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스타워즈(요한계시록 19 ~ 20장)
 숙코트 전(前, Pre—Sukkot)
 다시 한 번 경배의 장면을 위하여 이상(異像)의 진행이 정지된다. 이 도입부는 하늘의 보좌, 24장로, 네 생물 그리고 어린양이 등장하는 일곱 인의 도입부를 반향(反響)한다(계 19:1~10). 그러나 이번에는 계시록이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이 누구인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계 19:4)이라고 분명하게 확인을 해 준다. 이 단락은 계시록에 나오는 의례(儀禮)장면 중 마지막 것이다.

  (229.1)
 이 책에서 처음으로 성전과 그 안에 있는 기물(器物)을 언급하지 않는 다. 성전에서 수행하는 모든 속죄의 예식이 완료되었고, 성전에는 더 이상 “존재의 이유”(raison ďêtre)가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심판은 그 성벽 바깥에서 계속된다. 킵푸르 의례에서는 염소 한 마리를 따로 두는데(아사셀을 위하여), 희생으로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를 지워 광야로 쫓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레 16:10, 20~26). (230.1)
 킵푸르가 지나면 백성은 그들의 죄로부터 해방되었다. 예언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기에는 희망의 교훈이 들어 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를 그것으로부터 해방시키기를 바라신다. 아사셀 의식에서 염소로 상징된 마귀는 진영에서 쫓겨나 죽음을 당하게 된다. (230.2)
 이제부터는 모두가 찬양일색이다. 유대의 전통에 따르면 킵푸르에 이어지는 날들은 기쁜 날들이다. 킵푸르 뒤에 오는 명절인 숙코트(초막절)은 제만 심하테이누(zeman simhatenou), 즉 “희락의 시간”이라고도 불린다. 초막(숙코트)을 짓는 데 바친 기간에 백성은 금식해서는 안 되었다. (230.3)
 우리는 본 구절에 악의 멸망을 경축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 새 삶을 고대하는 기쁨이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본다. 바벨론은 무너졌고, 새 예루살렘이 기다린다. 음녀는 죽었고, 거리를 통하여 승리에 찬 신부가 들어온다. 하늘은 “할렐루야”를 다섯 번 반복하며(계 19:1, 3, 4, 5, 6), 크게 울린다.1 (230.4)
 영어의 “할렐루야”(hallelujah)는 히브리어 표현 할를루 야(halelu Yah)를 서툴게 음역(音譯)한 것으로서, “야를 찬송하라”(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또는 야훼를 줄인 말임)는 의미이다. 그 표현의 유래는 시편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시편은 히브리어로 트힐림(시편, 할를루와 동일한 어근에서 왔음)이라고 부른다. 할렐루야라는 말의 중요성은 할를루가 파생된 동사 힐렐과 관계된 낱말들에 내포되어 있다. (230.5)
“노래하다”(시 146:2; 149:1) “경외하다”(시 22:23)
“선포하다”(시 22:22) “송축하다”(시 109:30; 115:18; 145:2)
“감사하다”(시 35:18) “기쁨”(렘 31:7)
(231.1)
 힐렐이라는 말에는 이 모든 의미가 다 들어 있다. 할렐루야는 우러나오는 기쁨의 외침이며 마음속의 깊은 묵상이다. 이 찬송의 말은 이제 과거로부터 미래로 울려 퍼진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나(시 104) 구주 하나님(시 105: 106; 135) 뿐 아니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한 하나님께 찬송한다(시 106:1; 107:1; 118:1, 2, 3, 4 등). (231.2)
 시편 104편에는 할를루 야라는 말이 마지막 절에 가서야 나타나는데, 거기서 그 말은 악인의 전멸 직후에 따라나온다.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지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시 104:35). 고대의 랍비들도 그 점을 흥미롭게 주목하였다. (231.3)
 숙코트의 의례에서 할렐 시편(시 111~118편)이 주요 본문이었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그 시편들을 명절의 제8일에 암송하였다.2 사람들이 그 시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전승에 따라 각각 다르다. 어떤 공동체들은 그 시들을 교창(唱)한다. 다른 사람들, 예컨대 예멘파(Yemenites) 유대인들은 매 절 사이에 청중들에게 할렐루야를 넣게 한다. 이제는 우리가 계시록에서 부르는 할렐루야를 듣는다. 그것은 성전의 찬양대가 부르는 화답(和答)의 찬송 같다.3 그런 식으로 할렐루야는 독창자에게 응대하는 청중의 레스폰사(responsa)22)였다. 할를루는 복수(複數) 명령형으로서 무리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격려한다.

