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트” 라는 동사의 “멈추다. 중지하다, 쉬다”는 뜻을 자신의 창조 사업을 완성하신 하나님에게 적용할 때(창 2:3. 출 31:17)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창조의 활동을 멈추고 쉬셨다는 개념을 갖게 된다. 하나님 편에서의 이 멈춤과 쉬심은 병인학(病因學)적인 의미로나 또는 하나님이 힘든 활동으로부터 퇴역하셨다(오티오시타스)는 의미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런식의 설명은 이교의 신화에서나 나타나는 것이다. 이 멈춤과 쉬심은 인간과 관련된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창조는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시간은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의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안식일은 이러한 이중 구조의 한 쪽 곧 쉬는 날이다. 하나님은 “피곤치 않으시며 곤비치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사 40:28), 하나님이 피곤해서 제칠일에 일을 멈추고 쉴 필요는 없다. 그에게 일을 멈추고 쉴 필요가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일과 쉼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필요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창 1:26~28) 연속되는 시간을 사용함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모본을 따르도록 교훈을 받았던 것이다(출 31:7; 16:23-26; 20:8-11). (25.1)
 출애굽기 20장에 있는 안식일 계명 역시 하나님이 제칠일에 쉬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창세기 2:3절과 출애굽기 31:17절에서는 “사바트” 란 동사가 사용된 반면 여기서는 “누아흐”(nuah)라는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출 20:11: 신 5:14). 안식일을 명령하고 있는 성경절에서 히브리어 동사 “누아흐”“쉬다, 휴식을 취하다” 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동사는 출애굽기 31:17절에서 하나님이 “평안하였다”(또는 숨을 돌렸다)고 한 동사와 함께 안식일의 용어 중에서도 하나님과 사람을 가장 가깝게 동일시하고 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형상으로 자신의 창조의 면류관으로 창조한 인간에게 쉼의 날을 마련해 주기 위하여 창조 주간의 제칠일에 쉬신 것이다. 창조의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는 세 개의 성경 구절 즉 창세기 2:1-3절과 출애굽기 20:11절과 출애굽기 31:17절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의 날들과 대비되는 안식의 날인 제칠일에 창조의 일을 쉬심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세 성경절들은 하나님의 쉼을 안식일의 제도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처럼 주간의 안식일의 정통성은 창조의 첫 안식일에 근거된 것이다.14 사람은 안식일에 안식함으로써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요 그의 창조주를 만나는 것이다. (25.2)
 창조의 안식일과 안식일의 축복: 창세기 2: 3절은 창조주가 그 전날에 동물들과 사람들에게 복주셨듯이(창 1:22, 28) 안식일에게 복을 주셨다고 주장한다. 안식일의 이 축복은 창조의 안식일과 주간의 안식일을 연결시키고 있는 출애굽기 20: 11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5.3)
 그러면 안식일이 복받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어로 나올 때 “복을 주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물에게 열매맺고 번영하는 능력을 불어넣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과 생물들에게 생명과 행복과 성공을 주는 것을 말한다.”15 하나님의 축복을 제칠일에 적용하여 말한다면 제칠일이 하나님으로 부터 다른 날들이 갖추지 못한 어떤 특별한 축복을 부여받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의 날이 되었다는 뜻이다.16 (26.1)
 하나님은 이 “축복”을 이 안식의 날에게 선물로 주심으로써 제칠일 안식일을 능력으로 충만한 날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날은 결실이 풍부한 날이 되었고 사람의 생명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날이 되었다.17 제칠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사람의 생명을 진작시키며 삶을 풍요롭게 하고 보람있게 하는 능력을 부여받 았다. 그 결과 안식일은 주간의 어느 날과도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 어떤 날도 인간에게 끼칠수 없는 특별한 은혜를 사람에게 끼치는 은혜의 원천이 되었다. (26.2)
 창조의 안식일과 안식일의 거룩함: 창세기 2:3절은 창조주가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다. 창세기 2:3절과 출애굽기 20:11절에서 “거룩하게 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는 “키다스”(gidas, 피엘)이다. 거룩이란 의미의 어근 “qds”에서 파생한 동사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거룩한 상태에 두심으로써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히브리어의 기초적인 의미에서 “거룩한”“거룩함”“분리”이다.18 따라서 창세기 2:3절과 출애굽기 20:11절에 나타난 제칠일 안식일의 거룩함의 뜻은 제칠일이 하나님께서 다른 날들과 구별하신 날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일하는 여섯 날들로부터 제칠일을 분리시키신 것은 인류를 위한 창조주의 선물이었다. 사람이 제칠일을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칠일을 분리시키셨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제칠일은 단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날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날이다. (26.3)
 안식일이 “거룩한 안식일”로 지칭된 것은(출 16:23; 31:14, 15; 35:2; 사 58:13)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여섯 날들로 부터 분리시키시고 그 날에게 거룩함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거룩함은 사람이 그 날을 지켰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식일을 구별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출 20:10; 신 5:14)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출 20:8; 신 5:12). 안식일을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출 31:14)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과 한 짝이다. (26.4)
