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3 ►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오, 주여 길을 열어 주옵소서.” (34.6)
 바로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스쳐가는 한 생각이 있었다 (34.7)
 ‘지붕을 뚫어 그 구멍으로 예수님 앞에 내려가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분명히 예수님 앞에 이를 수 있을 거야’ (34.8)
 그렇게 결심한 중풍 병자는 친구들에게 애원하다시피 청했다. (34.9)
 “여보게 친구들, 실망할 필요가 없네. 나를 들것에 실어 지붕으로 운반하여 지붕을 뚫고 줄로 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 주게나.” (34.10)
 이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요구를 들은 친구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감히 남의 집 지붕을 뚫다니! 어쩌면 좋을 지 몰랐다. 그러나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호소하는 환자의 간절한 요구를 친구들은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었다. 환자의 믿음의 집념에 감동한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집 뒤쪽으로 돌아 환자를 실은 들것을 들고 지붕 위에 올라갔다. 아주 조심스럽게 지붕의 기왓장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흙과 나무를 뜯어냈다. 드디어 그 밑에 청중들을 향해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34.11)
 “이제 됐어. 친구를 달아 내리면 예수님이 틀림없이 고쳐 주실 거야” (34.12)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뚫린 구멍으로 환자를 들것에 실은 채 줄로 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다. (35.1)
 “아, 저게 뭔가” (35.2)
 “환자가 아닌가” (35.3)
 “쯧쯧, 얼마나 절실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35.4)
 한창 설교를 하시던 예수님께서 갑자기 설교를 중단하시고 천장에서 내려온 환자를 내려다 보셨다. 아무런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주님은 이 기상천외한 믿음의 발상을 대번에 알아차리셨던 것이다. 신적(神的) 권위를 가지신 그분은 가련한 병자의 간절한 갈망 곧 용서의 보증과 하늘의 화평을 얻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을 파악하셨다. 즉시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으로 사유를 선포하셨다. (35.5)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6). (35.6)
 참으로 자신의 소원의 정곡을 찌르는 선포였다. 그 순간 씻은 듯 육체적 고통이 사라지면서 말할 수 없는 사유의 은총이 밀려와 마치 잔잔한 호수 같은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만족한 기쁨의 상태였다. 용서받은 그는 더 이상의 것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누르며 가만히 누워 평화로운 침묵 속에 자신을 그분께 전적으로 맡겼다. 죄의 용서만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만족히 여기겠다는 자세였다. 주님께서 “소자야” 라고 한 것은 그 당시 손아래 사람을 부르던 매우 부드럽고 따뜻한 호칭(呼稱)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사태의 추이(推移)를 지켜보고 있었다 (35.7)
 그곳에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일거수 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주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했을 때에 찌릿하는 충격을 받았다. 왜나하면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굳게 믿어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 외에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은 유대법에 독신죄(瀆神罪)를 짓는 것으로 돌로 쳐서 사형을 시켜야 할 만한 중죄(重罪)에 해당되었다(레 24:16). 그리하여 그들은 수군수군하였다. (35.8)
 “참람되도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누가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36.1)
 예수님께서 마치 불꽃같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시자 마주친 시선을 피하여 움츠렸다. 과연 예수님께서 사죄권(救罪權)을 가지셨을까? 신학적 문제에 민감한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사죄 선포를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웅성대는 트집쟁이들의 심중(心中)을 다 읽으신 예수님께서 오히려 반문하셨다. (36.2)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36.3)
 물론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가 더 쉽다. 그 말의 성취를 즉시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은 훨씬 더 어려운데 그 말은 즉시 그 장소에서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병의 모든 원인이 죄이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육체적 질병은 결코 나을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다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이 증명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그 트집쟁이들이 알 수 있게 하려고 중풍 병자에게 명했다. (36.4)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2). (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