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양한 비교는 성경의 저자가 어느 정도로 마음속에 그 두 여자를 비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신부와 마찬가지고 그 음녀도 혼인의 은유와 관계가 있다. 신부가 혼인날에 지르는 기쁨의 탄성까지도(계 19:7, 9) 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哀歌)들을(계 18:10, 11, 16, 19, 22) 반향(反響)한다. 이제 이 기쁨은 요한이 있는 땅의 장면에까지 밀려들어온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계 19:9). (233.4)
 기쁨은 전염(傳染)된다. 그것은 나누어야 한다. 지복(至福)의 선언은 우리 모두가 그 기쁨에 참여하라고 초청한다. (233.5)
 그 말들을 듣고 나서 요한은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한다(10절). 선지자는 그 순간의 감정에 도취된 것 같다. “그리하지 말”라고 천사는 그를 책망한다. “나는 너와 ∙∙∙ 같이 된 종”이라고 하면서 그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10절)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덧붙인다. (234.1)
 그의 마지막 말은 수수께끼 같다. 우리는 그 말을 책의 결론부에 있는 비슷한 문맥에서 다시 발견한다(계 22:8, 9). 거기서도 지복이 선언되면서 그에 감격한 선지자는 엎드려 경배하려고 한다. 또 그때에도 선지자는 그의 “함께 된 종”에게 책망을 듣는다. 두 구절 사이에 보이는 평행은 그 생소한 표현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34.2)
▶ 계시록 19:10 ▶ 계시록 22:8, 9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내가]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경배하려 하니 엎드렸더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저가 내게 말하기를
“그리하지 말고” “그리 하지 말고”
나는 너와 예수의 증거를 받은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나님께 경배하라
(234.3)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들]”“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상응한다. 달리 말하자면, “예수의 증거”“이 책,” 즉 계시록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예수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말은 계시록의 기별을 선포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우주의 최종적인 구원에 관한 예언을 크게 알린다는 뜻이다. “예수의 증거”는 예수님 자신으로 부터 비롯된다(그리스어의 주격적 소유격[主格的 所有格]; 참조 계 1:1, 2). 이 구절에서는 또한 그 증거가 “대언(즉 예언—역자 주)의 영”, 다시 말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감(inspiration)이라고 밝힌다.8 요한계시록 19장 10절“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확인한다. 예수의 증거는 그러므로 윤리나 전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영감(靈感)을 의미한다. (234.4)
 또 다른 구절에서 계시록은 예수의 증거를 계명을 순종하는 것과 연관시킨다(계 12:17).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곧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서 사는 것은 예언을 확인하는 것이다. (235.1)
 “예수의 증거”는 그러면 예수에 관한 증거이기도 하다. 도덕적인 삶은 대언의 영, 즉 하나님의 영감의 표징이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실제로 우리의 삶과 실존에 하나님의 원칙들을 구현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대언의 영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성경은 여기서 예언을 구실삼아 윤리를 희생시키는 광신주의나 다른 종교적인 극단을 비난한다. (235.2)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9 계시록이 “예수의 증거”“대언의 영”“여자의 남은 자손”과 연관시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계 12:17). 하나님의 강림을 전하는 마지막 증인들은 그들의 신실함과 의로움 뿐만 아니라, 역사의 마지막 격동기 동안에 그들을 인도해 주는 예언에 대한 그들의 경각심을 보여 준다. (235.3)
