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과 기독교 신앙 ―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제 4 부 안식일과 일요일 제 7장 초기 기독교사에 있어서 안식일과 일요일1
 일요일이 “주일”로 호칭된 최초의 기록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2세기 말 경에 남긴 글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보다 좀더 연대가 이른 기록으로는 「베드로의 복음」이라는 정체 불명의 기록이 있을 뿐이다. 또한 클레멘트는 “제칠일은 첫째 날을 준비하기 위해 죄악을 그치고 쉬는 날로 선포되었다”고 말한 최초의 저술가이다. 그렇지만 정작 그는 이러한 명령을 반포한 자가 누구라는 것은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이같은 주장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과 일요일 두 날을 모두 지키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하였다. “주님은 안식일을 지키면서 선을 행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들(성직자들)에게 그 날에 성찬식을 베풀고 빛을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거룩한 빛을 나누어주게 하셨다”6 (395.2)
 클레멘트의 이러한 주장은 교회 역사가인 소크라테스의 진술과도 일치한다. 소크라테스는 클레멘트보다 훨씬 뒤에 남긴 기록에서 주장하기를 “전체 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매주일의 안식일에 성찬식을 거행했지만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의 교회만이 고대의 일부 전통을 빙자하여 이러한 관습을 중지하였다”7고 하였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안식일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일을 중지했다는 말은 그 때까지 알렉산드리아 교회와 로마 교회도 어느 시점까지는 안식일에 성찬식을 거행했다는 말이 되겠다. 그 앞서 한 번도 행하지 않았던 일을 “중단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95.3)
 3세기
 3세기 초 북아프리카 칼타고에서 저술 활동에 종사했던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에 사업 계약을 체결하지 말고 그대신 다른 날에 하라고 권고한 최초의 교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안식일 준수자였다. 그는 기록하기를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의 하나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하였다.8 (396.1)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파에 가담한 후에 일부 비판자들이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는 몬타누스파 사람들의 관습을 비난하였다. 이 때 테르툴리아누스는 반격하기를 “당신들은 가끔 안식일에도 금식하지 않는가. 안식일은 교회의 유월절 기간에 들어 있게 되는 경우 외에는 결코 금식해서는 안 되는 날이 아닌가”9 하였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였다는 증언이 아닐 수 없다. (396.2)
 몬타누스주의자들이 일 년에 두 번씩 마른 음식만 먹는 절기(Xerophagies)를 지키는 것 때문에 비난을 받게 되자 테르툴리아누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는 기간은 얼마나 제한적인가! 우리는 일 년에 마른 음식만 먹는 기간을 두 주일로 국한하였고 그것도 온전한 두 주일이 아니라 안식일과 일요일은 금식일에서 제외되었다.”10 이 주장을 통하여 우리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과 일요일 두 날을 구별하여 지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96.3)
 알렉산드리아 신학교 교장직을 클레멘트로부터 물려받았던 오리게네스(Origen)는 일요일을 안식일보다 우월한 주의 날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도 또한 “모든 성도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약 여러분들이 세상의 모든 세속적인 일을 중지하여 일체의 세상 일에 관여하지 않고 영적인 일로 쉼을 누리고 교회에 모여 거룩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늘의 사물에 대하여 강론하고 생각하며 미래의 소망에 대하여 명상하고 여러분의 눈 앞에 다가오는 심판을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현재의 일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을 소망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 준수이다”라고 하였다.11 (396.4)
 3세기 전체에 걸쳐 일요일 준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계속하여 확장되어 갔으며, 교회의 유월절 기념도 다양하게 이행되었다. (397.1)
 4세기(340년까지)
 4세기가 시작될 무렵 페타우(Pettau)의 감독 빅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가 유대인들과 같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금요일에 금식을 시작하여 안식일까지 계속할 것”을 주장하였다.12 일요일에 대하여 안식일을 차별적으로 격하시키려 한 것이었다. (397.2)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페터(300-311)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기도하는 방식을 강화시켰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의의를 기도의 방식에까지 반영시키려 한 것이다. 스페인의 엘비라(Elvira) 지역 공의회에서는 안식일에 금식하는 행위를 과오로 정죄하였다. 그리고 만약 어떤 교인이 세 일요일을 계속해서 교회 예배에 출석하지 않으면 그가 그런 방식을 바꾸기까지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였다.13 (397.3)
