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요한계시록 12장 17절“남은 자손”(Remnant)이라고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밖의 자손”(Rest)이라고 읽어야 하는가?
 「개역 표준 성경」(The Revised Standard Version), 「새 미국 표준 성경」(New American Standard Bible),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 「새 국제역 성경」(New Intermational Version) 등은 모두 용이 “그 여자의 그 밖의 자손”(rest of her offspring)과 더불어 싸움을 했다고 번역했다. 그런데 흠정역 성경은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더불어 싸웠다고 번역했다. 어느 번역이 옳은가? (400.3)
 “남은” 무리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으며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에 의해 사용되었다. 이 말은 신학적 의미가 풍부한 단어이다. 반면 “그 밖의”(rest)라는 단어는 특별한 뜻이 없는 보통 말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희랍어 원어는 사도 바울이 사용한 “남은” 무리를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들과,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70인역에서 흔히 사용된 “남은”의 단어와 같은 계통에 속한다. (400.4)
 남은 무리의 신학적 의의는 키텔(Kittel)의 「신학 사전」(Theololgical Dictionary)과 게르하르트 하젤(Gerhard Hasel) 교수의 「남은 무리」(The Remnant)라는 저서에서 밝히, 그리고 깊이 다 루어져 있다.85 (400.5)
 고대 중동 지방에서는 부족들 혹은 전체 민족이 기근이나 외족의 침략으로 근절될 위협에 자주 직면했다. 그들은 “남은 무리가” 대재난 속에서 살아 남아 다시 부족이나 민족을 재생시키고 회복시켜 주기를 희망했다. (400.6)
 성경을 보면 노아와 그의 가족이 대홍수의 재난에서 살아 남음으로써 인류의 전멸이 방지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살아 남은 노아의 일가족이 인류를 보존시키고 회복시킨 것이다. 또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도 유대 민족의 운명을 회복시켰다. (400.7)
 남은 무리는 살아 남은 개개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무리는 또한 하나의 단체적 실재, 살아 남은 자들의 단체인 것이다. 하나의 씨처럼 남은 자는 그 종족과 민족의 특성을 간수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 종족이나 민족을 원상태로 회복시킬 것이며 원래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킬 것이다. (400.8)
 성경에는 당신의 백성의 남은 자손을 보존시키는 분이 하나님으로 되어 있다(창 45:7; 사 10:20, 21, 37:31, 32) (400.9)
 아모스,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오바댜, 스바냐, 같은 선지자들은 모두 마지막 재난들에서 승리하여 살아 남을 남은 무리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은 처음에 “저는 자”였고 “쫓겨 났던 자”들이었지만(미 4:7; 습 3:19),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았으며(렘 50:20). 죄 없는 자로 인정받고(렘 50:20; 사 4:2~5) 모든 거짓에서 떠난(습 3:13) 자들이 되었다. 그들은 시온 산에 서서(미 4:7; 사 4:2~5; 옵 17; 욜 2:32), 하나님의 면전에서 노래를 부른다(습 3:14~17). (400.10)
 다시 요한계시록으로 돌아와 14장 1~5절을 보면 거짓 말이 없고 흠이 없는 144,000성도가 등장한다. 그들은 시온 산에 하나님과 함께 서서 노래를 부른다. 분명히 이 144,000인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마지막 시대의 “남은 무리들”이다. (401.1)
 짐승과 싸워 이긴 144,000 인(계 15:2~5)은 짐승을 경배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14장 12절“성도”들과 동일한 무리들이며 이 “성도들”12장 17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동일한 무리들이다. (401.2)
 이와같이 12장 17절에서 계명을 지키고 있는 백성들은 “남은 무리들”이며 흠정역 성경이 그렇게 그들을 지칭한 것은 올바른 처사였다. (401.3)
 그렇다면 무슨 차이가 있는가?

 (1)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하여 “남은” 자들이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용이하게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을 구약 선지자들의 위대한 예언과 관련시킬 수 있게 되었다.

 (2) 또 “남은 자손”이란 용어로 말미암아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참된 교회를 보존하고 회복하는 자들로 지칭된 씨, 곧 한 집단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집단과 동일시하는 신학적 의의를 인식하게 된다.

 (3) “남은”무리란 용어는 비록 이 무리들이 한동안 “저는 자”들이었고 “쫓겨난 자들”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거룩하게 될 것이란 약속을 재보증하고 있다. (401.4)
 그리고,

 (4) 12장 17절에서 “남은”자손이란 용어가 사용됨으로써 최소한 우리는, 남은 무리들의 보존과 성화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의 행위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12장 17절의 주역은, 우리와 싸움하는 용뿐이 아니라 무대 이면에서 사랑의 약속을 실현하고 계시는 하나님 자신이신 것이다. (401.5)
 “남은” 자손이란 단어 자체가 우리를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 단어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참된 교회, 곧 그의 양들이 있는 한 우리(요 10:16)를 회복하고 계시며 그 우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자들을 초청하고 계심을 상기시켜 준다. (401.6)
 7. 누가복음 12장 36절“혼인식”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혼인 잔치”로 읽어야하는가?
 누가복음 12장 36절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혼인식”(흠정역) 또는 “혼인 잔치”(개역 표준역 성경)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인처럼 주의 재림을 예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 번역 성경들은 개역 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의 번역과 일치하고 있다. (401.7)
 성경절 그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성경절을 이와 관련된 다른 재림 예언들과 비교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401.8)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사건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혼인식 뿐만 아니라 큰 잔치에 관한 표현들을 사용하셨다. (401.9)
 (1) 감람산 설교에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신랑에 비유하고 그를 믿는 무리들에게 자신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예비하라고 교훈하셨다. (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