 하늘의 승리
 그 다음 이상은 요한이 경배하기 위하여 엎드려 있는 동안 그에게 임한다(계 19:10). 천사 뒤편으로 요한은 하늘이 “열린 것”(11절)을 본다. 아직까지는 음성이나 천사들을 위해서만 하늘이 열렸었다. 앞에서는 문이 열렸거나(계 4:1), 성전이 열렸다(계 11:19; 15:5). 이번에는 하늘 전체가 활짝 열린다. 하늘나라의 무한함을 이상이 보여 줄 때 계시는 완결된다. (235.4)
 지평선을 가로질러 백마(白馬) 한 마리가 나타나서 그의 마지막 전쟁터로 달려간다. 하늘의 승리들을 보여 주는 이상(異像)은 일곱 인 이상의 구조를 따른다. (235.5)
▶ 인 ▶ 승리
1. 흰 말, 면류관, 승리(계 6:2) 1. 백마(白馬), 면류관, 승리 (계 19:11~13)
2. 피[血]의 말, 전쟁, 칼 (계 6:3, 4) 2. 군대, 피의 학살, 전쟁, 칼 (계 19:14~16, 19~21a)
3. 영적 기근 (계 6:5, 6) 3. 사람을 잡아먹는 잔치 (계 19:17, 18; 참조 21b)
4. 사망과 음부 (계 6:7, 8) 4. 무저갱 (계 20:1~3)
5. 영혼들, 증거로 인하여 죽임 당하고 기다림 (계 6:9~11) 5. 영혼들, 증거로 인하여 목 베임 당하고, 부활함 (계 20:4~6)
6. 아마겟돈 전투 (계 6:12~17) 6. 곡과 마곡의 싸움 (계 20:7~10)
7. 하늘이 비어 있고 고요함, 파루시아 (계 8:1) 7. 크고 흰 보좌, 땅과 하늘은 간 데 없음 (계 20:11~15)
(236.1)
 백마
 백마는 우리를 곧바로 일곱 인의 역사 전개 장면으로 데려간다. 일곱 인에서는 흰 말이 교회의 승리에 찬 시작을 보여 주었으며(계 6:2), 역사의 첫 장면에만 해당되었다. 이제 백마는 승리한 하늘 군대가 돌아오는 것을 상징하고 역사 전체를 묘사한다. 그렇게 마지막 백마는 첫 흰 말이 시작해 놓은 것을 이어받아서 완결한다.

  (236.2)
 일곱 인의 주기에서는 아무 무기도 갖추지 않은 평화의 기사(騎士)가 흰 말에 올라타 있었다. 이제 그 말은 열방에 칼을 휘둘러 피를 쏟아내는 피에 목마른 전사를 태우고 있다(계 19:13, 15). (236.3)
 첫 번째 기사는 단순한 월계관(月桂冠)23)을 쓰고 있었는데(계 6:2) 마지막 기사는 많은 면류관을 쓰고 있다(계 19:12). 월계수는 스포츠 경기에서와 같은 사소한 승리를 표시하지만, 많은 면류관은 영구적인 왕권을 표현한다. 계시록은 첫 번째 기사가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는 그냥 그림자일 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용모를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책은 그의 머리와 눈(12절), 그의 입(15절) 그리고 그의 다리와 옷을(16절) 뚜렷하게 묘사한다.

23) 계 6:2의 면류관(stephanos)은 경기의 승리자들이 쓰는 월계수 가지로 만든 관을 가리킨다(역자 주).
(236.4)
 그에게는 네 가지 이름이 있어서, 성육신(成肉身)하신 하나님의 친밀감과 그분의 장엄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첫째 이름인 충신(忠信)과 진실(11절)은 하나님의 임재의 확실함을 단정한다. 그분의 오심은 확실하다.10 “자기 밖에는 아는 자가 없”는(12절) 둘째 이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거리감과 그분의 타자성(他者性, otherness)을 표현한다. 셋째 이름, “하나님의 말씀”(13절)은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육신 안에 나타내셨던 것과 그분이 자신을 그분의 백성의 말과 행동 안에 드러내셨던 것을 확인한다. 그분은 역사와 실존 속에 오셨던 인격적인 하나님 이시다. (238.1)
 그리고 넷째 이름인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16절)는 온 우주의 주재(主宰)이신 분의 주권을 표현한다. 그것은 또한 어린양, 곧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이기도 하다. (2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