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혼인 잔치”의 비유(마 22: 1~14)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초청되었다는 말씀을 하셨으며, 왕은 모든 손님들에게 특별한 혼인 예복을 준 다음 그 혼인 예복을 착용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여 손님들을 파티석상으로 안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왕은 혼인 예복을 거절하여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자 그를 밖으로 쫓아내었다. (401.11)
 (3)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서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된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선언되고 있으며, 7, 8절에 보면 신부가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 즉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단장하여 있는 모습이 나온다.(그런데 7장 14절에서는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씻었다고 하였다). (402.1)
 (4) 그리고 이제 우리는 누가복음 12장 35~37절을 검토해야 한다. 이 성경절에서는 예수님이 “혼인 잔치”가 다 파한 후에 이 땅으로 오시고 있다. 뭐 별로 혼동스럽지 않다고 여겨진다면 이 성경절들은 다시 읽고 주인이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 다음에 그가 그의 종들을 자리에 앉게 하고 수종하리라한 사실을 확인하라. 물론 이 때는 아브라함과 또 동서 남북사방에서 모여온 모든 이방인들이 함께 식탁에 앉을 것이다. (402.2)
 우리가 이 성경절들을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다니엘 7장에서는 예수님이 하늘 왕국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늘의 심판정으로 오시는 모습으로(1844년에) 묘사되었으며, 누가복음 19장 11, 12절에서는 예수님이 특별히 그의 무리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왕국을 받게 되지 않고 오히려 “먼 나라”에서 왕위를 받게 될 것이며, 그 후에 지구로 돌아오실 것이라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어린 양의 신부가 그의 왕국의 수도이며 상징인 새예루살렘이라면, 그의 왕위를 받는 일과 그의 신부와 혼인하는 일은 동일한 사건이며 이 일은 재림 이전에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402.3)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와 정결한 처녀 교회와의 혼인을 주선하는 “중매장이”로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5장 25~27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에 대해 말하면서 예수님은 신부인 교회를 “거룩하고 홈이 없이” 정결하게 하려고 죽으셨다고 하였다. (402.4)
 모든 묘사들의 유형들
 이제는 위와 같은 묘사들을 모두 한 자리에 놓고 생각해 보도록 하자. (402.5)
 1. 1844년에 예수님은 왕위를 받기 위하여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로 나아갔다(단 7:9~14). 즉 그는 그 때 신랑으로서 신부와 혼인하기 위하여 갔다(마 25:1~13). 등불에 기름을 예비하여 예수님과 참된 친교를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혼인 예식에 참예할 때 믿음과 신뢰로 예수님을 따랐다. (402.6)
 2. 1844년 이후 심판이 계속되고 있으며(단 7장), 이 심판에서 왕은 역사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해 온 모든 사람들을 심사하고 있다. 이 사람들 전체가 그리스도의 정혼한 신부인 교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그들 모두가 참되고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허명을 갖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해 왔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사람들을 심지어 박해하기까지 했다. 이 진실치 못하고 친절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전의 심판에서 희고 깨끗한 세마포 혼인 예복을 입고 있지 않음이 발견될 것이다(마22:1~14).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 다음에 교회는 깨끗하게 되어 순결하고 충성스럽게 될 것이다. 신부는 빛나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계 19:7~9; 엡 5:25~27). (402.7)
 3. 신부가 신랑을 맞을 준비를 다 마치면 드디어 예수님은 신부와 더불어 혼인한다· 즉 예수님은 그의 왕위를 받는다(단 7:14 ; 눅 19:11, 12). 혼인식의 문은 닫히고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과 가치 없음이 발견되어 내침을 당할 것이다(마 25:1~14; 계 22:11). (402.8)
 4. 혼인식이 끝난 직후에 예수님은 그를 기다리는 종들을 데리러 땅으로 돌아오실 것이다(눅 12:35~37). (402.9)
 5. 그 때에 예수님은 신실한 종들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데리고 가서(계 19:9) 앉아 먹고 마시게 할 것이다(눅 12:35~37). (403.1)
 사건들의 전후 관계가 이렇게 배열되면 앞뒤로 뜻이 연결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대접하시려는 “혼인 잔치”를 끝내신 후에 이 땅으로 돌아오시는 것으로 누가복음 12장 35~37절을 번역한다면 사건 전체의 이해에 있어서 약간의 혼란이 빚어진다.「개역 표준역」성경을 위시한 현대의 여러 번역 성경들이 위와 같이 번역하고 있어서 이같은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403.2)
 희랍의 원문에는 이렇게 번역될 단어가 들어 있지 않음
 위의 혼란에 대한 언어학적인 설명이 가능하다면 이 혼란을 없앨 수 있다. 신약 성경을 처음 기록한 희랍어의 결혼이란 말(가모스와 가모이)에는 혼인식과 혼인 잔치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403.3)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는 결혼식과 결혼 리셉션이 명확히 구별되어 있고 두 행사가 모두 간략하다. (403.4)
 그러나 성경 시대에는 결혼 서약(말 2:14)의 복창 같은 것은 간단히 끝내고 대신에 그 당시 사회의 중요한 행사로서의 혼인 잔치를 밤새 혹은 한 주일 내내 계속 가졌다. 수많은 손님들이 몰려와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와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는 결혼이란 곧 결혼 잔치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403.5)
 따라서 그 단어가 이렇게 사용되었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희랍인들이 혼인 예식만을 뜻하고자 할때는 희랍어의 결혼이란 언어의 약점이 문제가 된다. 가모스와 가모이는 결혼 서약과 결혼 잔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403.6)
 그러나 희랍인들은 혼인 잔치와 분명히 구별되는 혼인 예식을 위한 공통의 용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들이 혼인 잔치만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용어는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단어가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 사용된 것으로서 바로 성도들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되었다고 하였다. (403.7)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주인은 가모이, 즉 “혼인 예식”으로부터 돌아오시는 것이다.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언약의 서약과 관계되는 한 주인은 그의 왕국, 곧 그의 신부인 교회와 혼인하게 될 것이다. (4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