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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3세기 초에 로마교회의 장로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당시 로마 교회에서 준수되고 있던 교회 의식들과 생활 규범들을 상세히 설명한「사도들의 전통」(ἡ ἀποστολικὴ παρἀδοτι󰐠)을 남겼다. 이 교회법은 근대의 연구에 의해 히폴리투스의 저술이라는 사실과 함께「사도들의 전통」이란 그 본래의 명칭이 확인되기 전까지는「이집트의 교회법」(Constitutiones Ecclesiae Aegypticae)으로 오랫동안 일컬어져 왔다. 연대가 이보다 늦은「히폴리투스의 교회법」(Hippolytean Canons),「주님의 언약」(Testamentum Domini),「사도들의 교회법」(Constitiones Apostolorum)들도 모두「사도들의 전통」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이 근래의 연구로 확인되었다.1 (79.1)
 우선 재구성된「사도들의 전통」의 라틴어 역본 제 6조를 보면 그리스도인이 종사할 수 없는 여러 직업의 종사자들, 예컨대 매춘업자, 검투경기자, 뚜장이, 우상 제조업자, 이교의 지식을 가르치는 자, 마술사, 점성사, 등을 열거한 다음에 군복무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규칙이 제시되고 있다. (80.1)
“하급직에 속한 군인은 아무도 살해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러한 명령을 받는다 해도 그 명령에는 불복해야한다. 그는 또 그같이 명령해서도 안된다. 만약 그(그리스도교 병사)가 이러한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그를 출교해야 한다. 칼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든지 또는 고위의 관복을 입고 있는 시 정부의 관리인 경우에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직책을 포기하게 해야하며 이를 거부한다면 그를 출교해야 한다. 침례 후보자나 또는 교인으로서 군인이 되고자하는 자는 마땅히 출교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경멸했기 때문이다.”2
(80.2)
 위에서 밝혀진 사항을 정리해 본다면

 (1) 군대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장교들은 즉각 군대를 떠나야 했으나 책임이 낮은 하위계급의 사병 복무자들은 조건부로 군복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2) 그 조건은 어떠한 이유와 환경에서도 살해 행위와 군대 서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인 명령에는 불복종이 권고되었다. 이러한 규칙의 위반에 대한 처벌은 출교 처분이었다.

 (3) 침례 후보자나 교인으로서 군에 입대하고자 하는 사람은 출교시켰다.

 (4) 직무상 불가피하게 사람을 체포, 구금, 구타, 처형시켜야 하거나 그러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공직 종사자로서 교인이 되고자 하는 자나 교인이 된 자는 그 직책을 포기해야 했으며 이를 불복할 때는 출교시켰다. (80.3)
 위의 사항들 중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병사에게 군직의 포기를 요구하지 않고 단지 피흘리는 일에 관여치 말것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군직과 그리스도교 윤리의 양립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침례 교인이나 침례 후보자의 지원입대를 출교로써 저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위와 같은 배려는 예외적 배려 이상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81.1)
 교인의 지원 입대를 금지한 이유인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의 성격을 꼭 도덕적인 일로 제한할 이유는 없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에는 우상숭배를 위시하여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을 우상숭배에 제한할 수도 없다. 오히려 앞에서 유혈 행위와 군대의 서약을 함께 금하고 있는 만큼, 히폴리투스는 도덕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에서 교인들에게 군직을 금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점은 히폴리투스가 교인들에게 불가한 것으로 열거한 직업들이 뚜쟁이, 우상 제조, 연극, 이교의 지식을 교수하는 교직, 경기 종사자, 검투사, 우상 숭배의 사제, 군인, 매춘, 역술, 점성 등 주로 부도덕과 우상 숭배적 요소들을 지닌 직종들이란 사실에서 분명해진다.3 (81.2)
 더군다나 라틴어 사본의 기초가 되었던 초기의 유력한 사본들이라 할 수 있는 에티오피아어 역본과 아랍어 역본 등에서는 군대 서약에 관한 언급을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사히드어 역본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헬제란드(Helgeland)는「사도들의 전통」의 군복무 금지 규정이 주로 군대 서약 때문에 제정되었다고 했으나4 그는 오히려 군대 서약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여러 사본들이 군대의 폭력행위를 단언적으로 정죄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사도들의 전통」에 나타난 군복무 반대의 목적이 주로 우상숭배와 군대서약을 피하고자함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칼의 권력(polestan glandii)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군복무를 반대하는 도덕적인 이유를 결코 간과할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81.3)
 히폴리투스의「사도들의 전통」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된「이집트 교회법」(Egyptian Church Order)의 두 개의 다른 역본들과 또「사도들의 전통」과도 관련된 것으로 믿어지는 다른 문서들 즉,「주님의 언약」(Testamentum Domini, 4세기),「히폴리투스의 교회법」(Hippolytean Canons, 5세기),「사도 헌법」(Apstolic Constitution, 4세기 후반)에도 군복무에 관해 거의 유사한 규정을 담고 있다.5 (82.1)
 히폴리투스는 이 밖에 그의「다니엘 주석」(Commentary on Daniel)에서도 군인과 전쟁에 대한 혐오와 그리스도인의 평화적인 기능에 대해 피력하였다. 그는 거목에 관한 느브갓네살 왕의 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다니엘 4장을 주석할 때 그 큰 나무 그늘에 모여든 사나운 짐승들을 왕의 명령 하나로 사람들을 찢어 죽이는 군인들의 상징으로 해석하였다.6 뿐만 아니라 그는 다니엘에 나오는 넷째 짐승과 로마제국을 일치시키고 그 이유를 로마제국의 호전성에서 찾았다.7 동시에 그는 성도들의 기도로 “세계의 평화가 가능케 된다”8고 하였다. (82.2)
 이상과 같이 히폴리투스의 반전쟁적, 반군복무적 주장은 확실하나 그가 칼리스투스(Callistus) 교황을 배척하여 로마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나갔다는 이유로 그의 주장을 교회 외곽집단의 종파적 입장으로 격하시키려는 시각이 있다.9 그러나 히폴리투스가 로마교회와 결별한 것은 칼리투스 교황이 대표하는 새로운 세태 즉, 교회 기강이 해이해지는 완화라고 하는 새로운 경향에 대한 반발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히폴리투스의 가치관은 초기교회의 전통적 경향을 대변한다고 해야할 것이다. (83.1)
 참고
 1. 1960년까지 발견된 [이집트 교회법] 사본들로는 A coptic version in Bohairic (H. Tattan, ed., The Apostolical Constitutions of the Apostles in Coptic with English Translation [London, 1848]); A coptic Version in Sahidic (W. Till and J. Leipolt, eds., Der Koptische Text der Kirchen ordung Hippolyts, Texte und Untersuchungen, 58 [Berlin, 1954]); Arabic version (Perr “Les' 127 Canons des Apotres.”); Etiopian Version (H. Duensing, Der Aethipische Text der Kierchen ordung des Hippolyt [Götingen, 1946]) 등이 있다.

