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중 평일에 짐승 제물의 피가 더러운 것들을 성소 안으로 옮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는 레위기 6:27~29에 나타난 속죄제에 관해 제사장들에게 내린 지시에 나타나 있다 (251.3)
무릇 그 고기에 접촉하는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 빨 것이요.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그 고기는 지극히 거룩하니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을 것이니라.(레 6:27~29)
(251.4)
 희생제물은 “지극히 거룩”했으나 그 피와 살은 마치 부정한 것처럼 취급됐다. 피가 묻은 옷은 반드시 빨아야 했다. 고기를 삶은 토기는 반드시 깨뜨려야 했다. 이 모습은 부정한 짐승과 접촉한 기물을 다루는 법과 유사하다(레 11:32~33). 속죄제는 거룩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이었기에 거룩한 것이었지만 또한 부정한 측면도 있다. 왜일까? 속죄제는 제물을 가지고 온 죄인의 죄와 부정함을 제거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251.5)
 속죄하는 피 그 자체가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인간이나 동물의 피가 노폐물들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그것은 운반 수단이나 운반 물질이었다. 죄와 부정함도 피를 통해서 사람에게서 나와서 제단으로 향하게 된다. 유사하게 목욕물도 그 자체는 깨끗하지만 당신이 지저분해진 몸이 물에 닿으면 물은 당신의 더러움을 가져간다.만약 더러워진 물이 어떤 것에 닿으면 그것은 더러워질 것이다. (252.1)
 제의적 부정에 관한 율법의 전체적인 관점은 부정한 사람 또는 부정한 물건이 성소와 관련된 거룩한 사물들에 접촉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레 7:20; 참고 15:31). 그러나 우리는 속죄제에서 거룩함과 부정함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이 희생제물을 통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속죄하시기 위하여 거룩함과 부정함이 섞이는 것을 용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2.2)
 즉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의 성소에서 자신의 죄와 부정함을 자신으로부터 그분께로 옮겼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가져가셨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졌다. 그 문제는 현재 하나님께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즉 그분의 성소에 있게 된 것이다. (252.3)
 죄를 다루든지 제의적 부정함을 다루든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한 손을 속죄제물의 머리 위에 얹었을 때에 이 행동으로 짐승으로 인해 죄가 성소로 전가되어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었기 때문에 죄를 성소로 전가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52.4)
 분향단 앞에서 일곱 번 피를 뿌리는 자리가 성소에서 피를 정반대로 적용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몇 가지 추가적인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다. (252.5)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성소(=회막)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지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레 16:16 하단) 이 말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지성소 안에서는 대제사장이 피를 속죄소(법궤)에 한 번과 그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린 것을(레 16:14~15) 따랐다는 것을 말해준다.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피를 한 번씩만(그 각각의 뿔들에) 발랐던 대상은 분향단이다(출 30:10). 그러므로 성소에서 뿌림으로 피를 일곱 번 적용시키는 것은 반드시 분향단 앞(동쪽)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253.1)
 레위기 4:6, 17에는 대속죄일 이외의 다른 날에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대속죄일에 행해진 같은 것과 같은 행동이며 같은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연중 드려진 피의 다른 적용들도 대속죄일의 피의 적용 장소와 같았다. 그 장소들은 향단(레4:7, 18; 출 30:10)과 뜰에 있는 번제단(레 4:25, 30, 34; 16:18~19)이었다. 그러므로 연중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예식은 대속죄일과 같이 성소 안에서 즉 “분향단 앞”에서 진행된 예식과 같은 장소에서 행해진 것으로 결론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253.2)
 대속죄일 이외의 날들에 분향단 앞에서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그 위치는 레위기 4:6, 17‘성소 휘장 앞’에서 일곱 번 피를 뿌리는 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레위기 4:6, 17에 나타난 ‘앞에’라는 히브리 표현은 어느 한 지역 안에 있는 장소를 지칭하는데 이것은 또 하나의 구역의 “앞쪽” 이라는 의미다(참고 창 33:18; 레 10:4; 왕하 16:14). 성소의 안쪽 막/휘장 그 자체가 하나의 구역이라고 볼 수 없지만, 휘장이 성소의 내부 폭만큼 가로지르며 뻗어 있음으로 지성소 구역의 경계를 분명히 나타낸다. (253.3)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 4:6, 17에서 성소안 휘장 앞에서 피를 뿌리는 것의 의미는 지성소 구역 앞에 있는 성소 구역에서 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일곱 번 피를 뿌리는 행위는 분향단 앞과 휘장 앞에서 이루어졌다. 분향단이 피를 뿌리는 곳과 휘장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피 뿌림이 휘장 앞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254.1)
 그것은 연중에 계속 더럽힘을 받고 대속죄일에 정결함을 받는 곳이 성소 구역이다. 그러므로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곳은 제단과 휘장 사이의 성소의 경계라기보다는 분향단 앞(동쪽)이 성소 심장부, 중심부임을 이해할 것이다. (254.2)
 이제까지 우리는 성소 안에서의 피의 적용 방향의 역순이 속죄의 두 국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 증거는 대속죄일에 속죄제 동물의 주검을 처리했던 제사장들이 아닌 조력자들에 대한 정결법과 관련해서 발견되어진다. 이 일은 조력자들을 부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만 했다(레 16:28). 그렇다면 조력자(들)은 왜 부정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동물의 주검이 성소로부터 제거된 부정함과 죄를 흡수하는 제의적 “스폰지”(sponges)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54.3)
 연중 평일에 대제사장이나 회중들의 죄를 위한 속죄제의 주검을 처리하는 것은 조력자들을 더럽히지 못했는데 이는 그들에게 정결케 될 것을 요구하지 않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레 4:11~12, 21). 왜 그들이 부정해 지지 않았을까? 이 경우의 동물의 주검이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는 제의적 “스폰지”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죄들은 성소로부터 제거되는 대신 성소 안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254.4)
 연중 희생 제사들은 죄와 부정을 성소로 옮겨가고, 대속죄일의 제사들은 똑같은 죄를 성소 밖으로 옮긴다는 것을 알았다. 속죄의 두 단계 속에서 각 죄들은 희생 제사를 통해 두 번 다루어진다. 이 후에 우리는 이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만 기억하도록 하자. “들어간 것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 (2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