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2 부 일요일 준수에 대한 “성서적” 지원
 그리스도의 출현은 전혀 일관성 있는 형태를 따르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여드레를 지나서”(요 20:26) 나타나신 날이 일요일일 것으로 언급하는 것은, 요한 자신이 설명하는 이유에 따르면, 예수님이 그 전에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가 없었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날은 일요일이 될 수가 없다(요 20:24). (15.7)
 더 나아가, 이 경우에 요한은 어떤 예전적인 식사도 언급하지 아니하고 단지 그분께서 육체를 가지시고 부활하신 그분의 실체를 도마에게 만지도록 하신 그리스도의 증거를 언급하고 있다(요 20:26-29). “여드레 후에” 제자들이 다시 함께 모인 것은, 오순절 전에 다락방에 “그들이 다 거기 있어”(행 1:13) 그들이 매일 상호 유익한 교제를 위해 모였던 것을 봐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행 1:14; 2:1). (16.1)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부터 일요일에 되풀이되는 성체성사 제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일관성 있는 유형을 이끌어 낼 수는 결코 없다. 주님께서 개인에게나 또는 무리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일요일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과 장소, 다른 환경일 수도 있다. 사실 그분께서는 게바나 야고보(고전 15:5, 7)와 같은 개인들과 열 두제자들(5, 7 절)과 500명의 사람들(6절)에게도 나타나셨다. 예를 들어 그러한 모임들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집안에 모여 있을 때나, 엠마오로 여행하고 있는 동안(눅 24:13-35), 또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요 21:1-14)였다. (16.2)
 엠마오에서는 단지 두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저희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들에게 주셨다”(눅 24:30). 이 마지막 경우는 주님의 만찬의 축제와 매우 흡사하지만, 실제로는 그 음식은 예수께서 초청하셔서 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않으셔서 하신 하나의 통상적인 식사였다(눅 24:30). 주님께서는 당시의 편만한 관습에 따라,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셔서, 떼어 그들에게 주신 것”(눅 24:30) 이다. 이 행위는 벰(J. Behm)이 설명한 대로 “함께 먹기 위한 준비에 필요한 일환”45)이었다. (16.3)
 마태와 마가의 증언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마태(28:10)와 마가(16:7)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출현이 예루살렘에서가 아니고(누가와 요한이 언급한 것처럼) 갈릴리였다. 이것은 멕카스랜드(S. V. McCasland)가 본 것처럼, “그 출현은 베드로의 복음서의 단편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무교절이 지난 지 열흘 후의 일이었다. 만일 이 늦은 때에 출현하신 것이 일요일이었다면 그토록 우연한 길에 나타나신 것에 대한 기록이 일요일날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46) (16.4)
 한편 복음서의 얘기에 있는 불일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겠거니와, 마태와 마가가 부활절 일요일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식사한 것이나 회합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것은 부활하신 날 일요일 저녁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었다는 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16.5)
 앞서 다룬 것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체를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재 확신을 주기 위함이었으나, 그들이 그날을 부활의 주기적 기념을 위한 유형으로 놓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일들은 다른 시간과 장소, 다른 상황에서 일어났으며, 그리스도께서 식사를 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성체성사의 일요일 예배 제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육체로 부활하신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서 보통의 식사(고기와 같이--요 21:13)를 하신 것이다. (16.6)
 (2) 태양의 날과 빛의 창조
 요한 바오로는 “안식일에 대한 구약 성경의 이상”이 부활을 창조의 첫째 날로 연결시키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기록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부활로 연결되었으며, 그 부활을 창세기에 창조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우주적인 주일의 첫째 날(창 1:1-2:4 참조), 곧 빛을 창조하신 바로 그 날에 놓았다(창 1:3-5 참조).”47) (16.7)
 부활과 빛의 창조와의 연결은 교황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이상”에 의해 영감을 받아 “자연스럽게”된 것이 아니었다. 본인의 논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에서 본인은 그러한 연결이 안식일의 포기와 태양의 날을 채택하도록 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도 시대 이후에 일어난 필연성에 의해 고무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강력한 문서를 제출하였다. (17.1)
 하드리안의 반 안식일법
 이러한 발전은 하드리안 황제(Emperor Hadrian, A.D. 117-138)의 통치 기간 동안에 반 유대적인 법을 제정한 결과의 하나였다. 주후 135년에 하드리안 황제는 일반적으로는 유대교의 행사, 곧 특별하게는 안식일의 준수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한 법을 포고하였다. 이 법의 목적은 다시 소생하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제국 내, 특히 팔레스틴 여러 지역에서 폭동이 일으키고 있을 때 당시의 한 종교였던 유대교를 법으로 청산하기 위한 것이었다.48) (17.2)
 억압적인 반 유대주의적이고 또 반 안식일적인 법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의 날을 예배의 날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로마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로마 제국의 관내에서 그들이 유대인들과는 그들의 신분과 습관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였다. (17.3)
 태양의 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의 신학적인 정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날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것과 그 날에 부활하신 것을 토대로 정의의 태양(the Sun of Justice)에다 호소했으며, 두 사건을 태양의 날에 같이 일어난 것으로 설득했다. 후자가 창조의 첫째 날과 관련된 것은, 그 첫째 날의 빛의 창조가 많은 사람들에게 빛의 발광체인 태양의 날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성서적인 정당성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7.4)
 일요일과 빛의 창조
 이렇게 연결시키는 최초의 예증은 져스틴 마터(Justin Martyr)가 교황 안토니누스 비오스(Antoninus Pius, A. D. 150년 경)에게 보낸 변증서(Apology)에서 발견된다. 져스틴은 기록하기를 “태양의 날(dies solis)은 우리 모두가 통상적인 모임을 갖는 날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흑암과 물질에 변화를 일으키셔서 세상을 만들었으며,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그 첫째 날이기 때문이다.”49) 다니엘루 추기경이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초기에 첫째 날의 빛의 창조와 태양 숭배를 꼭 같은 날에 놓았다.50) (17.5)
 제롬(Jerome, A. D. 342-420)은 “비록 그날이 이교도들에 의한 태양의 날로 불려진다고 해도, 세상에 빛이 나타나고 이날에 공의로운 태양이 떠올랐다면 우리 모두는 기꺼이 그날을 그렇게 인정하겠다”51)고 하였다. (17.6)
 이렇게 간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 곧 일요일을 자연스럽게 일곱째 날인 안식일에 기억해야 할 창조와 구속의 성취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창조 주일에 연결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첫째 날의 빛의 창조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태양의 날을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성서적”인 정당성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17.7)
 전도적인 고려 사항들