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를 정결케 한 후에 대제사장은 그곳에서 나와 성소 즉 “회막”으로 언급된(레 16:16 하단) 성소를 정결케 하였다. 대제사장을 위한 지시들이 여기에 요약되어 있다. 단순히 그는 지성소에서 행한 것을 성소에서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가? 그는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주 대상인 법궤에 한번 뿌리고 그 앞에 일곱 번뿌림으로써 지성소를 정결하게 했다. (241.5)
 그러므로 그는 성소에서도 주 대상에 한 번 그 대상 앞에 일곱 번에 상당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42.1)
 성소의 중심에 있는 기물은 분향단이었다. 출애굽기 30:10에 의하면 그 피는 일 년에 한 차례 이 단의 뿔들에 발라져야 했다. 분향단에 뿔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그 피를 그 각각의 뿔에 한 차례씩 발랐다. 앞서 지성소의 법궤에 한 차례 피를 뿌렸을 때에 그는 단순히 거룩한 궤의 가장 높은 부분인 궤의 덮개에 피를 뿌린 것이었다. 법궤는 뿔들이 없었고 피 뿌림은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가장 거룩한 기물인 법궤를 만지는 일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242.2)
 대제사장이 지성소의 법궤 앞에 일곱 번 뿌렸던 것처럼 그가 분향단 앞에 일곱 번 뿌림으로써 성소 구역을 정결케 했음이 틀림없다. 그 다음 그는 바깥뜰로 나갔다. 거기서 그는 수송아지와 염소의 섞인 피를 바깥단 [번제단]의 뿔들에 발랐고 피를 일곱 번 뿌렸다(레 16:18~19). 일곱 번 피 뿌림은 제단을 다시 성별하기 위해 그 제단 자체에 직접적으로 뿌려졌다(19절). 왜냐하면 분명히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 및 그들의 부정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 피가 추가적으로 뿌려질 필요가 있었다. (242.3)
 바깥뜰 구역은 바깥 번제단 자체와 성막의 두 칸처럼 가장 거룩한 곳은 아니었기에 대제사장은 바깥 번제단 앞에는 피를 일곱 번 뿌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바깥뜰이 관유로써 성소를 성별할 때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레 8). (242.4)
 성소는 이제 부정과 죄로부터 정결케 되었다. 이 죄들을 회중과 진영으로부터 내보내기 위해서 대제사장은 성소 정결 기간 내내 성소의 바깥뜰에 서 있었던 산 염소를 취하였다. (242.5)
 레위기 16:21~22는 대제사장이 염소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다. (243.1)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1~22).
(243.2)
 성소를 정결케 한 속죄제의 결과로 부정은 사라졌으나 죄는 살아있는 염소에 의해 옮겨지기 위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죄들은 필사(必死)나 사망을 의미하는 제의적인 부정들보다 도말하기가 더 어렵다. 부정과 필사(必死)는 하나님이 정결과 불멸을 주심으로써 한순간에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신체적 상태지만 죄들은 더 많은 죄들을 만들어 내도록 개인의 기억과 회중의 집단적인 기억에 존재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243.3)
 죄는 컴퓨터의 바이러스와 유사하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나에게 경고하기를 Pen Pal Greetings라고 이름이 붙은 이메일을 받는다면 내 모든 소프트웨어와 하드드라이브를 망가뜨릴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라고 했다. 만일 감염된 내 하드드라이브를 교체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여전히 남아서 다시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이다. (243.4)
 하나님은 죄인들이 죄를 영원히 존재하게 하지 않도록 죄인들이 죽는 것을 허락하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과 생명나무로부터 몰아내신 것이다(창 3:22~24). (243.5)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롬 6:23)은 속죄 염소를 광야로 끌고 간 사람이 왜 자신을 정결케 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해준다(레 16:26). 죄를 짊어진 염소를 만짐으로 그 사람은 죽음을 상징하는 제의적 부정에 걸리게 되었다. (244.1)
 살아있는 염소는 아사셀에게 속하였으며 아사셀에게 보내졌다(레 16:8~10). 우리는 “아사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어떤 해석자들은 그것을 광야로 보내지는 염소, 곧 도피하는 염소(escape goat)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244.2)
 우리가 “아사셀”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레위기 16:8은 대속죄일 의식이 시작될 때 제비를 뽑은 결과로서 한 염소는 여호와께 속했고 또 한 염소는 아사셀에게 속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244.3)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여호와께 드리는 희생제물인 여호와를 위한 염소처럼 도살되지 않았다. 아사셀의 염소는 죄를 쓸어가는 제의적인 “청소차”의 역할을 했다. 우리는 아사셀 염소를 “짐을 나르는 염소”(tote-goat)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44.4)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광야에서 놓아졌다는 사실은 그 염소가 거기 광야에 죽게 내버려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염소를 죽이도록 하지 않으셨는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염소를 하나의 희생 제물로 간주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244.5)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처리한 후에 대제사장은 그의 아마포 옷을 벗고 그의 온몸을 다시 물로 씻었다(레 16:24). 왜 대제사장은 두 번이나 목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 (244.6)
 그는 희생제사가 아닌 아사셀 염소를 처리하는 의식을 행함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일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의사가 수술 중간에 쉬었다면 손을 다시 소독을 해야 하는 것처럼 희생 제물을 드리기에 앞서 대제사장은 목욕을 해야 했다. (245.1)
 목욕 후에 대제사장은 에봇과 흉패가 부착된 화려한 예복을 입었다(레 16:23~24). 그런 다음 바깥 제단으로 나가서 하나는 제사장들을 위하여 또 하나는 나머지 백성들을 위하여 양으로 번제를 드렸다.(24절). 이 제물들은 제물을 드리는 같은 사람들—제사장들과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에 별도로 추가되었다. (245.2)
 대제사장이 마지막으로 수행한 의식은 속죄제의 기름을 제단 위에 태우는 것이었다(25절). 이것은 왜 대제사장이 통상적인 손발 씻기 대신에(24절; 참고 출 30:19~21) 그의 온 몸을 두 번 씻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 속죄제들은 먼저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만날 때 드려져야 했기 때문에 바깥 제단에 있어서조차 특별한 희생제사였다. (2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