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178년경 이교도 철학자 켈수스(Celsus)1가「진리 담론」(The True Discourse: Αληθης λογος) 라는 제목의 반그리스도교적 저술을 내놓았다. 이 책은 현존치 않으나 포르피리(Porphyry: c. 232-c. 304)의 저서들과 함께 가장 오래 나쁜 영향을 그리스도교회에 끼친 반그리스도교 저술의 하나였다.2 오리게네스는 이 책이 출판된 지 이미 7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논박할 필요를 느끼고 기원 246-248년에「켈수스 반박론」(Contra Celsum)을 집필하였다. 이로써 그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군복무 및 전쟁 문제를 가장 철저히 다룬 교부의 한 사람이 되었다. (62.1)
 오리게네스는 이 앞서 그노스티시즘(Gnosticism)과 마르키오니즘(Marcionism)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전쟁문제를 다룬바 있었다. 이 때 그는 구약성경의 전쟁 기사와 신약의 사랑이 충돌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알레고리(Allegory)의 해석방법을 도입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근본적으로 암흑의 권세와의 싸움이다. 따라서 구약에는 마르키온(Marcion)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전쟁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신약에 소개된 사랑의 하나님을 구약의 하나님과 연결시켰다. 오리게네스는 영적 군대로서의 그리스도 교회를 강조하였다. 구약의 전쟁관련 기사들도 이같은 방식으로 신약과 연결되었다. (63.1)
 다른 반그리스도교적 저술과 마찬가지로 켈수스의「진리담론」도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윤리 및 그 밖의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교양 있는 자유인들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켈수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군복무를 기피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켈수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문제로 그리스도교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최초의 이교 철학자이다. (63.2)
 「켈수스 반박론」의 첫 장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켈수스의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한다. 켈수스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전후가 모순되는 비난을 하고 있다. 앞부분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반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로서는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열망3과 폐쇄적인 예배 습관 및 교회의 많은 회원수를 일단 그리스도교회의 사회 변혁적 의도와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4 그는 풍부한 구약성경의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그리스도교의 모체가 되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국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를 탈출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로마제국에 대하여 동일한 모반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5 이같이 켈수스는 여기에서 그리스도교의 호전성을 문제로 삼았다. (64.1)
 이에 대하여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교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리스도교의 입법자인 그리스도가 살상을 금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켈수스의 호전성 주장을 반박하였다. (64.2)
“우리는 자신들의 적들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할 때 사용했던 검을 부수어 뜨리고 전투에서 사용하던 창을 밭가는 쟁기로 바꾸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자녀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나라들과 맞서 칼을 뽑지 않으며 전쟁을 배우지 않는다.”6
(64.3)
 오리게네스는 위의 책 VII. 26에서 고대 이스라엘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지킬 수 없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수호해야 할 국토와 국가와 조상의 유업과 신전과 재산과 국민의 안녕이 있었다. 그들은 이것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쟁터로 나가기도 했으며 관리가 되어 죄인들을 처형해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국가적 멸망은 신의 섭리이다. 정치적인 국가로 존재하는 한 군사적 보호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65.1)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그같은 국가의 존속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국가적 존재는 그 성전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7 이로써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필수적이었던 조건 즉, 무력으로써 자신들의 국가적 존립을 유지해야했던 구실과 필요성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제거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력으로 복음을 전파하지도 않았으며 고대적인 의미의 국가를 세우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로 로마의 통일제국을 허락하였으며 그리스도교회로 하여금 전쟁의 방해 없이 복음을 확장시킬 수 있게 하였다.8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혈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에만 종사케 하는 방향으로 역사의 진행을 이끌었던 것이다.9 (65.2)
 이리하여 오리게네스에게 있어서 전쟁은 바로 영적 전쟁을 의미했다. 그는 신약성경 에베소서 6장 11-12절디모데후서 2장 4절에 근거하여 자신의 영적 전쟁과 영적 군사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66.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에베소서 6:11, 12).