 모세 오경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활동들에 대한 여러 가지 특별한 지시들이 있다. 출애굽기 16:23절은 안식일에 빵 굽는 일과 음식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여자들이 안식일에 일상의 허드렛 일들로 부터 쉴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한 명령이었다. 출애굽기 34:21절은 밭갈 때와 추수할 때도 안식일에 쉬라고 명령하고 있다. 평상적인 시기에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가 나타나 있다. 출애굽기 35:3절은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고 했으며 민수기 15:32절은 땔 나무도 안식일에 모아 들이지 말라고 하였다. 이러한 특별한 지시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넓은 범위를 실제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떡을 진설하고(레 24:8), 추가로 희생제물을 준비해도(민 28:9)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서 창조주는 일하는 여섯 날들로 부터 제칠일을 분리시키심으로써 안식일을 거룩하게 했으며 이로써 모든 시대의 전체 인류에게 선물을 준비하셨다.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보여주신 본보기(창 2:3)를 규범의 원형으로 따르는 것이며 안식일에 창조주를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인정하고 있으며 창조주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은 “꾸준하게 사람에게 창조주와 창조의 기원과 목표를 상기시키고 있다∙∙∙ 매 안식일은 하나님의 통치아래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속한 자유 즉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부터의 자유를 새롭게 허용하고 있다. 첫 눈에는 안식일이 사람들에게 규제의 조치로 보이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성취의 약속을 새롭게 해주는 날이다.”19 (26.5)
 안식일과 만나
 만나의 선물은 사람들에게 그 보다 더 큰 선물인 안식일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한 경우였다. “안식일”(sabbãt) 이란 명사는 만나의 기적 이야기 속에 포함되어 출애굽기 16:25 절에서 성경 상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이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십계명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분부되기 이전에 이스라엘에 의해 준수되었던 것이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투덜거리면서 광야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고 있다(출 16:1-3), 하나님은 만나의 떡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올 것과 일주일의 첫 5일간은 각각 그 날 분량의 만나를 거둘 것이며 “제6일에는 날마다 거둔 것의 갑절을 거두게 될 것이라”(출 16:5)고 모세에게 알리셨다. (27.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 같은 지시를 따라 “제6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호멜씩 거두니”(출 16:22),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말씀하시기를 ‘내일은 휴식(삽바톤) 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삽바트-코데스)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하셨느니라” 하였다(출 16:23). 다음날인 안식일 아침에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 즉 너희가 오늘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하였다(출 16:25, 26). (27.2)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일부 의심하는 자들이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려고 들에 나갔다(출 16:27). 그러나 그들은 하나도 거두지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꾸짖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하셨다(출 16:28). 그 다음에 그들이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안식일을 받았다는 계시가 왔으며(출 16:29상),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왔다.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출 16:29 하)하였다. 만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러므로 백성이 제칠일에 안식하니라”(출 16:30). (27.3)
 만나 이야기의 교훈적인 성격은 이야기의 전체에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광야의 세대는 제칠일에 쉬는 관습을 배워야 했다(출 16:30).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순종하여 그의 계명(미스보트, miswôt)과 그의 율법(토로트, tôrôt)을 지키는 도리를 배워야 했다. (28.1)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이전에 벌써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내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 계명이 알려져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 16장이 현재형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뜻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진실로 그렇다 해도 그러한 하나님의 율법과 교훈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단지 안식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이 주장되었다. 따라서 안식일은 만나가 내린 신 광야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이미 존재했음이 선포된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이다.20 (28.2)
 만나의 이야기는 안식일 용어와 안식일 신학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이야기에서 성경상 처음으로 “안식일”(삽바트), “휴식” 또는 “안식일 축제”(삽바톤)란 안식일의 명사형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출 16:23). “안식일” 이란 낱말 앞에 형용사 “거룩한”(코테스)란 낱말이 나오고 있다(16:23). 26절에는 처음으로 제칠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안식일 교훈의 일부이다. 제6일이란 말이 세 번 나오고 있으며(5, 22, 29), 제칠일이란 표 현이 네 번 나오고 있다(26, 27, 29, 30). 그리고 네 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안식일” 이란 낱말이 안식일 이념의 우선적인 추가 사항으로 등장하고 있다. (28.3)
 출애굽기 16장에서 안식일에 관하여 강조된 중요한 사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제6일”은 안식일을 예비하는 날이다(5, 22, 29절), 제6일에는 보통날 보다 갑 절의 양식을 거두게 하였으며(5, 22절) 그래서 아무도 제칠일에 자기의 집을 나갈 필요가 없었다(29절).

