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2 부 일요일 준수에 대한 “성서적” 지원
 이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한다면 본 장의 제한된 범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논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에서 본인은 20여 페이지를 할애하여 이 구절을 취급하였다(111페이지에서 131페이지 가지 참조). 본 장의 목적은 단지 두 개의 기초적인 관찰만 제시하고 있다. (22.5)
 우선 첫째로 “주일 날”이란 표현을 일요일에 인용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속에서나 신약의 다른 어떤 곳에 기초하고 있다는 내적 증거가 없으며, 단지 2세기의 세 개의 부분적인 증언들이 디다케(Didache) 14:1,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Epistle to the Magnesians) 9:1, 그리고 베드로의 복음서(The Gospel of Peter) 35:50 등에 나타나있다. 그러나 셋 중 2세기말에 기록된 베드로의 복음서에만 “주님의”(Lord's, kuriake)라는 전문적인 용어가 분명하게 일요일을 나타내고 있다. 다른 두 구절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이제 밤이 되어 주의 날(Lord,s day, He kuriake)이 저물었으므로. . . 거기서 하늘에 큰소리를 질렀다”(35절); “주의 날(Lord's day, tes kuriakes)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왔다”(50, 51절). (22.6)
 실제로 신약의 복음서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주일 중 첫날 미명에”(원문 번역임. 실제로는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찍이’로 되어 있음: 막 16:2; 마 28:1; 눅 24:1; 요 20:1) 무덤에 갔다고 되어있는 반면에, 외경서인 베드로의 복음서에는 주의 날(the Lord's day)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왔다”로 되어 있다. 주일 중 첫째 날(first day of the week)이라는 말 대신에 주의 날(Lord's Day)이라는 새로운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2세기 말 경에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the Lord's day)로 언급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22.7)
 그러나 뒤에 사용된 구절들은 합법적으로 요한계시록 1:10로 거슬러 올라가서 읽을 수 없다. 그 주요 이유는 만일 일요일이 이미 1세기말에 “주의 날”이라는 새로운 호칭으로 받아들여졌다면, 특히 거의 같은 시기에 동일한 지역에서 동일한 저자에 의해서 기록된 요한복음이나 요한계시록 이 기록되었을 때 이미 우리는 그 작품 속에서 일관성 있게 일요일이라는 이름이 나타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23.1)
 만일 “주의 날”이라는 새로운 뜻이 이미 1세기말에 있었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일요일 예배의 의미와 특성을 표현했다면, 요한은 구태여 자신의 복음서에서 “주일 중 첫날”(first day of the week) 이라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구절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요한의 외경서에는 나타나지만 자신의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 첫째 날이 분명히 예수의 부활과 그분의 출현과 관련되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요한계시록 1:10에 있는 “주의 날”이란 일요일을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23.2)
 부활절 일요일이 아님
 두 번째 중요한 고려 사항은 일요일이 부활의 선포라는 측면에서 “주의 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교황의 주장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진 요한계시록이 부활절 일요일의 준수에 대해서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으므로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성서적인 날인 니산월 14일을 유월절로 준수했다. 사도 요한의 전통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폴리카라테스(Polycarates)는 로마의 감독 빅토르(Victor)가 부활절 일요일의 채택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소환을 받고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소아시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종교회의를 소집했다(A. D. 191년 경). 아시아 감독들의 익명으로 한 결정은 부활절 일요일을 거절하고 성서적인 유월절의 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69) (23.3)
 이러한 사실의 빛에 비추어볼 때, 니산월 14일을 고정된 유월절로 지켰고 또 자신과 같이 부활절 일요일을 지키지 않았던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치 요한이 “주의 날”이라는 구절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존경받는 추기경인 장 다니엘루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소심하게 “계시(1:10)에서 부활절이 니산월 14일에 놓여졌으므로, 주의 날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일요일을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70)고 기록하고 있다. (23.4)
 요한이 1세기말에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주의 날”로 알았던 바로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Lord-kurios), 곧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마 12:8)라고 선언하신 것은 바로 그 날이었다. (23.5)
 요한계시록 1:10의 앞뒤에 나오는 직접적인 문맥은 분명히 주님의 종말론적인 날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다. 이것은 요한이 계시를 받았던 “주의 날”이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큰 날로 보았던 안식일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 인해서 유배된 고령의 사도에게 이 계시가 얼마나 큰 용기가 되었던가! 더 나아가 그 안식일은 종말론적으로 재림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매 주일 돌아오는 안식일에 불가시적인 주님과의 만남은 그분께서 오시는 마지막 날에 가시적인 주님을 만나는 하나의 서막인 것이다. (23.6)
 요약하자면, 부활에 대한 신약의 언급들(막 16:2, 9; 눅 24:1; 요 20:1), 곧 드로아에서 있었던 첫째 날 밤의 송별 모임(행 20:7-11), 고린도전서 16:1-3에서 바울이 언급한 첫째 날의 개인적인 저축계획, 그리고 요한계시록 1:10에 있는 “주의 날” 등에서 일요일 숭배에 대한 지원을 얻어내려는 교황의 사목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논증이 과거에 반복해서 많이 있었으나 여전히 미흡할 따름이다. (23.7)
 종종 경시된 중요한 하나의 사실은, 만일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 안식일(하나님의 백성들의 종교적인 양심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안식일 제도)을 포기하고, 대신 일요일 준수를 채택할 것을 권장하는 시도를 했다면, 그들은 마치 할례에 대한 언급의 경우에서처럼, 유대 그리스도인들 쪽에서 상당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24.1)
 안식일/일요일 논쟁에 대한 여운이 신약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일요일 준수의 소개가 사도시대 이 후의 현상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다. 본인의 논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에서, 본인은 이러한 역사적인 변경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요인들이 삽입된 것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다. 이러한 연구의 빛에서 보면,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서적인 지지를 사도 교회에 그 근원을 두려는 교황 요한 바오로의 시도는 잘 포장된 것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성서적인 지지는 미흡하다.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