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V 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중에 거하심 (출애굽기 25-40) 제 11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응징하심 (출애굽기 32-34장)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심
 이 사건은 민감한 교인들과 신학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은 분명히 우리로 하여금 생각해 볼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85.1)
 첫째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벌을 내리시는데, 이스라엘의 죄를 보시고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며 모세로 하여금 그들을 내버려 두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모세와 그의 후손으로 하여금 새로운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들로 하여금 칼을 차고 삼천 명에 이르는 그들의 동료들을 죽일 것을 명하시며 레위 자손이 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들을 축복하신다(32:27-29).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역병으로 치신다(35절). (285.2)
 하나님께서는 노를 더디 하시는 분이시며 결코 벌을 내리지 않으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경절로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또 노하시며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외면상 정당한 행위로 보이는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85.3)
 둘째 문제는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어 뜻을 돌이켰다는 사실이다(14절). 33:5절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셔야 할 지를 모르는 우유부단한 분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아시며, 전지전능하시며 불변하시는 분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의문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도 변하시는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어떻게 아시는가? 또 출애굽기는 단지 모세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런 모든 문제들을 이해해야 하는가? (285.4)
 성경에 나타난 몇 가지 사실로 우리는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0절“나대로 하게 하라”는 말씀은 “내버려 두어 나의 노를 발하게 하라”는 의미보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하여 나로 하여금 슬퍼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는 최종적 결론을 내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어떤 이들은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 전체를 모세를 시험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큰 나라를 이루도록 하시겠다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을 진정으로 돌아 볼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286.1)
 상기의 사실이 모두 또는 부분적으로 틀리지 않을 지라도 필자는 근본적인 해답이 다른 곳에 있다고 믿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떤 다른 방법으로 반응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이제 막 결혼과 같은 엄숙한 언약을 맺었다. 언약의 조건은 분명했다. 우상숭배는 용납되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배도를 허락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셨다(23:31).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배도하는 죄를 짖고 있다. 그들은 결혼 초기에 결혼서약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화를 내는 방법 이외에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반응하실 수 있겠는가? 분노하셨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언약의 관계를 돌아보셨으며 소중히 여기고 계셨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믿을 수 없군”이라는 탄식 외에 어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겠는가? (286.2)
 본문의 서두만 읽고서는 우리가 이야기의 정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종국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언약은 회복된다. 이 언약의 회복은 문제가 야기되었을 때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값싼 회복이 될 수밖에 없다. 용서할 것이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가 될 수 없다. 용서할 것이 많을 것을 용서하는 것은 큰 용서가 될 수 있다. 이 사건 속의 용서는 진실로 값진 용서이다. (286.3)
 죄에 대한 응징 또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범죄에 대한 응징은 백성들을 멸하는 것과(32:10),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치 않는 것이었다. 백성을 멸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이 모르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의도를 듣고 하나님께 중재하여 그 계획을 철회하는데 성공한다. 가나안 여정에 하나님께서 동행치 않겠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깊은 침통에 빠지게 하여 그들의 단장(端裝)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깊은 시름에 빠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까지 만들어 가며 그것을 예방하고자 했다. 이곳까지 그들을 인도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처음으로 슬픔을 보였다. (286.4)
 그들은 이 시점에서 세 가지 실질적 죄의 응징을 받게 된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어 마셔야 했고(20절),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하고(28절), 역병으로 고통받게 되었다(35절). 죄에 대한 이 세 가지 응징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징벌하셨다. 오직 마지막 응징만을 하나님께서 돌이키시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시겠다는 것이었다. (287.1)
 이스라엘은 마땅히 죄의 응징을 받아야 했다. 이 응징들은 우리가 공부한 율법에 드러나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 오라”라고 외쳤다.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계속하여 경고가 주어졌고 최후의 기회도 주어졌다. 죄의 응징은 정당했고 필요했다. 아무도 죄에 대한 응징이 있기 전에 심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 심각한 죄에 대한 아무 처벌이 없다면 통치는 불가능한 것이다. (287.2)
 하지만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했을 때 출애굽기 33:1-5의 경우와 같이 심판의 경고는 철회될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죄에 대한 응징과 심판은 정의와 통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회개와 변화를 위해서도 필요한데 본 장에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287.3)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문제에 대하여 토론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모습은 이 성경절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두 성경절이 있다면 예레미야 18:7-1026:3, 9이다. (287.4)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허락지 않으시는데 그것은 그분이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성경의 번역서들이 심판과 처벌을 의미하는 “악(evil)”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악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실지를 아시는 분이시지만, 죄인을 처리할 때는 마음에 번민하신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악인을 용서할 명분을 찾으신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하여는 다음에 자세히 논의하기로 하자. (288.1)
 이러한 모든 사실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신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근본적 원칙들을 철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때때로 죄인의 변화를 위해 협상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일은 당신과 교통하고 있는 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데 모세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총애하는 자였다. 모세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분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관계를 매우 소중히 여기시는 분으로 그들을 다시 생각하셨다. 당신과 교통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응하시어 이스라엘을 진멸하고자 하신 그분의 결정을 철회하신다. (288.2)
 모세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정을 철회코자 중재에 나선다. 그 후에도 모세는 계속하여 용서의 중재에 나선다(32:30-34; 34:9). 후자에는 다소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모세의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본 장의 성경본문과 구약의 많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미래를 고려하시어 마음을 열고 계심을 보여준다. 얼마나 귀한 복음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권세와 존엄을 허락하셨다. (288.3)
 성경의 이 기사는 우리로 하여금 중보의 기도를 생각하게끔 한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는 중보의 기도를 우리는 다른 이들을 위하여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요청하는 것을 듣고 응답하시는 한 그 곳에는 늘 희망이 있다. (288.4)
 모세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하나님이 응징하시고자 하실 때 그것을 최후의 결정으로 생각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백성의 범죄에 아무 변명 없이 모세는 담대히 하나님께 그의 합리적인 변론을 들고 나아갔다. 그는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여 세 가지 명령어로 끝을 맺는다. 32:11-14을 주의 깊게 읽은 후에 모세의 중재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주목해 보자. (288.5)
 1.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이 질문은 이성에 호소하는 질문이었다. 하나님이 이제 막 구원한 백성을 멸하시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모세는 실로 논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질문하며 그 결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289.1)
 2. 애굽인들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겠습니까? 이 질문은 하나님의 명예와 사명에 호소하는 질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 역시 믿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이스라엘을 진멸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애굽 모두에게 이롭지 못한 것이었다. (2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