   (2) 안식일은 제6일의 다음 날이다.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22, 23절). “제칠일은 안식일이다”(26절).

   (3)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28절).

   (4) 안식일은 “거룩하다”(23절, 참고, 창 2:23; 출 20:11).

   (5) 안식일 은 “안식” 의 날이다(23, 29, 30절). 안식은 일을 중지하고 쉬는 것을 뜻한다. 만나의 이야 기에서 안식은 만나를 거두지 않는 것을 뜻하며 생계를 도모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생존의 유지를 위해 충분히 준비해 주셨다는 것이다. 29절에서 각 사람에게 안식일 에는 자기 집에 머물러 있으라고 지시한 것은 달 모양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광야의 세대로 하여금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려 그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하는 명령이었다. 종교적인 관심(“거룩”)과 인도주의적 관심(“안식”)에서 그러한 지시가 나온 것이다.

   (6) 안식일은 휴식의 날이고 축제의 날(삽바톤)이다. 결코 금식하고 애곡하는 금기의 날이 아니다. 안식일은 “축제의 반지”를 끼고 있다.21 안식일은 아무도 배곯지 않아야 하는 날이다.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 즉” 이스라엘이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25절). 안식일은 하나님의 특별한 날이며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주는 날이다.

   (7)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시험하는 근거이다.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의심과 호기심으로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려고 들로 나갔으나 얻지 못했다(25~27절). 이 때에 이 일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 하느냐”(28절).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표시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순종과 믿음을 검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특별한 삶의 방식을 요구하고 계시다. (28.4)
 출애굽기 16장은 안식일의 기원과 목적과 기능과 의미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을 간직하고 있다. 출애굽기 16장은 시내 산에서 율법이 반포되기 이전과 신 광야에서 안식일이 소개되기 이전에 안식일 제도가 이미 존재하여 알려져 있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29.1)
 안식일과 십계명
 이제는 출애굽기 20장신명기 5장에 소개되고 있는 안식일의 계명으로 주의를 돌려 볼 차례이다. 십계명에 있는 안식일 계명의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십계명 자체에 대한 최근의 연구 동향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십계명에 관한 연구 자체가 안식일 계명의 해석과 의미에 관한 토론에 영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29.2)
 십계명에 대한 근대의 연구 동향: 최근에 이루어진 십계명의 비평적 연구는 구약 성경의 율법 연구를 위해 에이 알트(A. Alt)가 개척한 양식 비판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알트에 의하여 결의론적 율법은 제의적인 배경을 토대로 하여 세속적 공의와 필연적인 율법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란 주장이 전개되었다. 알트의 이같은 주장은 십계명의 형식과 히타이트 국가 조약문들 사이에 유사점들이 있다는 지 멘덴 홀(G. Menden hall)의 주장에 의하여 보완될 때까지 20여년에 걸쳐 이 분야를 독단하였다. 알트의 주장은 수많은 연구성과들에 의해 보완되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에 반대하는 주장도 강력히 제시되었다. 지난 10여년 동안에 필연적인 율법과 결의론적인 율법의 날카로운 대립을 완화시키려는 연구들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씨족의 지혜가 금지율법(禁法)의 원천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