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성경은 창세기의 책 이름을 고대 근동의 관습을 쫓아 책 머리에 나오는 첫 단어를 따서 ‘베레쉬트’(תישִארֵבְ, Bürëšît, ‘태초에’)라고 한다.1 본서는 78,064개의 히브리어 철자로 기록되었으며, 오늘날의 50장 구분법은 중세기의 랍비인 솔로몬 벤 이스마엘(Solomon ben Ishmael, 주후 1330년경)에게서 유래하였다. 팔레스틴과 애굽에서 삼년에 한번씩 토라를 통독했던 관습에 따르면 창세기는 43장 혹은 45장으로 구분되었고, 매년 한 번씩 토라를 통독했던 바벨론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창세기는 12개로 구분되었다.2창세기는 내용과 서술의 전개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은 신학적 구조를 갖고 있다. (31.1)
 1. 시 작
 책의 첫 단어인 ‘태초(太初)에’가 의미하는 것처럼 창세기는 시작 혹은 기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창세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원에 대해 말한다. (31.2)
 물리적우주 하늘들, 지구, 식물계, 동물계(창 1)

 인류 남성과 여성, 결혼, 가족, 문명, 사회, 도시 생활, 예술과 수공업, 인간의 정부(창 2-5, 9-11)

  불순종, 실패, 하나님에게서 분리됨, 죽음, 분노, 살인, 하나님의 심판(창 2-4)

 구속 약속, 제사, 예배, 기도, 예언(창 3-4, 9, 12)

 민족들 삼대 인종 - 셈족, 함족, 야벳족, 개별 민족들, 언어들(창 9-11, 36)

 이스라엘 아브라함의 소명과 언약, 열두지파의 부족장들(창 12, 15, 17, 35, 49)

 신앙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와 동행(창 15:6; 히 11:3-22 참조)3 (31.3)
 2. ‘톨레도트’,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
 창세기는 산발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 아래 일관되게 연속적으로 이야기들을 기록하였다. 창세기에서 이야기의 통일성을 성취하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톨레도트’(תּוֹלֵדוֹת, Tôlëdöt)이다. ‘잉태하다, 낳다’는 뜻의 ‘야라드’(דרי, yrD)4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구약의 39회 중 창세기에 13회 사용되었는데 한글 개역개정판은 ‘내력(來歷’(창 2:4), ‘계보(系譜’(창 5:1) ‘족보(族譜’(창 6:9; 10:1, 32; 11:10, 27; 25:12, 19; 36:1, 9; 37:2), ‘세대(世代)’(창 25:13) 등으로 번역하였다. (32.1)
 ‘톨레도트’는 세 가지의 기능을 갖는다. (32.2)
 첫째는 서적의 장(章)이나 부(部)처럼 새로운 내용을 도입하여 전개시키는 ‘주요 구조 단어’의 역할을 한다. ‘톨레도트’는 창세기를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게 한다.5 (32.3)
   창조(창 1:1-2:3)

   천지의 ‘톨레도트’(창 2:4-4:26)

   아담의 ‘톨레도트’(창 5:1-6:8)

   노아의 ‘톨레도트’(창 6:9-9:29)

   셈, 함, 야벳의 ‘톨레도트’(창 10:1-11:9)

   셈의 ‘톨레도트’(창 11:10-26)

   데라의 ‘톨레도트’(창 11:27-25:11)

   이스마엘의 ‘톨레도트’(창 25:12-18)

   이삭의 ‘톨레도트’(창 25:19-35:29)

   에돔의 조상인 에서의 ‘톨레도트’(2회 창 36:1-8; 36:9-37:1)