22) 라틴어로 “대답들”을 뜻하는 말, 법률이나 종교적 질문에 대한 학자들을 답변을 가리키는 말로서, 고대 로마, 천주교, 유대교, 이슬람 등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역자 주).
(231.4)
 다수의 음성이 요한계시록 19장의 할렐루야를 노래한다.

  (232.1)
 첫째로 우리는 “허다한 무리”(계 19:1, 6)의 소리를 듣는데, 앞에서는 그들이 144,000이라고 하였다(계 17:4, 9).

 둘째로, 우리는 천하 만물을 대표하는 24장로와 네 생물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계 19:4).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5절). (232.2)
 무리가 외치는 처음 두 번의 할렐루야는 과거의 사건들과 관계가 있다. (232.3)
 첫 할렐루야는 음녀의 죽음을 경축한다(2절). 둘째 할렐루야는 그녀의 최종적인 멸망을 알리며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것을(3절) 기뻐한다.4 이 이상은 죄악과 사망의 최종적인 멸망을 내다본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 영원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세세토록”이라는 표현은 나중에 사탄의 죽음에 적용되며, 그것은 아사셀 의식에 묘사되어 있다(레 16:10, 21, 26). (232.4)
 하늘의 존재들(24장로와 네 생물)이 그 다음 두 할렐루야로 하나님 자신을 향하여 찬송한다. 셋째 할렐루야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계 19:4), 곧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표현한다. 넷째 할렐루야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나타내는데(5절), 그것이 “그분의 종들”(참조 계 1:1)의 특징이다. (232.5)
 다섯째이자 마지막 할렐루야는 가장 소리가 크다. 선지자는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계 19:6) 소리를 듣는다. 이 할렐루야는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고대한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6, 7절). (233.1)
 음녀의 죽음과 신부의 결혼을 경축하면서 혼인의 은유가 재등장한다. 무리는 이제 이스라엘을 어린양의 정당한 아내로 선포한다. 본 구절은 하나님의 “아내가 예비하였다”(7절)고 말한다. 구원은 그러므로 단순히 수동적이기만 한 경험이 아니다. 그 노정(路程)의 매 발걸음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응답을 기다리신다. 혼인날에 신부는 신랑을 위하여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목욕을 하고, 향수를 바르고, 보석으로 단장한다.5 그 모든 과정에는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녀에게 베일을 씌운 후에는 오직 그 신랑만이 신방에 들어가 그 베일을 벗길 수 있다.6 그들은 신부의 허리에 그녀의 연인만 풀 수 있는 띠를 묶는다.7 (233.2)
 시중드는 사람은 그녀가 입을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준다(계 19:8). 그 예복의 종류 뿐 아니라 그녀의 벗은 몸에 그 옷을 입히는 행동까지, 성경은 은혜로, 위로부터 오는 선물로 제공한다. “세마포”“성도들의 옳은 행실”(8절)을 상징한다. 계시록은 여기서 그녀의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예복을, 역시 세마포로 되었지만 사치스러운 음녀의 옷과 비교한다(계 18:16). 신부의 단순함과 정숙함이 음녀의 교만과 뻔뻔함에 대조된다.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