(66.2)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니”(디모데후서 2:4). (66.3)
 그는 위의 성경절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66.4)
“그러므로 우리는 땅위에 마귀들이 많다는 것과 그 마귀들이 악한 사람들을 괴롭혀 악한 사람들의 악을 징계하는 처벌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능력을 받은 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임을 알고 마귀와 싸우는 자들에게는 마귀들이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다.”10
(66.5)
 오리게네스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을 “군대” 라고 호칭한 마귀들을 정복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리게네스의 전임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오리게네스가 자신의 그리스도인 병사 개념의 기초로 사용한 에베소서 6:11-12의 바로 뒷 구절인 에베소서 6:13-17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군인 정신을 강조하였다는 것은 앞서 클레멘트를 다룰 때 지적한 바이다. 오리게네스는 클레멘트의 전통을 이어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병사”(Milites Christi), “주님의 병영”(Castra Domini)등의 명칭들을 사용하고 있다.11 (67.1)
 오리게네스 시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미 세속화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 병사는 세속화된 그리스도인 대중이 아니라 진리의 적들과 육체의 정욕에 대항하여 싸우는 금욕주의자들이었다. 이로써 그는 금욕주의자와 수도승들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병사들이라는 중세의 개념의 창시자가 되었다.12 그리고 그의 이같은 그리스도 병사 개념은 그의 교회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란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이지 세속화된 신앙대중의 집합체가 아니었다.13 (67.2)
 오리게네스가 전쟁과 군복무 문제를 본격적으로 취급한 부분은 「켈수스 반박론」의 마지막 부분인 제 8권 70, 71절이다. 켈수스가 그의 책 마지막 부분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켈수스는 문제의 글의 앞부분에서는 그리스도교회의 모반 가능성을 고대 이스라엘의 호전성과 연관하여 의심하였으면서도 그 책의 끝 부분에 와서는 그 반대로 그리스도교의 비폭력적 자세를 문제삼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비폭력적인 태도를 공직 기피의 태도와 함께 비공민적 자세로 규탄하고 나섰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윤리가 정치윤리와 만나게 된다. 초기 그리스도교회가 몸담고 있던 사회환경이 신약성경의 종파적 관심사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67.3)
 교회는 이제 기존의 종파적 사색 체계에 계속 머물러 있던가 아니면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새로운 사색 체계를 탐색하던가를 결단 해야하는 분기점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른바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문제의 선두에 등장한 것이었다. 켈수스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당신들(그리스도인들)처럼 행한다면 종국에 가서 이 땅의 정부를 무법자와 난폭한 야만인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하여” 문화와 철학의 종식을 막아낼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된다고 하였다.14 제국을 유지시키는 일에는 아무 것도 공헌하지 않으면서 제국이 제공하는 축복에만 동참한다는 것은 공정한 처신이 아니라는 것이다.15 가혹하게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의 기생충이나 일반이라는 것이다.16 (68.1)
 그리스도교는 이 도전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제국의 신민으로서 제국을 위하여 군대에 들어가 싸울 의무를 가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자원 입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소집 명령에만 복종하여야 하는가? 오리게네스의 대답은 “비록 황제가 요구한다해도 우리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는다”17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전쟁에 불참한다는 켈수스의 비난을 부인하지 않고 수용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군복무에 불참했다는 이중의 증언을 듣고 있는 셈이 된다. 이 증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군복무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무력화한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이 전쟁에 불참한다는 비난을 반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처럼 처신한다면” 제국이 멸망하고 문화가 결단난다는 추리를 논박하고 있는 것이다. (68.2)
 그는 대답하기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처럼 된다면 야만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율법(계명)에 가장 순종적이고 가장 온유한 백성들로 변화될 터이므로 황제가 홀로 외롭게 되어 천하가 무법자의 손에 떨어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 하였다.18 이 인용에서 우리는 “온유한”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부 논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켈수스가 비난하듯이 군복무를 기피해야 했던 진정한 이유가 유혈 행위 같은 도덕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종교상의 문제 곧 우상숭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19 오리게네스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처럼 되는 것”이 다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적이며 온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문맥상 “하나님의 계명에 가장 순종적이란”말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가장 순종적이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69.1)
 오리게네스는 또 로마 국민 모두가 사회의 질서를 존중하는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조국의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면 의인 50명으로 5개 도시의 구원을 보증하신 하나님이 이들의 기도를 응답하여 적군들을 물리치실 것이며 아예 전쟁이 발생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 하였다.20 (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