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3 부 교황 요한 바오로가 독려하는 일요법의 제정
 이러한 종교적인 목적들과 정치적인 목적들의 혼합을 요한 바오로가 일요일의 쉼을 종교적이고도 사회적인 필요로 환기시키는 사목교서의 낭독에서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기록하기를 “주의 날과 시민사회에서 쉬는 날 사이의 연결성은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관점을 넘어 그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104)고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의 공동선에 기초한 일요법의 제정을 촉구하므로, 요한 바오로는 국제 사회로부터 자신이 제안한 협의 사안이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31.6)
 다원화된 사회(Pluralistic Society)
 요한 바오로가 촉구한 일요일 휴식법의 제정을 평가하면서,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문화적, 생태학적, 그리고 종교적인 복지에 대한 자신의 합법적인 관심과, 그러한 법이 토요일이나 또는 주일 중 다른 날에 쉬기로 한 종교적이거나 개인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 소수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것 사이를 구분해야만 한다. (31.7)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민법이 일요일을 성일로 준수하는 자신들의 의무를 존중하기를 촉구하려는 노력”105)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제칠일 안식일을 자신들의 성일로 준수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금요일을 성 일로 준수하는 회교도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의미도 있다. (32.1)
 만일 일요일 준수자들이 자신들의 일요일의 쉼과 예배를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일요일을 합법적인 휴일로 지정해 주기를 기대한다면,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들이 지키는 안식일의 쉼과 예배를 보호하기 위해 토요일을 합법적인 휴일로 지정해 주도록 요구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종교인들과 비 종교인들에게 공정하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각기 다양한 그룹들에게 쉼과 예배를 위한 특정한 날들을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오늘날의 사회-경제적인 구조를 산산조각 낼 것이기 때문이다. (32.2)
 불필요한 일요일 법
 “푸른 법률”(Blue Laws, 역자 주: 18세기에 청교도 식민지에서 사용했던 개인의 공 ∙ 사 생활을 엄격히 규제했던 일요 법안을 말함)로 알려진 일요법들은 미국의 몇몇 주들의 법안에는 여전히 들어 있으며, 그것들은 아직까지도 지난날에 고통을 가져다주었던 불쾌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법들의 실패는 벌써부터 입증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그 법안들 속에 숨겨진 의도가 일요일 준수를 촉진시키기 위한 종교적인 법안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종교적인 행사들이 강요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의회가 종교의 설립을 존중하는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는 미국 헌법 제1조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32.3)
 일요법이 오늘날에 필요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이틀, 또는 삼 일의 긴 주말로 된 짧은 근무 주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식일이나 일요일을 지킬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데, 특별히 고용자가 노동자에게 기꺼이 종교적인 확신을 주지 않을 때이다.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방안은 일요법이나 토요법에서 찾지 말고, 미결로 남아 있는 직장 종교 자유법(Religious Freedom in the Workplace Act)과 같은 그런 법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이 법안은 고용자들이 노무자들에게 종교적인 확신을 마련해 주는데 용기를 주도록 고안된 것으로,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부당한 어려움을 유발시키지 않는다. (32.4)
 일요일 휴식 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교황의 호소는 일요법들이 저조한 교회의 출석으로 인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대부분의 구라파 여러 나라들에서는, 일요법들이 수 년 동안 효력을 발휘해 왔다. 일요일에 대부분의 사업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소개받지 못한 미국 관광객들에게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의 기름 주유소들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 그러나 일요법들이 교인들의 교회 출석을 촉진시켜 왔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서구라파에 있는 교회들의 출석률은 놀랍게도 미국에 있는 교회들보다 낮으며, 기독교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다. 본인이 온 이탈리아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의 95%가 그들의 평생에 단 세 번만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출생 때[hatched], 결혼 때[matched], 그리고 사망 때[dispatched]”이다. (32.5)
 우리 사회의 도덕적인 쇠퇴와 종교적인 쇠퇴는 법이 부족한데서 기인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원칙에 따라 살도록 요구하는 도덕적인 확신의 결여에 기인된다. 교회는 참석률 저조의 위기를 외부적인 법을 제정하므로 해결하려 들지 말고, 대신 교인들 내부의 도덕적인 혁신과 영적인 개혁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33.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찾고 싶어하는 것은 기독교가 가끔 출석하는 문화적인 유산을 가진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곳이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는 구주께서 우리의 생애에서 더 완전하고 자유롭게 역사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세속적인 일을 멈추는 안식일에 특별한 방법으로 표현된다. (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