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재림한다는 소식에 놀란 나머지 미쳐 버렸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가능한한 가까이서 맞이하려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곤란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395.10)
 그런데도 불구하고 클라라 엔디코트 시어즈(Clara Endicott Sears)는 이 같은 이야기와 그 밖에 밀러주의자들을 조롱하는 이야기들을 한데 묶어 설화집을 펴냈다. 바로 1924년에 나온 그녀의 “미혹의 날들”(Days of Delusion)76이란 책이 그것으로서 오늘날 나도는 모든 이야기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 (396.1)
 밀러의 기별은 사회의 여러 계층에 속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었다. 때문에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은 사람들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복음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으로 이야기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셨다. 에버리트 디크(Everett Dick)는 1930년에 쓴 그의 박사 학위 논문77에서, 밀러 운동이 전적으로 건전했다는 사실과 밀러의 추종자 중 몇 사람이 정신 병원에서 얼마 동안 요양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396.2)
 프란시스 D. 니콜(Francis D. Nichol)은 그의 저서인 「밤중 소리(The Midnight Cry)」78 에서, 시어즈(Sears)여사의 설화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이야기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 이며, 밀러의 추종자 중 몇 사람이 정신 병원의 신세를 진 것은 밀러의 기별을 받아들이기 이전의 일이며, 또 그 당시 사람을 미쳤다고 단정할 때 사용했던 근거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였다. 니콜의 이 저서는 오늘날 대중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많이 인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의 전문적인 교회사 학자들 사이에서는 광범위한 인정을 받고 있는 훌륭한 연구서이다.79 (396.3)
 승천의 옷에 대해서 살펴보자. 목사들 중에는 설교할 때 예복을 입는 분들이 많다. 합창 단원들도 노래할 때 찬양대복을 입는다. 신부들은 결혼식을 위해 결혼 가운을 입는다. 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기 위해 주일 용 예복을 입는다. 많은 밀러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로 예상했던 날에 주일 용 예복을 입고 주님을 기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백보 양보하여 그들이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하여 특별한 옷을 준비 했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이라고 조롱할 사람은 이 사람들의 원수들 말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396.4)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증거에 따르면 밀러주의자들은 승천 예복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West Virginia Univesity)의 휘트니 R · 크로스(Whitney R. Cross) 교수는 니콜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증거들을 검증한 끝에, 그 상스러운 이야기들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니콜의 것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크로스 박사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단 한 조각의 참다운 증거도 승천의 의복에 관한 신화를 뒷받침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 밀러의 추종자들에 대해 논평하기를 “일찌기 이 땅에는 이 무 리들보다 더 도의적이고 의로운 백성이 존재했던 일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80 (396.5)
 니콜은 승천의 옷에 관한 이야기를 추적하여 91개의 신문을 다 훑어 보았다. 어느 이야기도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가 “∙∙∙라고 하더라”,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따위의 소문에 근거하고 있었다. 실로 그는, 실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던 1844년 10월 22일 신문에서는 단 한 건의 “승천의 옷”에 관한 보고도 찾지 못했다.81 (396.6)
 1868년 4월의 재림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었고 그 후에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창건에도 크게 활약한 제임스 화잇은, 진실된 사실에 기초한 승천의 옷 이야기를 단 한 가지라도 제시하는 사람에게 후한 현상금을 지불하겠다는 광고를 실었다.82 그러나 이 현상금을 요구한 사람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396.7)
 3. 밀러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여 1844년 10월 22일이란 구체적인 재림 일자를 제시하였었는가?
 일견하면 1844년 10월 22일이란 날자는 대 예언을 성취하기에 부적합한 날로 보인다. 그런데 밀러의 동료들은 어떻게 그런 날자를 산출했던 것일까? (397.1)
 첫째로 그들은 다니엘 8장 14절에 기록된 정결이 최후의 심판을 뜻하며, 같은 성경절에 나오는 2,300일은 그 심판의 날자를 1844년으로 잡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과실이 없었다. (397.2)
 둘째, 그들은 구약 성경의 표상적 절기들이 봄 절기들(유월절, 요제절, 칠칠절)과 가을 절기들(나팔절, 대속죄절, 초막절)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레 23장). (397.3)
 그들은 그 앞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이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이 희생되는 그 날, 그 시에 죽으심으로써 유월절 표상을 성취시키신 사실을 주지했다. 예수님은 또 제사장들이 처음 익은 보리 묶음을 흔들었던 바로 그 날 아침에 부활하심으로써(죽은 자들의 첫 열매로서, 고전 15:20) 요제절의 표상을 성취하셨다. (397.4)
 그리고 칠칠절(오순절) 당일에 섬령을 보내심으로서 칠칠절의 표상을 성취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대속죄일이 동시에 대 심판의 날이란 사실을 주목하게 되었다(레 23:29, 30).(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대속죄일을 최후의 심판의 표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397.5)
 그들은 오래 전에 아이작 뉴톤 경이 판단했던 것과 동일한 판단에 도달했다. 즉 예수님은 초림으로써 봄 절기들의 표상들을 성취시키셨 듯이 가을 절기 당일에 재림하여 가을 절기들의 표상들을 성취시키시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단히 엄격한 유대의 한 종파의 계산 방식에 따라 1844년의 대속죄일이 10월 22일로 떨어졌다. 이리하여 1844년 10월 22일이란 날자가 정해진 것이었다. (397.6)
 이와 같은 추론이 전반적으로 긍정을 얻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밖의 사실도 주목하고 있었다. 즉 그들은, 느헤미야가 주전 457년의 늦 여름 또는 초 가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르기까지는 실질적으로 2,300 일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2,300 년/일은 1844년 늦은 여름이나 이른 가을 이전에는 끝날 수가 없었다. (397.7)
 4. 요한계시록 12장 17절“예수의 증거를 가진”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예수에 대해 증거하는”으로 읽어야 하는가?
 영어 「개역 표준 성경」에서는 “예수에 대해 증거하는”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흠정역 성경」에서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으로 번역되어 있다. (397.8)
 이 문제는 일견해서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연구를 계속 할수록 그 중요성이 크게 인식된다. 앞으로 확인하게 되겠지만 피차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현대 번역들은 영적 은사들에 대한 번역자들의 주관을 나타내는 경향을 띠고 있다. 예언의 은사들이란 어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할 때 표출되는 것(“자유주의적”인 입장)인가? 아니면 특별히 선택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이 직접적이며 기적적으로 주시는 것(“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인가? (397.9)
 보수적인 번역 성경들은 흠정역에 가깝다. 예컨데 「새 국제역」(The New International Version)과 「새 미국 표준역 성경」(New American Standard Bible)은 “예수의 증거를 붙들고 있는”으로 번역했다. 그 번역자들은 선지자가 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그 다음에 그 계시를 “붙드는”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39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