   야곱의 ‘톨레도트’(창 37:2-50:26) (32.4)
 둘째, ‘톨레도트’는 카메라의 줌렌즈처럼 특정한 개인과 그 직계 자손에게 초점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6 아담에게서 노아, 셈, 함, 야벳, 그리고 셈의 계보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에게, 그리고 아브라함에게서 이삭과 야곱과 야곱의 열두 아들에게 이어지는 ‘톨레도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이스라엘은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킴으로 인류 구원을 성취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족보(톨레도트)의 지향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이다. (33.1)
 셋째, ‘톨레도트’는 창세기 기사의 역사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위의 탁월한 인물이 등장할 때 ‘엘레 톨레도트’(אֵלֶה תוֹלְדוֹת, ´ëllè Tôlëdöt) ∙∙∙ 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는 공식 문구가 도입되는데, 이 문구는 ‘후손을 성경 역사의 종석’(宗石, keystone)으로 삼고7 ‘앞의 자료와 뒤 따르는 자료를 연결하는 이음매’로 삼아 이스라엘의 역사를 천지의 시작점에 정박시킨다.8 ‘톨레도트’를 통해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같은 인물들은 신화나 전설 속의 인물들이 아니라 역사속의 인물이 된다. 그리고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과 같은 사건들은 신화에 속하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33.2)
 창세기의 이야기들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구원활동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역사는 구원사이다. 인간의 범죄가 역사 속에서 발생했던 사건이기 때문에 갈바리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도 역사 속에서 발생해야 한다. 인간의 타락이 역사 속에서 발생한 만큼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도 역사 속에서 발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평화의 왕국은 인간의 마음 속에나 있는 하나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도래하게 될 경험 가능한 역사적 실체이다. (34.1)
 ‘톨레도트’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는 창조에 연결된다. 유대인들은 창조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창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독특한 관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할 복음적 사명을 띠고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신자들만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고전 2:7)이며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골 1:26)다가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함께 온전히 공개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임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고대 이스라엘은 성소제도와 언약과 율법 등을 통해서 희미한 그림자로 체험하고 소망하였다. (34.2)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약이 제시했던 희미한 표상들을 넘어서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함으로 이미 회복된 낙원의 삶을 맛보며 살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이 복음의 그림자를 갖고서 자기 존재의 가치를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두었거든, 복음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사는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교회가 자기의 정체성을 창조로부터 찾는 것은 더욱 당연하다. (35.1)
 우리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마음속에 존재했다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특별한 사명을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이 땅에 회복시키는 온 우주적 중대사를 위탁받은 말할 수 없이 큰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한 복음을 위하여 온 만물이 회복되기를 갈망하며 신음하는 역사의 마지막 때에 우리를 세우신 것이다. (35.2)
 창세기 속의 ‘톨레도트’는 죽은 자들의 리스트이다. ‘톨레도트’의 어원(ירד, yrd, ‘잉태하다, 낳다’)의 의미대로 한다면 ‘톨레도트’는 생성과 생명과 창조의 리스트가 되어야 하지만, 범죄 후 인간은 대대손손 죽음의 행렬을 이루며 존재할 뿐이다. 므두셀라처럼 거의 밀레니엄 만큼 산다고 해도 결국 무덤이 그 종착역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로 시작했던 창세기가 결국 애굽에서 요셉이 죽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창세기는 희망으로 시작했다가 죽음으로 끝맺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톨레도트’의 사슬을 단번에 끊고 생명의 ‘톨레도트’를 시작할 역사적 인물을 기대하며 구약성경의 첫 책은 끝난다. 신약성경의 첫 말씀은 절망 속에 빠진 인류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 예수의 생명의 톨레도트다.’(마 1:1, 잘킨슨-긴스버그 히브리어 신약성경=HNT). (35.3)
 3. 설화 표상학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들 속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준비하셨다. 부조들의 이야기는 단지 그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훗날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미리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예시하고 교회와 마지막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의 체험을 희미하게 표상한다. 과거의 것과 후일의 것을 그림자와 실체, 또는 모형과 원형으로 파악하는 것을 표상학이라고 하며, 표상학은 성경 해석학의 매우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표상학은 과거와 미래를 이으며, 그 주요 관심사는 미래이고, 궁극적으로는 시간의 끝인 종말이다. (36.1)
 미래가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 속의 인물들은 잘 알고 있었다. 야곱과 발람과 모세는 시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에 관해 말하였다(창 49:1-27; 민 24:14-24; 신 31:29- 32:43). 저들의 시는 ‘브아하리트 하야밈’(בְּאַחֲרִית הַיָּמִֽים, Bü´aHárît hayyämîm, ‘후일에, 끝날에’)이라는 어구로 한결 같이 시작한다.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창 49:1; 민 24:14; 신 31:29). (36.2)
 창세기 49장의 열 두 아들에 관한 야곱의 시는 ‘후일에’ 저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야곱은 아들들의 미래에 관해 장미 빛 전망만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아들들의 행적을 떠올리며 미래를 예언한다. 르우벤이 행한 근친상간의 죄와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에게 행한 잔인한 복수를 언급하고 그에 따른 어두운 미래에 대해 노래한다(창 49:2-7). 가족들을 구원해 내는 일에 으뜸 역할을 한 유다에 대해 칭찬을 하고 온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아가 그의 후손을 통해서 오게 될 것을 예언한다(창 49:8, 10). 이렇게 과거와 미래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과거에 당한 일은 ‘미래에’(בְּאַחֲרִית הַיָּמִֽים, Bü´aHárît hayyämîm, ‘후일에’) 일어 날 사건의 전조(前兆)가 된다. 바꿔 말하자면 과거는 미래의 교훈으로 이해되고 있다.9 ‘브아하리트 하야밈’(בְּאַחֲרִית הַיָּמִֽים, Bü´aHárît hayyämîm, ‘후일에’)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점점 더 큰 파장을 이루며 호수 끝에까지 다다르는 것처럼 더욱 확대된 모습으로 역사의 끝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성경 속의 역사적 설화들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읽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