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죄일에 “불법적인 더럽힘”이 성소로부터 정결하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죄인들도 성소 정결의 은혜을 받았다는 것이다. (260.4)
 그러나 대속죄일 봉사의 은택을 받은 죄인들은 오직 이미 드려진 희생 제사를 통해 이미 용서를 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연중에 그들의 죄를 위해 희생제물을 가지고 오지 않았던 자들은 대속죄일 전에 이미 정죄되었으며 대속죄일의 정결함을 통한 구원에서도 제외되었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죄가 불법적인 더럽힘이었기 때문에 희생 제물을 가져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261.1)
 어떤 사람들은 “불법적인 더럽힘”처럼 모든 죄들이 저질러졌을 때 바로 성소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모든 죄가 이런 방식으로 성소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 연중 희생 제사의 목적은 이미 성소에 도달한 죄들로부터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소는 연중 매일 드려진 제사로 인해 죄들로부터 깨끗해지기 때문에 대속죄일에 성소를 정결하게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매일 드려진 희생 제물들이 죄를 성소 안으로 들여보내고 대속죄일에 죄를 성소 바깥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연중 매일 드려진 제사와 대속죄일이 모두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에만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해진 죄에 대한 희생제사의 처리가 오직 한 단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261.2)
 간략히 서술된 속죄의 한 단계 이론(The one-stage theory)의 더럽힘은 희생 제사를 통하여 대속 받을 수 없는 특별한 경우들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성소의 불법적인 더럽힘과 죄인들을 위한 속죄는 서로 배타적이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성소에 다다른 죄로부터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해 그 당사자가 성소에 속죄 제물을 가지고 나아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속죄제를 드리는 것 자체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61.3)
 가령 당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었는데 동네의 쓰레기 청소하는 봉사로 당신의 범죄가 결코 경감될 수 없는 것과 같다. (262.1)
 용서받은 죄는 범죄한 사람에 의하지 않고 오히려 희생제물을 통해서 성소 안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충분하다. (262.2)
1. 용서받은 죄들을 위한 속죄의 용어는 분명히 두 단계를 지적한다. 연중의 용서(레 4:20, 26, 31, 35)와 대속죄일의 정결케 함이다(16:30).
(262.3)
2. 성경은 연중 속죄제는 사람들을 속죄하거나(레 4:20, 26, 31, 35) 신체적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한다고(레 12:7~8; 15:15; 민 8:21) 말해준다. 속죄제가 제사를 드리는 자의 죄와 부정함을 제거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레위기 4:26은 죄때문에 제사를 드리는 통치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사장이 그의 죄에 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할 터인즉 그가 용서받으리라.” 아이를 낳은 여인이 그녀의 제의적 부정(죄가 아닌)때문에 “번제”와 속죄 제물을 가져왔을 때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레 12:7). 연중 제사가 성소나 거룩한 기명들을 정결케 한다는 증거는 없다.
(262.4)
3. “모든” 용서받은 죄들은 대속죄일에 성소로부터 제거되었다(레 16:16). 만약 대속죄일의 제사 이전에 이미 정결케 되어졌다면 왜 대속죄일에 같은 죄들을 다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262.5)
4.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한 연중 속죄제에 있어 성소 안에서 피를 적용하는 움직임이 성소 안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죄들을 “들여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움직임의 방향은 성소가 정결해졌던 대속죄일의 움직임과 정반대 방향이다.
(262.6)
5. 대제사장이나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 연중 속죄제에 있어 희생제물의 주검을 처분했던 일반 조력자들은 자신을 별도로 정결케 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은 그 짐승들이 대속죄일의 경우처럼 성소에서 죄를 제거해 흡착하는 제의적 “스폰지”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63.1)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용서받고 정결케 되기 위해 그들에게 제공된 희생의 보혈을 받아들이고 간직할 수도 있고, 필요 없는 것으로 내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보혈은 우리에게 낭비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것이다. (2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