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2 ►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27.2)
 그 순간 문둥이에게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썩어 진물나던 살이 갑자기 정상인같이 되고, 죽어 오그라들었던 신경이 살아 예민하게 되었으며, 뭉그러졌던 손발이 쭉 펴졌고, 결절(結節)됐던 얼굴이 펴져 해말갛게 됐으며, 썩은 종기들이 말끔히 없어졌고, 거친 비늘 모양의 피부가 건강미가 넘치는 불그스레한 색으로 변했다. 참으로 놀라운 신유의 역사였다. 그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소리쳤다 (27.3)
 “야, 완전히 나았다!” (27.4)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문둥이인 내가 고침을 받다니!” (27.5)
 예수님께서 벅찬 감격에 찬 그에게 말하였다. (27.6)
 “네가 온전하게 됐으니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 (27.7)
 “주여, 감사하나이다. ∙∙∙아, 나는온전하게 됐다.” (27.8)
 기뻐 소리치며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펄쩍펄쩍 뛰다가 주님 앞을 떠나갔다. 얼마나 활기찬 발걸음이었을까!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을 겪은 다음의 감격스런 환희는 보통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말로 황홀했을 것이다. 제사장은 검사를 하고 그가 나은 것을 확인해 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고 기쁨이 충천하여 가정과 사회로 돌아갔다. (27.9)
 그러면 문둥이가 기적의 고침을 받게 된 근본 동인(動因)은 무엇이었는가? 다시 한 번 그가 고침 받은 방법을 잘 정리해 보자. (28.1)
 첫째, 문둥이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제일 큰 이유는 그 당시의 환경과 상식을 초월한 긍정적 믿음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능히 고칠 수 았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 믿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치병인 문둥병을 주님은 능히 고칠수 있다고 믿은 것은 그 당시 환경에서 볼 때 참으로 기이한 믿음이다. 오늘날도 주님은 무슨 병이든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는 그런 긍정적인 믿음이 여전히 신유를 체험케 되는 요인이 된다. (28.2)
 둘째, 문둥이는 마음에 믿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행동에 옮겨 주님께 나아갔다. 믿음을 행사한 것이다. 그 당시에 의사, 제사장, 랍비, 가족들뿐 아니라 주위의 허다한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께 재앙 받은 지로 저주히고 접근조차 하지 말라고 내쫓아 버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며 반드시 자기를 고쳐 줄 것이라 믿고 그분께 나아갔던 것이다. 오늘날도 어떤 병에 결렸든 주님께서 능히 고쳐 주신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그 믿음을 실지로 활용하여 그분께 나아가면 치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 (28.3)
 셋째, 문둥이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세 번째 이유는 갖은 모욕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각오로 예수님만 쳐다보고 행진했기 때문이다. 문둥이가 믿음으로 군중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갈 때에 그를 보고 질색하는 자들이 저주하고 침을 뱉고 돌을 던져 내쫓으려고 했지만 그러나 문둥이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대항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들의 싫어함과 질색함이 예수님을 향한 문둥이의 행진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오늘날도 진정 신유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 자들은 고침 받은 문둥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예수님만 쳐다보고 전진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신앙을 반대하고 욕하는 자들을 거들떠보지도 말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에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28.4)
 넷째, 치유를 받은 네 번째 이유는 자신을 완전히 굴복하여 주님을 신뢰하는 간구를 했기 때문이다. 문둥이는 주님께 꿇어 엎드려 겸손하게 자신을 의탁하며 치병(治病)을 주님의 뜻에 맡겨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대로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한대로 응답되지 않더라도 주님의 뜻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29.1)
 치명적인 문둥병은 죄를 상징한다. 오늘날 교회에 영적 문둥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많은가! 이기심, 탐욕, 교만, 질투의 문둥병에 걸린 영적 환자들 말이다. 이런 영적 불치병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기 때문에 신유를 체험키 위해 모두 성경의 문둥이처럼 예수님께서 능히 고쳐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분에게 나가기로 결심할 뿐 아니라 실지로 주님께 엎드려 자신을 의탁하고 치유를 간구해야 한다. 주님께서 분명히 죄의 문둥병도 능히 없이해 주실 것이다. (29.2)
 나는 오늘 참혹한 문둥이를 배려 깊게 취급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받는다. 그 당시 유대인 율법에 의하면 누구든지 문둥이에게 네 규빗 이상 가까이 가서는 안됐다. 이를 무시하고 가까이 가면 불결죄에 걸린다. 만일 바람이 문둥이가 서 있는 쪽에서 불어온다면 적어도 100규빗은 떨어져 있어야 했다. 유대인들은 문둥이가 집안에 얼굴을 들이밀기만 해도 그 집 대들보까지 더러워진다고 믿었다. 랍비들은 심지어 문둥이가 지나간 거리에서 팔고 있는 달걀까지도 사 먹지 않았다. 그래서 문둥이가 나타났다면 모든 사람들은 욕을 하고 저주를 하며 돌을 던져 내쫓았고 전염될까봐 급히 도망을 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썩어 냄새나고 이곳 저곳 진물나는 문둥이를 불쌍히 여겨 당신의 손을 내밀어 얹으셨다. 아! 얼마나 놀라운 율법을 초월하신 행동인가! 문둥이를 향하신 긍휼과 동정심의 현현이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손을 대고 치유하신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열병에 걸려 고통중에 신음하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만지며 치유하셨고(마 8:15), 소경을보고 민망히 여기어 눈을 만져 치유해 주셨다(마 9:29; 20:34). 또한 칼에 베인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눅 22:51). 신체적 접촉으로 치유의 능력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다(참조: 눅 8:46). (29.3)
 오늘날도 비록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소외를 당한 자라 할지라도 일단 예수님께 나가면 그분은 환영해 주시고 기꺼이 받아 주신다. 마치 문둥이에게 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손을 대시고 용기와 믿음을 주실 것이다. 나는 과거에 종종 “목사님, 나와 같은 사람도 주님께서는 받아 주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지난날 어떠한 환경에서 무엇을 했든지 또는 지금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를 막론하고 일단 주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 주신다. (30.1)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나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에 거절당하여 그냥 돌아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굴복하여 자신을 의탁하며 소원을 아뢰이기만 하면 그분은 결코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주님은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따돌림받는 자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버림받는 자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정신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병들어 버림받았거나 소외된 외로운 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야 하겠다. (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