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1 장 음주 문제에 관한 고찰 2. 세 가지 주요 입장
 성경은 음주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나님께서는 주정 음료를 적당히 마시는 것을 승인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주정 음료를 불허하셨지만 과거에 인간의 실패로 인하여(마 19:8) 이혼, 일부다처제, 노예제도를 허용하셨던 것과 같이 술마시는 것을 허용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주정 음료를 마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하셨는가? 이 세 가지 질문들은 음주 문제에 관하여 분명하게 표명된 세 가지 다른 입장을 나타내어 준다. 이 세 가지 입장을 적당론자(moderationist), 자제론자(abstentionist), 절대 금주론자(prohibitionist)라고 칭하고자 한다. (18.1)
 (1) 적당론자의 입장
 정의와 지지자들
 적당론자들은 성경이 주정 음료를 부적당하게 마시는 것(남용)을 정죄하기는 하지만 적당히 마시는 것은 승인한다고 주장 한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이들은 G. I. 윌리암슨(Williamson), 케네스 젠트리(Kenneth L. Gentry) 놀만 가이슬러(Norman L. Geisler) 등이다.11 (18.2)
 적당론자들의 입장은, 성경에 나오는 포도 음료는 오직 발효된 포도주뿐 이라는 것이며, 성경은 포도주를 적당히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연구는 우리말 성경에 대부분 “포도주(wine)”로 일관되게 번역된 히브리 어와 희랍 어 단어(야인과 오이노스)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 음료 혹은 발효된 포도 음료 둘 중의 하나를 칭할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 이 한 가지 포도 음료 이론이 도전장을 내어 놓았다. (18.3)
 적당론자들은 “한 가지 포도 음료 이론” 입장을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멜기세덱이 가지고 나온 것은 발효된 포도 음료였다(창 14:18~20). 하나님께 바친 것은 포도주였다(출 29:38, 40; 레 23:13). 이스라엘이 성전에 십일조를 가지고 나와 여호와 앞에서 마신 것은 포도주였다(신 14:26). 예수께서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가 마신 것도 포도주였다(요 2:1~11). 예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면서 사용하신 것(마 26:29; 막 14:25; 눅 22:18)은, 그리고 원시 기독교의 크리스챤들이 성만찬 예식에 사용한 것(고전 11:21, 22)도 발효된 포도 음료였다. (18.4)
 이 견해의 취약점
 위의 주장들을 하나씩 후에 다룰 것이다. 이 시점에서는 두 가지 일반적인 관찰을 제시하면 족할 것이다. 첫째로, 적당론자들은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것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는 것조차 거리낌 없이 정죄한 성경절들(레 10:8~11; 삿 13:3, 4; 잠 31:4, 5; 23:31; 20:1; 딤전 3:2, 3)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데 실패하였다. 성경이 발효된 포도 음료를 “거만케 하는 것”(잠 20:1)이고 “뱀같이 물 것이고 독사같이 쏠 것”(잠 23:32)이라고 정죄를 하는데 어떻게 적당히 마시는 것을 승인할 수 있겠는가? 성경이 똑같은 술이 좋기도 하고 약하기도 한 것으로 동시에 정죄하기도 하고 또 권할 수도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이 마신 술의 종류가 아니라 이라면 성경은 최소한 안전한 음주의 한계선을 그었어야만 한다. (19.1)
 두번째 취약점은 포도주나 또는 그 외의 모든 알코올 성분 음료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주정 음료의 해로운 영향을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적당히 마실 것을 권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마시는 것은 알코올의 나쁜 영향을 감할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다. 흡연의 경우도 마찬 가지이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지 않고 반 갑만 피움으로 담배의 해로 운 영향을 감할 수는 있어도 제거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마신 술의 양에 관계 없이 인간의 유기적 조직체를 취하게 하는 물질을 적당히 사용하라고 승인하고 권하였다는 상상은 터무니 없고 위험한 것이다. (19.2)
 (2) 자제론자의 입장
 정의와 지지자들
 많은 보수적인 크리스챤들은 적당론자들의 견해에 내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자제론자의 견해”라고 칭할 수 있는 입장을 개진하였다. 이 견해는 비록 하나님께서 성경 시대에 주정 음료를 적당히 마시는 것을 승인하셨지만 오늘날 알코올과 연관된 많은 심각한 사회적, 보건적 문제들로 인하여 크리스챤들이 알코올을 삼가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것이다. (20.1)
 이 자제론을 지지하는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빌리 그래함과 헤롤드 린젤(Harold Linsell),12 아놀드 컴(Arnold B. Come),13 등이고(전) 개혁 장로교의 복음주의 시노드14 교단이 이에 동의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자제는 성경이 명확하게 가르치는 문제가 아니라 현 사회에서 알코올이 끼치는 파괴적인 영향의 견지에서 신중하여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20.2)
 재림교회는 이와는 약간 다른 자제론자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백성들의 무지와 왜곡으로 인하여 허용하시었다고(비록 승인하시지는 않았어도) 보면서15 건강을 자신들의 자제 입장의 이유로 들고 있다.16 (20.3)
 이 견해의 취약점
 이들의 입장은 신명기 14:26에 나오는 “포도주나 독주”를 예루살렘의 여호와 앞에서 마시라고 한 귀절이 주정 음료를 가리킨다는 추정에 근거한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의 왜곡으로 인하여 양보하시 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하여서는 본서 7장에서 논할 것이다. 결론은 “독주”로 번역되는 히브리 어 단어 쉐카르의 파생어와 신명기 14장의 문맥은 이 단어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뜻함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포도즙”을 하나님의 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으로 묘사한 시편 104:14, 15“포도 음료와 젖”을 좋고 만족시켜 주는 영적 이익으로 묘사한 이사야 55:1은 이 견해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20.4)
 명백한 패러독스
 바로 위에 언급한 실례들은 포도 음료가 하나님께서 백성이 즐겨 마시도록 주신 축복이라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반면, 성경에는 포도 음료를 정죄하는 수많은 절들(잠 20:1; 23:32; 합 2:5)도 있다. 이 패러독스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왜 한입으로 두 가지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나쁘면 나쁜 것이 아닌가? (20.5)
 이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적당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마신 양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마신 양에 관계 없이 술을 정죄하고 있다. 또 하나님의 양보로 간주해도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언급하였다. 해답은 우리말 성경에 포도주로 거의 일관되게 번역된 히브리 어와 희랍 어 단어(야인과 오이노스)가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과 발효된 포도음료, 둘 중의 하나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17 이 점에 관하여 상세하게 후에 논할 것이다. (21.1)
 (3) 절대 금주론자의 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