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3장 대속죄일의 심판에 참여한다
 나도 1988년에 심판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을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캘리포니아에 있는 버클리 대학으로 향했다. 우리는 에번스 홀을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박사학위 자격시험을 보는 동안 아내 코니는 밖에서 기다렸다. 시험은 네 명의 교수들 앞에서 치르는 구술시험이었다. (383.1)
 전 주에는 그 자리에 참가한 3명의 교수님들이 출제한 필기시험을 치렀다. 그 전공 시험은 집에 가져가서 24시간 동안 치르는 시험이었다. 짧은 휴식을 뺀 나머지 모든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시험을 치렀다. 아내는 새벽 1시에도 나를 위해 요리해 주면서 나와 함께 긴 마라톤을 이겨냈다. (383.2)
 다음 구술시험이었다. 그 시간은 나의 역량을 즉각적으로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든 경험이었다. 하지만 교수님들은 친절했고 관대했다. 나 또한 교수님들의 수업시간에 최선을 다 했고 그 결과도 좋았기에 나에게 큰 어려움이 되지는 않았다. (383.3)
 시험 보는 과정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다. 이반흘 6층, 시험을 치르는 교실 안에 개 한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른 아침 한 학생이 틸든(Tilden) 공원에서 길 잃은 개를 보고 개를 좋아하는 나의 시험 감독관에게 가지고 왔고 개를 둘 곳이 없던 교수는 개를 시험장에 두었던 것이다. (383.4)
 질문을 마치고 방 밖으로 나와 나의 운명을 결정할 교수들의 심사 결정을 기다렸다. 나는 교수님들을 볼 수 없었고 무슨 말을 나누고 있는지도 몰랐지만 확실한 것은 내 미래가 심사교수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384.1)
 내 아내 코니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나를 위해 기도하며 기다렸다. 나의 미래가 바로 아내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384.2)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네 명의 교수님들이 기립해서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따뜻한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기쁘게 짖으며 함께 경축했다. 시험장의 긴장은 사라졌고 심판도 끝났다. (384.3)
 하나님의 심판도 지금 하늘 성소에서 행해지고 있다. 나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심판도 내가 버클리에서 치렀던 구술시험과 비슷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층 더 심오하다. 단지 진로의 문제가 아닌 영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384.4)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태도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교수님들이 잠시 숙고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오직 기도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내 인생 전부를 심의한다. 때문에 나는 분명 기도 이상의 것을 해야만 한다. (384.5)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에 반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계 14:12)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경험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증명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완전한 순종을 할 수 있었다. (385.1)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으로 우리의 경험이 풍부해짐에 따라 우리의 순종과 믿음도 한층 더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성경에도 이와같은 자라남의 예가 있다. 사라를 누이동생이라 부르며 하갈을 통해 상속자를 얻으려 했던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창 22). (385.2)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떠났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창 12:1, 4; 22:1~3).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이들은(계 14:4) 그들이 항상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모본을 따랐기 때문에 그분을 따른다. (385.3)
 “예수 믿음” 을 갖는 것은 예수를 신뢰하며 그분께서 지상에서 사셨을 때 지니고 계셨던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하나님의 백성이 시온 산 위에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면 흠 없이 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쉬워질 것이다(계 14:4~5). 하지만 시온 산이 갑자기 이러한 품성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385.4)
 하나님께 충성된 백성들은 항상 순종과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왜 이것들이 심판의 때에 특별히 더 필요한 것인가? (385.5)
 그리스도인 삶의 기본적인 부르심은 동일하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은 다른 때와 다른 환경에 의해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도전은 어려움 가운데 성장할 수 있게 해준다. (386.1)
 아브라함의 생애에서도 그러했고 우리의 삶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지금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한계시록 13장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혹독한 시련을 받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시험의 정도가 요한계시록 14:12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인내를 가질 것을 요청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지적되어 있다. (386.2)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속죄일인 심판의 날에 행해야 했던 것들과 거의 일치한다.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겸비케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 제사장의 일에 참여해야 했다(레 16:29).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과 그의 법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이미 용서하셨고 그 날에 그들의 죄를 정결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낮춤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자신을 낮추시는” (빌 2:8) 믿음의 경험을 반영했다.
 성소를 정결케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생사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그들은 참여해야만 하였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 께로부터 거절당했다. (386.3)
 어떤 사람이 그대의 생사가 걸린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당신을 무엇을 하겠는가? 그대는 식사하러 밖으로 나가겠는가? 평상시처럼 일하겠는가? (386.4)
 에스더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고 왕 앞에 서기로 결심했을 때에 그녀는 사람들의 진심 어린 도움을 구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했다. (3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