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2 부 일요일 준수에 대한 “성서적” 지원
 첫째 날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신학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이유에서 더 많이 자극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헌금이나 선물을 떼어놓기 위해 주일이나 달의 끝 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 때는 대게 사람들이 빈 주머니나 빈손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건전한 예산 집행에는 오히려 반대가 된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어떤 지출 계획이 있기 전에, 만일, 신자들이 그들의 줄 것을 첫째 날에 떼어놓는다면, 그 남은 기금은 잘 분배되고, 또 기본적으로는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실제적이고도 질서 있는 헌금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바람직한 주 계획(weekly plan)을 제안한다. (20.2)
 사도행전 20:7-11; 첫째 날의 드로아 집회
 매우 중요한 내용을 우리는 사도행전 20:7-11에서 발견하는데, 그 이유는 본문이 신약에서는 유일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이 “떡을 떼려 하여”(행 20:7) 첫째 날에 모인 것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는 드로아의 신실한 사람들이 떡(즉 성체성사의 축제)을 떼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그 집회는 습관적인 일요일 집회였다고 추정한다.63) (20.3)
 다수의 학자들이 교황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부루스(F. F. Bruce)는 이 진술은 “그 날에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행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분명한 증거”64)라고 확증한다. 폴 주이트(Paul Jewett)도 마찬가지로“주중 첫날 예배를 목적으로 그리스도인 집회에 대한 최초의 분명한 증거가있다”고 선언합니다.65) 이와 같은 진술들은 분명히 배가되었다. (20.4)
 이러한 단정적인 결론은 대부분, 7절이 습관적인 시간(time, “주일 중 첫 날”)과 원시적인 그리스도인 예배의 특성(nature, “떡을 떼기 위해”)을 서술하는 “하나의 고정된 공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달려있다. 어찌됐든 그 집회가 저녁에 있었고 “떡을 떼는 일”은 자정이 지난 후에 있었으며(7절, 11절) 또 바울은 새벽녘에 신자들을 떠났으므로, 우리는 드로아의 집회의 시간과 성격이 아마도 사도가 떠날 때 일어난, 평범한 집회였는지, 아니면 특별한 집회였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20.5)
 특별한 송별 모임
 그 문맥은 정규적인 일요일 예배 관습이 아니라, 바울이 떠날 때 있었던 특별한 송별 집회라는 것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그 집회는 첫 날 저녁에 시작되었으며, 유대인의 계산에 따르면 그 날은 안식일 저녁이었으므로, 바울이 떠날 때인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여명에 그곳을 떠날 때 열렸던 밤 집회였으므로, 그 날은 규칙적인 일요일 준수를 나타내지 않는다. (20.6)
 바울은 일요일 밤에 신자들을 보았으며 낮 동안에 여행을 하였다. 이것이 안식일에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일요일 준수의 가장 훌륭한 예증으로도 제시될 수 없다. 그 구절은 포욱스와 잭슨(F. J. Foakes-Jackson)의 언급에 따르면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훌륭한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에 여행을 시작할 수 없었으며 여행은 그날이 지나 해가 지므로 안식일이 끝나는 ‘첫째 날’ 여명에야 가능하였다.”66) (20.7)
 떡을 떼는 일
 “떡을 떼기 위해”(klasai arton)란 표현이 주의를 끌 만하다. 본문의 문맥에서 그 말은 실제적으로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 말이 “그리스도인들이 친교의 음식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성만찬 예식을 위해서 함께 왔다”는 뜻인가? 떡을 뗀다는 것은 단순히 습관적인 일이었고,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한 과정의 일환이었음이 분명하다. 손님을 초대한 사람이 떡 조각을 떼는 행위는 식사를 시작하는 행위를 나타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의 문화는 꼭 같은 기능이 손님을 초대한 사람에 의해서 수행되는데, 그것은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하는 것”(Buon appetito--Good Appetite)을 바라며 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의식은 식사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고 있다. (21.1)