 로마의 감독 실베스터 1세(314-335)는 안식일의 금식을 강화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날들은 페리아이(feriae), 즉 평일이라 부르게 하고 “안식일 후 둘째 날,” “안식일 후 셋째 날” 하는 식으로 평일들을 일컫게 하였으나 일요일에 대해서만 “안식일 후 첫째 날”이라고 부르지 말고 “주일”로 부르도록 하였으며 토요일은 계속해서 교회 명칭에서 “안식일”로 호칭하도록 하였다.14 (398.1)
 한 주일의 첫째 날은 기원전 1세기부터 공적인 달력에서나 사적인 달력에서 다같이 “태양의 날”로 호칭되었다. 솔 인빅투스(무적의 태양) 신앙은 미트라교 신앙을 로마화한 것으로서 아우렐리우스(Aurelius, 270-275) 황제시대부터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로 존중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어릴적 부터 그의 가족 신앙 전통을 따라 무적의 태양신을 신앙하였다. 321년 3월 7일에 그는 최초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일요일 법을 반포하여 재판관들과 도시민들과 상인들에게 “영예로운 태양의 날에 휴식할 것”을 요구하였다.15 (398.2)
 로마 시민 중 휴업하고 휴식해야 하는 이 법의 강제 규정에서 면제된 유일한 계층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농사의 일은 시기를 다투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씨뿌리고 추수하는 일은 허용이 되었다. 같은 해의 7월에 반포한 법령에 의해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에 노예를 해방하는 업무도 허용하였다.16 325년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시에서 한 때 지켰던 관습에 따라” 모든 지역에서 해마다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키도록 한 니케아(Nicea) 공회의의 결정에 순종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는 그 밖에도 연대가 확인되지 않은 세 개의 일요일 법령들을 더 반포하였다. 하나는 모든 그리스도인 군인들에게 일요일 예배의 참석을 허용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교도 군인들에게 일요일에 모여 황제가 작문한 기도문을 암송하게 한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일반인들의 상거래 활동을 위해 일요일에 공공 시장의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었다.17 (398.3)
 콘스탄티누스의 일요일 법령은 훗날, 여러 기독교 국가들의 민간 정부로 하여금 백성들에게 일요일 휴업을 강요하는 법률을 제정케 하는 선례로 작용하게 되었다. 321년에 나온 최초의 두 일요일 법령은 데오도시우의 법전(Theodosian Code, 458)과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Justinian Code, 533)으로 구체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일요일 민법을 이용하여 로마인들의 민간 달력에 7일 주일을 공식적으로 채택할 수 있었다. (399.1)
 니케아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관습을 따라 부활절을 해마다 일요일에 기념해야 한다고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지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말고 마땅히 일어서서 기도하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18 (399.2)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니케아 공의회가 안식일 준수를 반대하거나 금지한 것은 아니었으며 안식일에 금식하도록 장려하지도 않았다. 로마 교회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안식일에 금식하는 습관을 일반화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399.3)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리아 감독으로서 교회사가이면서 콘스탄틴 대제의 전기를 저술한 유세비우스(315-340)는 100-340년의 기간에 이루어진 안식일과 일요일의 역사에 대해 주목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가 제칠일로부터 첫째 날로 안식일을 변경시켰다고 가르친 최초의 교부이기도 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말씀(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수단삼아 안식일의 축제를 ‘태양의’ 빛이 솟아오르는 날로 옮기셨으며 이 전통이 우리에게 전해 내려왔다. 빛의 날인 첫째 날이 우리에게 유익한 주의 날이며 진정한 안식의 형상이다.” (399.4)
 그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약성경의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는 않은 채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주장을 기록했다. “안식일에 행해야 할 의무는 무엇이든지 우리는 이제 이것들을 주의 날(일요일)로 옮겼다. 유대의 안식일보다도 더 영예로운 으뜸이고 첫째가 되는 날에 (이러한 의무들이) 속하게 된 것은 더없이 타당한 것이다.”19 (400.1)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것들을 우리가 옮겼다”는 구절이다. 유세비우스는 말씀(그리스도)이 안식일의 의무들을 주일의 일곱째 날로부터 첫째 날로 옮겼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가 전하고 있는 말의 진실은 그리스도가 유세비우스와 다른 사람들 즉 “안식일 안식을 주의 날(일요일)로 옮기도록 법령을 반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로마 감독 실베스터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이용해서 안식일을 제칠일로부터 일요일로 옮겼다는 것이다. (4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