 Cf. R. H. Connolly, The so-called Egyptian Church order and Derived Document (Cambridge Texts and Studies, viii. 4, 1916). “이집트 교회법”이란 명칭은 처음으로 발견된 사본이 Copic본이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런데 1551년에 로마의 Lateran박물관에 있는 Hippotus의 상(像)에서 발견된 Hippolytus의 작품 목록집에 『사도들의 전통』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이집트 교회법』인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그때 이후 『사도들의 전통』이란 명칭이 “이집트 교회법”을 대신하게 되었다. 『사도들의 전통』의 희랍어 사본은 남아있지 않고 6세기의 라틴어 역본을 기초로 하여 Dom Botte가 재구성한 것이 오늘날 통용되어있다. cf. R. H. Conolly. The so-called Egyptian Church Order and Derive Documents (Cambridge Texts and Studies, viii. 4, 1916); The Oxford Dictary of the Christian Church, ed., F. L. Cross (London; Oxford Uni. Press).

 2. Hippolytus, Ibid., xvi. 17. “Miles qui est in potestate non occidet hominem. Si iubetur, non exequetur rem, neque faciet iuramentum, Si autem non vult, reiciatur. Qui habet potestatem gladii, vel magistratus civitatis qui indui tur purpura, vel cesset vel reiciatur. Catechumenus vel fidelis qui volunt fieri milites reiciantur, quia contemserunt deum”

 3. Hippolytus,xvi. 10-12.

 4. John Helgeland, “Church and the Roman Army, AD 173-337,” Church History, Vol. 43, No. 2 (1973), 154.

 5. Ridel. Die Kirchenrechtsquellen des Patriarchats Alexandrien (Leipzig, 1900), 206f. cf. Cadoux, Ibid., 122-123.

 6. Hippolytus, Comentary on Daniel, III. viii. 9.

 7. Hippolytus, Ibid., IV. viii. 7; ix. 2; IV. viii. 7. (νυνὶ δὲ τό νυν κρατούν θηρίον οὐκ ἐστιν ἔν ἔθνος, ἀλλ΄ εκ πασών τών ϒλωσσών καὶ ἐκ παντὸς ϒἐνους ἀνθρώπων συνάϒει ὲαυτῷ καὶ παρασκευάζει δύναμιν είς παράταξιν πολέμου, οἰ πάντες μὲν Ῥωμαίοι καλούμενοι, μὴ ὄντες δὲ πάντες ἐκ μιάς χώρας), ix. 2.(τῷ αυτῷ τρόπω αντιμιμησατο ἡ βασιλεία ἡ νύν ἢτις κρατεί “κατ΄ ἐνερϒειαν τού Σατανά,” ὀμοίως δὲ καὶ αὔτη ἐκ πάντων τών ἐθνών συλλέϒουσα τούς ϒενναιοτάτους καταρτίζει εἰς πόλεμον, ʿΡωμαίους τούτους ἀποκαλούσα).

 8. Hippolytus, Ibid., III. xxiv. 7.

 9. John Helgeland, “Hippolytus,” Christians and the Military, ed. R. J. Daly (Philadelphia, 1985),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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