 사도 시대 후기 문헌에서는 “떡을 뗀다”란 표현이 주님의 만찬(Lord's Supper), 곧 성만찬 예식에 대한 전문적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신약에서는 통상적인 의미도, 용례도 아니다. 사실, “떡”(artos)이란 명사 앞에 있는“떼다”(klao)란 동사가 신약에 15회나 나타난다. 9회는 예수께서 무리들을 먹이실 때, 마지막 만찬에 참석하셨을 때, 그리고 부활 후에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때에 그리스도께서 떡을 떼시는 행위에 대한 언급이고(마 14:19; 15:36; 26:26; 막 8:6; 9:19; 14:22; 눅 22:19; 24:30; 24:35), 2회는 바울이 음식을 시작하고 또 참여하였을 때이며(행 20:11; 27:35); 2회는 주님의 만찬에서 실제적으로 떡을 떼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2회는 제자들이나 신자들이 함께 모여 통상적으로 “떡을 떼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이다(행 2:46; 20:7). (21.2)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예들의 단 하나도 주님의 만찬을 분명하게 나타내거나 아니면 “떡을 떼는 것”으로 전문적으로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4620:7의 일반적인 언급에서 주님의 만찬에 대한 언급으로 보려는 시도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2:46에 관한 한, “집에서 떡을 떼며”라는 구절은 분명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떡을 떼며. . .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며”(행 2:46-47)라는 본문을 보아, 초대 교회에서 매일 행해졌던 식탁 교제를 언급한다. (21.3)
 그러한 매일의 식탁 교제가 비록 주님의 만찬 축제를 포함했을 수 있을 지라도 예전적인 주님의 만찬 축제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 같은 진술이 사도행전 20:7에서도 발견된다. 즉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는데”라는 말은 단순히 “우리가 함께 음식을 먹기 위해 모였다”라는 의미 이상은 아니다. 사실, 거기에는 잔이나 축도, 또는 성경 봉독 같은 것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떡을 떼고 먹은 사람은 바울 혼자이다. 그가 그 떡이나 잔을 축복하고 그리고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암시가 없다. (21.4)
 더 나아가, 떡을 떼는 것은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having eaten-geusamenos)에 온다(11절). 그 같은 단어가 누가복음에도 세 번이나 사용되고 있는데 명백하게 시장한 사람을 만족하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행 10:10; 23:14; 눅 14:24). 의심할 것 없이 바울은 오랜 설교 후에 시장했으며 그가 자신의 말을 계속하고,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약간의 음식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만약 바울이 주님의 만찬을 정규적인 식사와 함께 가졌다면, 그는 지금의 고린도교인들에게 준 권고와는 다르게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기 전에 집에서 음식을 먹고 그들의 시장 끼를 면하라고 강하게 권하였을 것이다(고전 11:2, 22, 34). (21.5)
 신약은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해 결코 어떤 고정된 날을 가지라는 권고를 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특정한 날에 자신들의 헌금을 떼어놓기를 권고하고 있으나, 주님의 만찬 축제에 관해서 그는 반복해서 같은 편지에서 같은 백성들에게 불확실한(indeterminate) 시간과 날을 의미하는 “네가 함께 모일 때”(고전 11:18, 20, 33, 34)라는 말을 하고 있다. (21.6)
 그 구절을 가장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누가가 그 모이는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가장 타당성이 높은 이유들에서라는 것이다.

   (1) 바울이 “떠나고자 하여”(행 20:7)라는 말에서 떠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2) 그날 밤에 유두고에게 있은 흔치 않은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3) 바울의 여행을 설명하기 위해 부가적이고도 의미심장한 시간적인 언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2.1)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The Lord's Day)
 요한 바오로가 일요일 준수의 사도적 기원을 옹호하기 위해 세 번째로 사용하는 신약의 구절은 요한계시록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계 1:9)으로 유배간 사도 요한은 “내가 주의 날에[엔 테 구리아케 헤메라, en te kuriake hemera] 성령의 감동을 받아”(계 1:10)라고 기록하고 있다. (22.2)
 요한 바오로는 이 본문이 “주일 중 첫째 날을 ‘주의 날’(the Lord's Day)이라고 부르는 실제적인 증거”이다. 이 말씀이 “그들을 두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확연히 구별하고 있다. . .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날’에 대해서 말했을 때, 그들은 이 용어를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빌 2:11; 행 2:36; 고전 12:3 참조)라는 부활의 선언으로 사용하였다”라고 주장한다.67) (22.3)
 교황의 진술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로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미를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부활하신 구주 안에서 표현하였다는 말이다. 다수의 학자들이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콜라도 모스나(Corrado Mosna)는 강조하여 기록하기를 ‘주의 날’(계 1:10)이라는 구절에 의해, 요한은 공동체가 그 날에 함께 성체성사를 행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68)“성체성사”라는 구절은 가톨릭 교회에 의해 부활을 기념하는 주님의 만찬을 서술하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