수 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이 생식에 장애가 되었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에 열중하던 마술사들은 그들도 개구리를 만들어 냄으로써 문제를 가중시키기만 하였다(7절). (206.1)
 1세기의 유대인들은 개구리를 사기꾼이나 악마적인 물의 신령(神靈)들과 관련시켰다.12 계시록은 그들을 “귀신의 영”(계 16:14)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인 세 짐승 의 입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셋은

 (1) 마귀를 대표하는 용(계 12장)과,

 (2) 바벨의 제도를 상징하는 바다 짐승(계 13:1~10)과

 (3) 본 구절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부르는 땅 짐승이다.

 셋 중에 마지막 짐승만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이름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한때 정치적인 권력이었던 이 짐승은 지금 거짓 선지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206.2)
 
 성경의 다른 어느 선지자들보다도 예레 미야 선지자는 거짓 예언에 대한 반대자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거짓 예언의 특징을 지적하기 위하여 셰케르([sheqer], 거짓)라고 하는 키워드를 반 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렘 28:15; 29:31; 37:19; 40:16; 애 2:14). 그는 거짓 선지자를 땅의 제도와 권력을 위해 일하고(렘 5:30, 31; 23:14), 사람들을 기만하고, 영의 감동을 받은 체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렘 5:13: 23:16). (206.3)
 그러므로 그 거짓 선지자는 바벨의 권력을 지지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운동을 벌이는 미국을 상징한다. 그러한 노력들은, 그것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아니면 종교적이든 간에 모두 한 가지 목표를 향하고 있다. 바로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계 13:12). 흥미롭게도, 거기 사용되는 모든 방법들은 과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영역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귀신의 영들”에게 요청하는데, 그들은 이적을 행한다(계 16:14: 참조 13:14). (207.1)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은 점점 예언을 뒷받침해 준다. 오늘날에는 전화 단 한통으로 초자연 적인 현상을 불러내어 접촉한다. 한때는 어두컴컴한 종교의 변방에나 밀려나 있던 이적들을 이제는 주요 교회가 점점 많이 이용하고 권장한다. 동정녀 마리아와 다른 죽은 친척들의 환영)은 경고의 표시일 뿐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이성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수한 출판물들에서까지 머리기사를 차지한다. 계시록에 기록된 성경의 예언들이 점점 더 믿을 만하게 보인다. (207.2)
 개구리들이 비과학적인 권력이든지 또는 그들의 근원에 암시된 것처럼(그들은 세 짐승의 입에서 나온다) 정치적 수사적(修的)인 속임수이든지 간에, 그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오시는 하나님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온 천하 임금들”(계 16:14)을 미혹하여 모으는 것이다. (2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